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 포스터.

영화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 포스터.ⓒ Trimod Films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처음에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성공조차도 단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했다. 계속해서 비범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의 첫 영화는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을까? 그래서 현재 생존해있는 70세가 넘은 거장들의 첫 영화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은 과연 떡잎부터 달랐을까?" -기자말-

어린 시절부터 영화광이었던 마틴 스콜세지는 뉴욕 예술대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스물다섯의 나이에 첫 장편영화를 연출한다. 그의 데뷔작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는 젊은 감독의 과감한 실험성이 돋보이는 영화다. 

직업 없이 친구들과 노닥거리는 게 전부인 주인공 J.R(하비 케이틀)은 페리 선착장에서 만난 여자(지나 베순이 연기한 이 캐릭터는 이름이 없다)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둘은 여느 연인들처럼 함께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며 데이트를 즐긴다. J.R은 여자를 결혼할 수 있는 순결한 여자와 즐기기만 하는 헤픈 여자 두 부류로 나누고, 여자 친구와의 잠자리는 피하면서 다른 수많은 여자들과는 잠자리를 즐기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여자 친구가 과거 성폭행 당한 사실을 고백했을 때, 성폭행의 원인과 책임이 그녀에게 있다고 여자 친구를 비난하기까지 한다.

왜곡된 성 가치관... 스콜세지 영화들의 특징?
 영화의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의 한 장면

영화의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의 한 장면ⓒ Trimod Films


영화 어디에서도 성 가치관에 대한 종교적 가르침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이 모순된 성 의식을 가지게 된 원인이 종교에 있다고 감독은 간접적으로 말한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 뒤로 음식을 준비하는 여인의 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되고(이 여인에 대한 설명은 따로 없지만 그녀가 J.R의 어머니라는 것을 관객은 추측할 수 있다),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여인과 그녀의 아이들은 식사를 한다. 그리고 영화는 점프해 거리에서 패싸움을 벌이는 J.R과 그 무리들을 비춘다. 뮤지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빠른 비트의 음악을 배경으로 이들의 패싸움은 리드미컬 하게 진행된다.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보수적인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가 실제 밖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뉴욕에서 태어난 마틴 스콜세지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불친절 하고 잦은 플래시백의 사용으로 영화를 연대순으로 이해하는 데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가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 딴 생각을 하듯이 친구들과 노는 중에도 J.R의 기억은 관객을 그의 과거 속으로 데리고 간다. J.R의 기억 흐름에 따라 어떤 부분은 반복 재생되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은 사진처럼 정지해 있다가 끊기기도 하는데 이는 과감한 앵글 선택(극단적인 부감과 앙각이 자주 사용된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의 연속과 함께 영화를 거칠어 보이게 한다. 아직은 미숙한 연출력이라고 볼 수 있지만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의 거친 흐름은 마틴 스콜세지 특유의 빠르고 공격적인 말투와 조화를 이룬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남자 캐릭터들은 대부분 과격한 말투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주로 폭력적인 캐릭터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스콜세지 감독 본인의 말투가 자체가 워낙 빠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의 한 장면

영화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의 한 장면ⓒ Trimod Films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에서 J.R이 여자 친구와의 대화에 물꼬를 튼 것은 서부 영화의 전설, 존 웨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인데 J.R은 신이 나서 서부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는다. 존 웨인의 스틸 사진이 영화 중간 중간 삽입되기도 하지만 그가 이 영화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져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단지 어린 시절 몸이 허약해 실외활동을 하지 못했던 감독에게 유일한 낙이 되어준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을 캐릭터를 통해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자 친구는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님에도 J.R의 영화 이야기를 경청한다. J.R에게 그녀는 아름답고, 다정하고, 자신의 말에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분명 결혼 상대로 손색이 없는 이상적인 여자지만 그녀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녀의 모든 장점들을 퇴색시켜 버린다.

남성 중심의 조직을 배경으로 하는 대부분의 그의 영화에는 성과 관련한 잘못된 의식을 가진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앨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에서는 남자들의 비열함과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는 여자가 등장하고,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데이트 상대를 데리고 영화 데이트랍시고 포르노 극장에 가는 남자와 외도하는 아내를 대상으로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늘어놓는 남자(마틴 스콜세지가 직업 연기한 인물이다)가 등장한다. 그 외에도 많은 영화들에서 자신은 외도를 즐기면서도 가정에서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당시에는 주목 받지 못했지만

 영화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의 한 장면

영화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의 한 장면ⓒ Trimod Films


여자 친구를 향한 사랑과 원망 사이에서 갈등하던 J.R은 여자 친구를 찾아가 자신이 그녀를 용서하며 어쨌든 그녀와 결혼은 할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 그의 방문에 반가워하던 여자 친구가 그의 얼토당토않은 말에 실망하고 그와의 관계를 끝내려 하자 그는 여자 친구를 창녀라 모욕하며 주워 담을 수 없는 심한 말들을 쏟아내고 그녀의 집에서 나와 성당으로 향한다.

그가 무엇에 대한 고해 성사를 하는지 감독은 보여주지 않고 성당 실내의 부분 부분과 J.R의 회상을 빠르게 교차시킨다. 성모상이 보이고 바로 다음에 여자 친구와의 키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보이고 이어서 창녀와의 잠자리, 그리고 기도하는 J.R. 이러한 조합이 몇 번이고 반복되어 나오는데 이는 J.R이라는 인물의 모순을 보이는 동시에 감독이 이를 통해 가톨릭을 비판하고 있다 해석할 수도 있다.

당시로서는 꽤 자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의 전신 노출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관객을 모으기 위한 꼼수였다는 얘기도 있지만 J.R과 여성들의 정사 장면은 2018년에 보아도 노출을 제외하고는 광고의 한 장면으로 보일만큼 미쟝센과 카메라 움직임이 감각적이다.

 영화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의 한 장면

영화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의 한 장면ⓒ Trimod Films


마틴 스콜세지의 데뷔작은 지금의 명성을 예상할 만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B급 영화의 대부, 영화감독 겸 제작자 로저 콜만(그의 밑에서 영화를 배운 감독들로 제임스 카메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등이 있다)에게 발탁돼 <우드스탁 페스티벌> 다큐멘터리 편집을 맡아 영화적 감각을 인정받고 1973년 <비열한 거리>를 통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로 그의 커리어는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로버트 드니로, 하비 케이틀 등 명배우들과 완벽한 호흡을 보이며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성난 황소> <코미디의 왕>등 최고의 영화를 만들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여전히 강렬한 영화들을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50년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분명 80~90년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는 아직은 투박한 세계관과 캐릭터의 표현이 어설프지만 거침없고 도전적인 젊은 감독의 가능성을 느낄 수 있는 영화로 설사 마틴 스콜세지가 지금의 마틴 스콜세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1960년대 후반 저예산 흑백 영화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충분히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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