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디트로이트 폭동을 배경으로 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영화 '디트로이트'

1967년 디트로이트 폭동을 배경으로 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영화 '디트로이트' ⓒ 그린나래미디어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역사극은 언제나 최고조의 긴장으로 보는 이들을 옥죈다. 사선을 넘나드는 폭탄 제거반의 <허트 로커>와 9/11 테러 이후를 추적하는 CIA 요원의 <제로 다크 서티>의 거칠고 건조한 시선은 극한의 리얼리즘이며 생생한 학대의 현장이다. <디트로이트>가 더 끔찍한 것은 그 무대가 전쟁통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1967년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가장 큰 도시였던 디트로이트의 폭동이라는 데 있다.

19세기 노예 해방과 농업 산업의 변화로 일거리를 찾아 북부 대도시로 이주한 흑인들은 압제적 공권력의 감시와 공공연한 차별에 시달렸다. 압제적 공권력에 쌓여가던 분노는 종종 폭동으로 터져 나왔지만, 그 대가는 어제까지 집이자 일터였던 곳에 경찰과 주방위군이 들이닥치며 꿈과 일상을 생존 앞에 산산조각 내버리는 비극이었다.

이 '일상성'이야말로 <디트로이트>를 규정하는 단 하나의 단어다. 폭동의 배경을 설명하는 도입부의 유화 애니메이션을 제외하면 영화는 거의 한 편의 다큐멘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실적이다. 거리는 불타고 가게는 약탈당하며, 경찰과 주방위군이 질서라는 이름 아래 무자비하게 시민들을 탄압한다.

 '디트로이트' 영화 속 가게를 경호하던 멜빈(존 오코예 분)은 예상치 못한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디트로이트' 영화 속 가게를 경호하던 멜빈(존 오코예 분)은 예상치 못한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 그린나래미디어


이리저리 흔들리며 마치 실제 시선을 목격하는 듯한 카메라와 그 당시 뉴스와 사진이 어지럽게 교차되며 이 생지옥이 엄연한 현실이었음을 증언한다. 영화의 주무대가 되는 알제 호텔 신을 주목하기 전까지의 전개는 일종의 '기록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인종 갈등의 폭발과 가혹한 진압, 최소한의 권리를 위해 울부짖는 이들을 영화는 냉정히 '목격'한다.

영화에는 이렇다 할 주인공이 없다. 약탈로부터 가게를 지키는 멜빈(존 보예가 분), 뮤지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래하는 래리(알지 스미스 분), 포드 공장에 다니며 래리의 성공을 응원하는 브랜드는 폐허가 된 도심 속 어떻게든 일상을 꾸려가는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이다. 악질 백인 경찰 필립(윌 폴터 분)과 그 동료들의 악마 같은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지만, 그들의 야만성이 타 가해자들과 확실히 구분될 뿐 근본적인 폭력과 멸시의 시선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때문에 이것은 개인 대 개인의 대결이 아니다. 기만과 인종 차별의 거대한 권력 구조와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들의 눈물겨운 투쟁이다. 영화를 대표하는 40분짜리 알제 호텔은 바로 이런 불평등의 폭력을 압축해서 드러내는 공간이다. 홧김에 장난감 총을 쐈다는 이유로 수백 발의 대응 사격을 하고, 저격수를 찾아낸다는 명분 하에 구타와 폭력, 협박이 정당화되며 급기야 억울한 생명을 거리낌 없이 살해한다.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 경찰에 의해 3명이 살해된 알제 모텔 사건은 1967년 디트로이트 폭동 당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다.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 경찰에 의해 3명이 살해된 알제 모텔 사건은 1967년 디트로이트 폭동 당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다. ⓒ 그린나래미디어


진실은 폭력 앞에 무의미하고, 야만이 지배하는 좁디좁은 현관문에서 강제로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흑인들의 모습은 인간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현실에서 진실을 말한 이는 총탄에 쓰러지고, 공포 속 침묵을 선택한 이들 역시 삶의 이유와 터전을 잃는다. 그리고 이 사건을 조용히 목격하고 있던 이 역시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누명을 쓴다.

영화가 알제 모텔 사건 이후의 법정 싸움과 피해자들의 삶을 주목하는 이유다. 기나긴 법정 공방에서조차 편견과 차별의 시선은 가해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디트로이트를 떠나지 못한 유족들은 기나긴 차별의 시간을 견디며 지금까지 영욕의 세월을 살아내고 있다. 모타운 레코즈에서 성공을 꿈꾸던 래리는 가수의 꿈을 포기하고 지금까지도 동네 교회의 성가대로 가스펠을 부른다.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던 래리의 그룹 드라마틱스의 노래가 '주여, 대체 어디에 계신 겁니까?'라는 절절한 목소리로 맺음 지어지는 실제의 사건이었다.

<디트로이트>를 관통하는 리얼리즘은 50여 년 전 한 도시를 폐허로 만든 인종 갈등이 지금까지도 유령처럼 우리의 곁을 배회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시킨다. 가해자는 생존했지만 피해자는 돌아올 수 없는 가혹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갈등과 폭력의 심지는 지금 이 순간도 쉴 틈 없이 타들어간다. 비단 미국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와 생존을 위해 총을 잡았던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학살했던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겪은 우리에게도 영화의 건조한 시선은 충분히, 아니 그 이상으로, 섬뜩하게 현실을 직시한다.

* 1960~1970년대 소울 그룹 사운드를 담은 영화 사운드트랙, 2018년 블랙 커뮤니티의 자화상을 보여준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를 함께 들어볼 것.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도헌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186)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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