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6일 만에 바로 섰다, 세월호 10일 오전 전남 목포신항에서 옆으로 누워있던 세월호가 4년 만에 바로 섰다.

지난 5월 10일 오전 전남 목포신항에서 옆으로 누워있던 세월호가 4년 만에 바로 섰다.ⓒ 공동취재사진


세월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세 글자만 보아도 마음이 덜컹 내려앉을 것이다. 참사 발생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잊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는 그 이름 세월호. 지난 10일 참사 이후 줄곧 왼쪽으로 누워 있었던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 진행됐다. 많은 이들이 방송과 인터넷 라이브를 통해 두 눈을 부릅뜨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MBC는 지난달 28일 < MBC 스페셜 > '누운 배 94일의 기록' 편을 방송했다. 이 다큐에는 세월호 직립 착공식이 있었던 지난 2월 6일부터 직립작업이 끝난 5월 10일까지, 94일의 기록이 담겼다.

100일 가까운 시간 동안 세월호 곁에서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제작진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지난달 30일 '누운 배 94일의 기록'을 연출한 명순석 PD를 서울 마포 '명 인터 미디어' 사무실에서 만나 제작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명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지난달 28일 세월호 직립 과정을 담은 < MBC 스페셜 > '누운 배 94일의 기록'을 연출 하셨잖아요. 방송이 나간 뒤 기분이 어떠셨나요?
"2월 6일 세월호 바로 세우기 착공식 겸 위령제를 했어요. 본격적인 촬영은 그때부터였죠. PD들은 방송 마치고 만족을 못해요. 배가 세워진 뒤에 내부 정밀 수색하거든요. 미수습자가 아직도 5명 남았잖아요. 그리고 중요한 게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아직 원인이 규명 안 됐잖아요. 배를 똑바로 세운 뒤 후속 취재까지 하고 싶었는데... 방송 일정 때문에 저희는 바로 세우는 과정까지만 담았죠. 아쉬웠어요."

- 이번 방송 기획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기획을 말씀드리면, MBC에서 먼저 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세월호 선체 조사위에서 직립 과정을 다큐로 담아줄 수 있겠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선체 조사위, MBC 관계자와 1월에 미팅도 했고요. MBC에선 '굉장히 좋은 다큐가 될 것 같다'고 했죠. 저 역시도 어른으로서 잘못한 부분도 있고 방송 PD로서 세월호 관련 다큐를 해보고 싶었어요. 선조위 제안이 있어서 1월부터 준비한 거예요. 본격적 촬영은 위령제 및 착공식부터 시작된 거죠."

- 방송 나간 후 반응은 어땠나요?
"방송 나가자마자 유가족인 건우 어머니에게 문자가 왔어요. '방송 잘 봤고 고맙다'고 하시면서 '아이들 절대 잊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셨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든 힘 보탤 것이다'라고 문자 보냈어요.

현대삼호 쪽에서도 연락 왔어요. 거기에서 진정성 있게 일 해줬거든요. 예산을 180억 원으로 세웠는데 몇 억이 남았대요. 남은 돈을 416가족 협의회에 전액 기부한다고 하더라고요. 현대삼호 쪽에서도 방송 잘 봤고 고맙다고 했고, 다른 분 반응은 모르겠어요. 방송국은 시청률이 중요하잖아요. 요즘 시청률이 잘 안 나오는데 그래도 선전한 것 같아요."

"이 다큐가 세월호 유가족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길"

 명순석 PD

명순석 PDⓒ 이영광


- 얼마 전 MBC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세월호 당일 보도 화면을 자료로 쓰면서 문제가 됐어요. 같은 방송사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상황이라서 좀 난감했을 것 같은데...
"그때가 촬영 막바지였어요. 촬영장에서 기사를 봤죠. 난리 났잖아요. 사실 저희 쫓겨나는 줄 알았어요. 왜냐면 MBC가 잘못한 거잖아요. 그래서 유가족 계시는 곳에 들어가기 겁나더라고요. 나가라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렇진 않았어요. 저희 입장에서는 고의든 실수든 잘못을 크게 저질렀으니 이번 다큐로 조금 더 위로되시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자막 하나하나 내레이션 하나 하나 조심했어요.

영상은 찍는 것이니 상관없지만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어도 조심했죠. 예를 들어, 세월호가 목포 신항에 들어왔을 때  초반에 미수습자 4명이 발견됐잖아요. 그래서 작가가 시적인 언어로 '네 개의 별을 토해냈다'라는 멘트를 썼어요. 별은 이해되는 데 토해냈다는 단어가 걸렸죠. 그래서 '선생님이 나오시고 세 개의 별을 돌려보냈다'라는 식으로 내레이션을 바꿨어요. 그만큼 조심스러웠고, 이 다큐가 유가족 분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드리길 바랐어요."

