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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6일 오후 전남 목포 신항만에 거치된 세월호 앞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이 해양수산부의 수색 종료 방침을 수용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7년 11월 16일 오후 전남 목포 신항만에 거치된 세월호 앞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이 해양수산부의 수색 종료 방침을 수용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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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일간의 기다림, 그리고 끝

<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은 끝내 시신을 찾지 못한 단원고 남현철, 박영인 학생, 단원고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 권혁규 부자의 유가족들이 시신 없이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경태, 남소연, 소중한, 신나리, 유성애, 이희훈 기자는 2017년 11월 18일부터 사흘간 치러진 장례식에서부터 2018년 1월 5일 사십구재, 1월 16일 현충원 안장까지 유가족들과 함께 한다. 이 책은 그 기록이다.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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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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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와 녹음기는 유가족들의 얼굴과 말을 가까이에서 포착한다. 기자들에게 곁을 내준 유가족들은 그들의 슬픔과 아픔과 그리움을 눈물 섞인 목소리로 토해낸다. 세월호를, 돌아오지 못한 다섯 명을 잊지 말아 달라면서. 기억에 남는 몇 장면을 다시 지면에 옮긴다.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7개월, 팽목항에서 17개월, 목포신항에서 7개월 총 1313일간의 애끓는 기다림이 끝이 나던 순간. 2017년 11월 16일 목포 신항 세월호 선체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마지막 네 가족은 이렇게 말했다. 

"하루하루 수색이 끝나갈 때마다 우리도 가족을 찾아 떠날 수 있다는 희망보다 영원히 가족을 못 찾을 수 있다는 공포와 고통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일각에서는 저희 가족들을 못마땅하게 보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뼛조각 하나라도 찾아 따뜻한 곳으로 보내주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월호 선체 수색이 마무리 돼 가는 지금 저희 가족들은 비통하고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책에는 '뼛조각 하나조차 찾지 못한'이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슬픈 이별을 뜻한다는 단장(斷腸)의 아픔을 겪은 유가족들은 아들의, 남편의, 동생과 조카의 뼛조각 하나라도 찾아 고이 보내주길 바랐지만 이마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시신 없는 빈 관으로 장례식을 치를 수밖에 없었고, 봉안함에는 유해 대신 세월호가 수장돼 있던 병풍도 해저 흙과 단원고 흙이 담겼다. 유가족들은 해저 흙이라도 담게 돼서 조금은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르게 돼 마음 한편이 뻥 뚫려 있었는데, 조금은 메울 수 있을 것 같다."

시신 없는 장례식 치르는 가족들

장례식을 치르기로 결정하면서 유가족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족들은 조심스레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과 언론, "채 피워보지 못하고 떠난 아들의 이름에 흠을 내는 인터넷 댓글들이 무서"워 고개를 숙이고 살았다는 단원고 남현철 학생 엄마는 "마음을 추스르고 나면, 무엇을 하든 현철이 이름으로 봉사를 하면서 살 것"이라고 말했다.

남현철 학생 엄마, 아빠는 진도 체육관에서 여러 번 기절했다고 한다. 아빠는 팔이 부러진 고통도 잊고 신열에 들떠 아들을 찾아 헤맸고, 스트레스로 인해 윗니 뿌리가 모두 녹아내려 모두 빼내기까지 했다. 현철 아빠는 말했다.

"제가요. 아이 시체를 몇 구나 봤는지 아세요? 키가 비슷하거나 한 군데라도 닮은 것 같으면 시신이 수습된 곳을 꼭 찾아가 봤어요. 남자아이 시신을... 솔직히 시신 찾으면 빨리 처리하고 나서 나도 따라 죽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계속 안 나오더라고. 그래서 현철이가 아빠 살리려고 안 나오는 건가 싶었어요. 나중엔 '안 죽을 테니까, 현철아, 빨리 나와라' 속으로 외쳤죠."


2017년 11월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 세월호 미수습자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2017년 11월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 세월호 미수습자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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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박영인 학생의 유가족은 그 사이 두 번의 장례식을 치렀다. 지병이 있던 외할아버지가 세월호 소식을 듣고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영인이를 키운 친할머니는 영인이가 죽은 뒤 림프종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영인이 엄마는 "(친할머니가) 너무 애타는 마음이라 영인이를 보러 가신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키운 손주, 당신이 다시 보살피러 떠나신 거 같아요"라고 말하며 이 생각이 위안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장례식. 영인이 아빠 박정순씨는 장례식을 치르기로 결정했지만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뀐다고 말했다. "10년, 20년이 걸려도 찾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니 장례식을 할 수밖에 없다. 

