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처음에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성공조차도 단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계속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했다. 꾸준히 비범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의 첫 영화는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을까? 그래서 현재 생존해있는 70세가 넘은 거장들의 첫 영화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은 과연 떡잎부터 달랐을까? - 기자 말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워너 브러더스 스튜디오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화려한 캐스팅을 보고 극장에 들어갔다가 난해하고 지루한 전개에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마도 그 대표적인 예가 테런스 맬릭의 영화일 것이다. 평단의 극찬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출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하며 영화를 보지만 그의 영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진입장벽은 높기만 하다. 호불호가 꽤 나뉘는 감독이지만 그의 영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다른 시선을 가지고 다른 접근을 하게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1973년 <황무지>로 데뷔해서 지금까지 9편의 장편영화(다큐멘터리는 제외했음)를 연출했다. 20년의 공백(1978년 <천국의 나날들>이 나오고 다음 영화 <씬 레드 라인>이 나오기 까지)을 감안하더라도 다작을 하는 감독은 아니다. 한편의 철학적인 산문시에 아름다운 영상을 더한 것 같은 그의 영화는 데뷔작에서부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확고히 하고 있다.

테런스 맬릭은 내레이션을 적극 활용하는 감독 중 하나로 <황무지> 또한 홀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데 이는 이야기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소설의 지문과 같은 역할을 하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어떤 소녀의 방관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스튜디오


엄마가 죽고 아빠와 함께 사우스다코타로 이사 온 열다섯 살 소녀 홀리(씨씨 스페이식)앞에 어느 날 제임스 딘을 연상시키는 잘생긴 청년 키트(마틴 쉰)이 나타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고 홀리보다 열 살이나 많다는 이유로 홀리의 아빠가 자신과의 연애를 반대하자 키트는 그를 총으로 쏴 죽이는데 홀리는 경찰에 신고하기는커녕 키트의 도주에 동행한다. 어린 연인은 숲으로 도망가 거기에 집을 짓고 현상금 사냥꾼들의 눈에 띄기 전까지 외부와 격리된 채 살기 시작한다. 침입자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다시 도망 길에 오른 두 사람은 목적지도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황무지>는 시놉시스에 적힌 내용만큼 긴장감이 흐르고 박진감 넘치는 영화는 아니다.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사건의 개연성과 캐릭터를 연결하기는 어렵다. 특히 영화에서 키트가 저지르는 수많은 살인과 그 살인을 방관하는 홀리의 태도는 내러티브 안에서의 필연적인 연결이 아니라 상징적 행동으로 밖에 해석될 수 없다.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입고 항상 담배를 피우고 있는 키트의 반항적인 눈빛은 엄한 아빠와 단 둘이 사는 홀리의 눈에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근사하게 보였을 것이다. 키트가 다른 여자를 사귈 수도 있는데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홀리는 자신이 덧씌운 환상에 스스로 빠진다. 키트가 저지르는 범죄들이 홀리에게는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키우던 물고기는 병들어 버리고, 홀리가 더 이상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아빠는 그녀를 벌하기 위해 그녀가 키우던 개를 총으로 쏘아 버린다. 그리고 키트의 총에 죽은 아빠까지 짧은 시간 안에 홀리는 그녀 주변의 아끼는 존재들을 모두 잃는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키트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무의미한 삶을 길게 사느니 사랑하는 사람과 일주일을 살겠다"고 말하며 불타는 집을 뒤로하고 키트를 따라 나선다. 키트의 총에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 홀리는 두려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도주생활이 힘들고 고단해 지자 그녀는 키트와 갈라서 도주를 포기해 버릴 만큼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열다섯 살의 그녀는 아직 미숙하다.

"사람들은 나를 피곤하게만 했지 내 생각을 물은 적은 없어"라고 키트는 말한다. 홀리의 눈에는 영화배우만큼 멋있어 보이는 그이지만 기성세대의 눈에는 변변찮은 직업을 전전하는 싹수가 누런 젊은이일 뿐이다. 그가 경찰에게 잡혔을 때 경찰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그의 모습은 체포된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즐거워 보이고 불안과 반항기가 가득하던 그의 눈빛에는 안정이 찾아든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가던 그가 처음으로 주인공이 되어 주목을 받는 순간이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스튜디오


홀리의 아빠를 죽이고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시내에 나가서 레코드판에 자신의 자백을 녹음하는 것이었을 만큼 키트는 자신의 인생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에 집착한다. 그는 홀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풍선에 날려 보내는 의식을 치르고, 홀리의 집을 불태우고 도망치면서 그 순간을 기억할 물건을 트로피처럼 가져나온다. 그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기억된다는 것이고 기억된다는 것은 유명해진다는 것이며 유명하다는 것은 다른 모든 허점을 감출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홀리의 아빠를 죽인 것은 기성세대와의 타협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극단의 선택이었고 이후로의 살인은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그의 손에는 주저함도 죄의식도 없다. 그를 체포한 경찰이 동료에게 "그런데 얘 제임스 딘 닮지 않았어?"하고 물었을 때 그의 얼굴에는 만족의 미소가 흐르고, 인생의 구체적인 목표가 없던 청춘은 범죄를 통해 자신의 유명세를 이루게 된다.

비현실 속에서 피어난 로맨스

<황무지>는 여러 영화들과 닮아 있으면서도 그 어떤 영화도 닮지 않은 독특한 영화다. 남녀 커플이 범죄를 저지르며 길을 떠도는 영화는 꽤 많지만 그 누구도 키트와 홀리를 닮은 인물은 없다. 숲에서 집을 짓고 사는 젊은 연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러우며 대책 없이 로맨틱하다. 목표도 목적지도 없이 배회하던 이들 청춘은 방황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끝이 다가왔을 때 자신의 운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테런스 맬릭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이하더라도 그의 영상미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첫 작품부터 영상에 꽤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 들판에 선 마틴 쉰의 모습과 끝이 오는 것을 예감한 두 연인이 냇 킹 콜의 <A blossom fell>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 그리고 독특한 매력을 가진 씨씨 스페이식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들까지,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은데 차기작 <천국의 나날들>은 영상미의 절정을 보여주며 1979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게 된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스튜디오


이후로 감독으로 승승장구 할 줄 알았던 테런스 맬릭은 20년 동안 영화계를 떠나게 된다.(공식 석상은 물론이고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는 그이기에 그가 영화계를 떠나있었던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떠나 있는 동안 그가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기자 주) 20년만의 복귀 작 <씬 레드 라인>으로 거장의 귀환을 알리며 1999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다. 이후로 연출 뿐 아니라 제작과 기획에도 참여하고 있고  2011년에는 <트리 오프 라이프>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최근 작품들은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대 후반의 테런스 맬릭이 바라본 70년대 미국의 젊은 세대에 대한 해석이 흥미로운 영화다. 그의 영화가 난해하다는 평 때문에 보기를 망설였던 사람이 있다면 그의 데뷔작 <황무지>를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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