- 그래도 부담감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잘못한 몇 명 제외하면... 최승호 사장님부터 사과했고 지금 있는 구성원들은 그동안 핍박받다가 새롭게 일하는 분들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이신 것 같고 저는 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어요. 오히려 저는 이번 다큐를 통해 조금이라도 잘못을 사죄하는 방송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 94일이란 날짜는 어떻게 나온 건가요?
"2월 6일 착공식부터 5월 10일까지가 94일이에요. 물론 촬영은 그 전부터 했어요. 세월호 선조위 사무실에서 한 사업 설명회를 찍기는 했는데 그건 준비 과정의 기록이고 본격적인 기록의 시점을 2월 6일로 잡은 거죠."

- 그 전에 세월호 관련 다큐를 촬영한 경험이 있나요?
"저는 없어요. 416연대 기록 다큐팀이 있잖아요. 거기에 선후배 PD가 많이 참여했어요. 저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다른 일 하면서는 하기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머릿속에는 이 아픔을 다큐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는데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 거죠."

- 그럼 부채의식 같은 게 있었을 거 같아요.
"그렇죠. 하고 싶었고 PD로서 해야 하는 건데 참여를 못 하니 저 스스로 고민스러웠어요. 그리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뒤늦게라도 왜 바로 세우기를 해야 하는지 그 과정을 담게 되어서 좋았죠."

- MBC에서 제의 왔을 땐 어땠어요?
"어떤 식으로든 세월호 다큐를 만들고 싶었는데 망설여진 부분은 딱 하나였어요.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더구나 현장이 목포에 있고요. 제가 현재 작은 회사를 꾸리고 있는 중인데 영세한 곳인데다 제작하는 다른 프로그램도 없어서 유지가 힘들어요. 3개월 이상 촬영을 해야 했고 카메라맨도 많아야 했어요. 그런 걸 고려했을 때 제가 제작하기엔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었어요. 하고 싶었지만 회사 차원으로 생각하면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래도 '해보자' 한 거죠."

- 지금 되돌아보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세요?
"잘한 거죠. 그 결정 하고 나니 속이 편하던데요. 돈이 얼마가 들어도 잘 만들자고 했어요. 돈이 얼마가 든다고 해도 좋은 다큐멘터리로 남아 앞으로 도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그 결정 빨리할 수 있었어요."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 세 가지 목적

1486일 만에 다시 선 세월호 10일 오전 전남 목포신항에서 옆으로 누워있던 세월호가 4년 만에 바로 세워졌다.

지난 5월 10일 오전 전남 목포신항에서 옆으로 누워있던 세월호가 4년 만에 바로 세워졌다.ⓒ 유성호


- 방송분을 보면,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다가 중간에 직립일 상황을 삽입하셨던데 이유가 있을까요?
"전체 구성은 그날의 일이에요. 5월 10일이라는 하루의 기록인데 그때를 기점으로 5월 10일이 오기까지 과정이 있잖아요. 바로 세우기 위한 작업 과정이 있고 유가족은 그들대로 중간 중간 일들이 있었죠. 5월 10일이라는 날을 기준으로 오가는 구성을 만든 거죠."

- 어떤 사람이 밤에 아이들 사진에 비비탄 총을 쏜 장면이 나오던데요.
"컨테이너에서 어머님들이 숙식하세요. 전날 밤 10시 이후인 것 같아요, 어머님들 말에 의하면 폭주족 비슷한 차가 왕왕거리면서 지나갔대요. 그땐 '왜 이리 시끄럽냐' 정도였는데 이튿날 보니 그런 거죠. 그래서 폭주족 사람들이란 의심을 하시고 인양분과장님이 CCTV 확인한다고 하셨는데 저희는 못 오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까지 못 담았죠."

- 어디에 중점을 두고 이번 다큐를 만드셨나요?
"제목이 '누운 배 94일의 기록'이잖아요. 바로 세우는 목적이 미수습자들 더 찾기 위해서잖아요. 또 침몰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명확히 규명된 건 하나도 없잖아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적폐를 바로 세운다는 거죠. 이 세 가지가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 목적이거든요. 방송 중간 중간 멘트가 나갔어요. 그런 부분을 가지고 뼈를 만들어서 간 거죠."

- 마지막 부분에서 세월호 내부를 담으셨던데.
"내부 모습은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배 안에서 아이들이 뛰어놀았고 4월 15일 잠을 잤죠. 아이들이 부푼 마음으로 갔을, 수학 여행길의 마지막 장소라서 꼭 보여주고 싶었죠. 시청자들이 그걸 보고 비록 지금은 망가졌지만, 저 안에 차가 있었고 등등... 침몰 전 모습을  상상하면 좋겠어요."