양승진 교사 아내 유백형씨는 "마술이라도 부려 바닷물을 싹 빨아들이고 싶"고, 마음 같아선 "바다에 풍덩 뛰어 들어가 남편을 데려오고 싶"다며 애달픈 마음을 전했다. 권재근, 권혁규 부자를 기다려온 건 권재근씨 형 권오복씨였다. 권재근씨 가족 넷 모두 세월호에 타고 있다가 여섯 살 막내딸만 살아 돌아온 탓이다.

권오복씨는 "저 배만 들어 올리면, 이제 저 안으로 들어만 가면, 조카와 동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마음을 내려놓게 됐다며 동생과 조카에게 말했다.

"내 동생 재근아, 참, 서글프지만... 끝내야겠다. 혁규야, 너도 인제 그만 저세상 좋은 데 가서 잘살아라. 미안하다. 이제 끝내야겠다..."

총 4부로 나누어져 있는 책의 3부 제목은 '입관과 발인'이다. 3부에서 카메라는 목포 신항을 떠난 유가족들이 서울과 안산의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좇는다. 상황을 사실 그대로 옮겨 적은 문장들인데도 특히 3부는 울지 않고 읽어내기 어려웠다.

시신 없이 꽃으로 꽉 채워진 관에 아빠에게 부치는 편지를 넣는 딸, 아들. 아들의 관을 바라보는 노모. 동생과 조카를 떠나보내는 친척들. 선생님을 보러 온 제자. 친구를 보러 온 친구들. 자꾸만 쓰러지는 엄마, 엄마를 부축하는 형. 그들의 눈물. 단원고 박영인 학생의 형도 동생과 어렵게 작별하고 있었다. 

"장례 내내 굳건한 모습을 보이던 큰아들이 동생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봉안함을 꽉 움켜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형. 결국 그도 무너지고 말았다. (중략) 봉안함에 얼굴을 기댄 형의 "엉엉" 우는 소리에 주변이 눈물바다가 됐다. 지켜보던 엄마가 큰아들의 팔을 끌어당겼다.
"아이고, 우리 아들..."
"엄마, 영인이 못 가면 어떡해..."
"아니야, 아니야. 걱정 마. 우리 영인이, 잘 가고 있을 거야. 잘 가고 있을 거야."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의 의미

유가족들이 사랑하는 이를 기리며 사십구재를 치르고, 양승진 선생님이 무사히 현충원에 안장되는 모습을 보고 나서 책을 덮자 책 표지를 가득 채운 노란색이 보였다. 세월호 리본과 같은 노란색. 사랑하는 이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을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의 노란색.

이 노란색을 바라보고 있자 현철 아빠가 2017년 5월에 썼다는 일기의 기도가 떠올랐다. 산에 올라 돌탑을 쌓으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는 현철 아빠가 첫 돌, 두 번째 돌, 세번 째 돌을 쌓으며 한 간절한 기도. 장례식을 치른 후지만 이 기도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돌의 기도는 아이를 뼈만이라도 돌려달라는 기도이고, 두 번째 돌의 기도는 아이가 혼탁한 세상이 아닌 평화롭고 평온한 곳에서 쉴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이며, 세 번째 돌의 기도는 우리 부부가 아이를 가슴에 묻고 남은 평생을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기억은 차츰 희미해진다. 많은 경우 망각은 그 자체로 우리 삶을 치유하는 힘이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기억하려 노력함으로써 우리를 치유하고, 잊지 않고 보존함으로써 우리를 인간답게 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 또한 그렇다.

손쉽게 잊어버리는 아픈 기억으로의 세월호가 아니라 애써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아픈 기억으로의 세월호. 더 많은 사람이 세월호를 기억함으로써 기억이 기준이 되고 기준이 이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이끌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 이야기가 나올 때면 또다시 '잊지 말자' 되뇌는 걸 테다.

책에는 세월호 4주기 하루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 인용돼 있었다. "유가족들께서는 슬픔을 이겨내며 우리들에게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건네주셨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날 이런 말도 했다. "우리가 아이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죽음을 바라보며 생명의 존엄함을 되새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세월호를 계속 기억할 수 있을까.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이 기록일 것이다. 누군가는 기록하고 누군가는 그 기록을 읽으며 기억은 이어질 것이다. 이 책 <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 또한 세월호를 기억하게 할 또 하나의 기록이다.

덧붙이는 글 | <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저 : 이경태, 남소연, 소중한, 신나리, 유성애, 이희훈/ 출판사 : 북콤마 / 발행 : 2018년 05월 01일쪽수 : 288/ 1만 5천 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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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 - 1313일의 기다림

이경태 외 지음, 북콤마(2018)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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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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