- 방송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면 다를 것 같아요. 실제 내부 모습은 어땠나요?
"저는 2월 5일 밤에 목포 신항에 가서 세월호를 봤어요. 불이 켜져 있었는데 유가족분이 옆을 지나치며 아이들이 옆으로 매달려 있는 거 같다는 말씀을 하더라고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하늘로 올라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바로 세워서 아이들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부에선 특히 기관실이 굉장히 위험해요. 저희도 처음 갔을 땐 못 들어갔는데, 소장님 설득해서 선조위 사무처장님하고 같이 들어갔거든요. 촬영하는 사람은 그런 위험 요소를 생각하고 가긴 하는데 '이게 과연 배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A데크, B데크가 객실이고 C데크, D데크가 화물칸이고 E데크가 기관실이에요. 저희는 기관실까지 들어간 거죠. C, D데크는 넓어요. 기관실은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곳이에요. 기관실은 일하는 사람 이외엔 못 들어가는데 거기서 일반인 유해가 나왔어요. 물에 쓸려 들어간 거죠. 기관실 쪽은 그 당시에도 위험했어요. 미끄럽고 뻘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작하는 사람 입장에선 위험보다는 저곳에 어떤 의문이 있을지가 더 궁금했어요."

- 촬영하며 어려운 점은 뭐였나요.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않았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촬영 초반엔 유가족분들이 마음을 안 열어주셨어요. 거기에선 416연대 기록단이 상주하며 촬영하고 있었거든요. MBC 이미지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과거의 그런 껄끄러움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 MBC 스페셜 >로 다큐 한다고 잘 설명해드렸지만 저희와 거리를 두는 게 보였어요. 저희는 빨리 친해져야 할 분들인데... 제가 416연대에서 활동했다거나 이전에 유가족들을 만난 것도 아니어서 같은 마음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밤에 야식을 사가지고 가서 같이 먹기도 했고요, 매일 출근해서 촬영 전에 유가족 컨테이너에 가서 인사드리고 그랬어요. 유가족분들 마음을 열기까지가 가장 힘들었죠."

- 촬영하며 느낀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늦게 애를 낳았지만 비슷한 부모 세대거든요. 젊은 부모 중 한 명일 수도 있어요. 저 역시 부모 마음이었어요. 저렇게 만든 원인이 뭘까 생각하게 됐죠. 같은 부모로서 분노가 있었고 그 다음 감정은 창피함이었어요. 직접 와서 보니 마음으로 와 닿는데... 분향소 있을 때 안산 간 것 외에는 없거든요. 그런 부분 때문에 굉장히 미안했어요. 세월호를 왜 세워야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게 반드시 세워져서 유가족분들이 원하는 정확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들은 세월호가 바로 서는 것이 마음의 위안이 된다고 했어요. 사실 전 잘 이해를 못 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알겠더라고요."

"대한민국의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했다"

세월호 바로 세우기 작업 지켜보는 유가족들 세월호 참가 유가족들이 10일 오전 전남 목포신항에서 옆으로 누워있던 세월호 바로 세우기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세월호 참가 유가족들이 지난 5월 10일 오전 전남 목포신항에서 옆으로 누워있던 세월호 바로 세우기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유성호


- 촬영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엔 세월호 현장 일반인 참관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도 있었고 (세월호 희생자들) 또래인 대학교 2학년 학생들이 단체로 온 적도 있었어요. 특히 4월 말 비 오던 일요일에는 목포 소재 여고생들이 단체로 왔는데 세월호 모습을 보고 우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왜 우냐고 물어보니 '저 안에 언니·오빠들이 며칠 동안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고 왜 어른들이 빨리 구해주지 않았을까란 생각에 어른들이 미웠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대한민국의 같은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했고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했어요. 집에 있는 우리 딸도 같은 생각이겠구나 했지요.

제가 20여 년 동안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처음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인터뷰어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4월 15일 밤 노란나비를 만들고 있는 유가족 컨테이너에서 어머니들께 질문을 하고 있었어요. 건우 어머님이 정문 앞에 있는 아이들 사진을 매일 닦으며 '이 사진 속에 우리 아이가 없었으면 난 유가족이 아닐 텐데'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로서 꿈같은 간절함이 느껴졌어요. 원래 PD는 인터뷰어 앞에서 감정을 비치면 안 되는데 그때 처음으로 눈물이 났습니다. 다신 이런 일어나지 말아야죠. 아픈 일로 인터뷰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 이번 다큐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일부에선 '돈 그렇게 들여서 굳이 세워야 하냐'고도 말해요. 그런 분들이 방송을 보시고 왜 이 배가 세워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한 가지라도 알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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