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영혼의 순례길> 순례

▲ 영화 <영혼의 순례길>순례ⓒ 영화사 오원


시집이나 에세이집 제목에는 '길'이 들어가는 게 많다. 길에서 길을 묻거나 찾거나, 또는 길에게 묻거나 찾는다. '에서'와 '에게'의 차이는 단지 책 이름으로는 크지 않지만, 정말 묻거나 찾고자 한다면 본질적인 차이를 발생시킨다. 즉 길에게 길을 묻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길을 찾고자 한다면 오직 길에서 길을 물어야 한다.

길에서, 길을 물어야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성립하는 까닭은, '에서' 자체가 '찾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알쏭달쏭한 이 말을 쉽게 풀어 쓰면, 직접 길에 나서지 않고 예를 들어 사유를 통해서도 (길에게) 길을 물을 수 있지만, 길을 나서서, 즉 길 위에서 (길에게) 길을 묻는 실천의 구도는 몸을 찾음에 정향(定向)하는 작업을 필수적으로 요한다. 몸을 활용한 찾음은 책상머리 구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찾음이다. 새로운 차원은 당연히 길에서 열린다. 길을 대상으로 마주 대하는 것이 아니라 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핵심이다.

깨우침은 조근조근 권면하거나 투철한 이론으로 풀어헤쳐 내는 것보다, 죽비의 실존적 일격이 대체로 더 효과적이다. 제대로 접해 보지 않아서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나, 나에게는 티베트 불교가 후자의 대표적 사례이다. 성도(聖都)와 성산(聖山)을 향한 순례의 길에서 행하는 오체투지는 스스로에게 가하는 '몸 죽비'이다. 오체투지는 길에서 길에게 내려치는 죽비이며 이때 몸은 암수동체처럼 내려치고 맞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영화 <영혼의 순례길>(Paths of the soul)은 티베트 불교에서 특징적인 오체투지의 순례를, 과장 없이 담담하게 잡아낸 나름의 '영화 죽비'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영화 안으로 내려치는 죽비와 영화 밖으로 내려치는 죽비 사이에는 공력에 천양지차가 있기에 '영화 죽비'라는 표현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기를 바란다.

길에서 만나는 부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차마고도의 여러 노선 중 하나가 지나가는 티베트 동부 망캉(芒康)주의 한 마을. '신들의 땅'이라 불리는 성지 라싸와 성산 카일라스산으로 순례를 떠나는 것이 꿈인 마을 사람들이 순례를 떠나 길에서 보내는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다.

죽기 전에 순례를 떠나고 싶다는 노인, 살생을 너무 많이 했다는 백정, 출산을 앞둔 임부, 어린 소녀까지 모두 11명의 망캉 티베트인이 순례단을 구성한다. 이들이 1년 동안 순례한 길은 2500km. 고속도로로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약 400km다. 이들의 순례길은 서울~부산을 3번 왕복하고도 100km이상을 더 가야한다. 게다가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삼보일배로 길을 간다. 티베트 불교인이다 보니, 3걸음에 한번 하는 절이 보통 절이 아니라 오체투지의 절이다.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하는 방법은, "먼저 합장한 자세로 두 무릎을 꿇고 합장을 풀어 오른손으로 땅을 짚은 후 왼손과 이마를 같이 땅에 댄다. 그리고 두 손을 뒤집어 손바닥으로 공손히 부처를 받드는 동작을 한다. 오체투지는 중생이 빠지기 쉬운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예법이다."(두산백과)

그러다 보니,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손바닥에 댈 나무장갑 비슷한 것을 만들고 무릎까지 덮는 가죽앞치마 같은 걸 준비한다. 아무리 불심이 강한 티베트인이지만 맨 땅에다 그냥 몸을 던졌다가는 몸을 온전하게 보전하기 힘들다. 영화를 보면 곧 느끼게 되지만 사전준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보호장구는 너무 빈약하다. 게다가 길은 얼마나 험한지.

영화 <영혼의 순례길> 오체투지 삼보일배

▲ 영화 <영혼의 순례길>오체투지 삼보일배ⓒ 영화사 오원


가장 기초적인 장구를 갖춘 채 이들은 오체투지로 서울~부산을 3번 왕복하는 거리를 씩씩하게도 간다. 순례단이 오체투지로 삼보일배하는 도로의 중앙선 너머에선 거대한 공사용 트럭이 질주하며 이들을 아슬아슬하게 비켜지나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순례의 난관은 수없이 많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도로에 면한 절벽 위쪽에서 돌무더기가 떨어지고, 심지어 순례단의 병참 기능을 수행하는 경운기가 다른 차량에 받치기까지 한다.

교통사고로 경운기가 고장 난 뒤로는 그동안 경운기 뒤에 매단, 천막 등 각종 물품을 실은 수레를 일행이 직접 밀고 간다. 한데 그 길이 어디 서울~부산 고속도로 같은 길인가. 차마고도가 통과하는 티베트의 고산지대이다. 티베트의 오르막길로 온갖 물품을 가득 실은 수레를 죽을 둥 살 둥 밀고 올라가 세워놓은 다음에는, 수레를 민 사람들이 다시 출발점으로 가서 맨 몸으로 오체투지의 삼보일배를 진행하여 되돌아온다. 이 사람들은 적당히 하는 법이 없다. 온몸과 이마를 대는 땅에서 매순간 부처를 느꼈기 때문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매순간 느끼는 건 고통일 테고, 생생한 고통 속에 현현하는 부처를 포착하려 단지 애를 쓸 뿐이 아니었을까.

오체로 받아들이는 세계의 중심

순례단의 여정은 성지 라싸에서 끝나지 않았다. 티베트의 동쪽 망캉에서 출발한 이들은 성도 라싸에서 1차 목표를 달성한 뒤 잠시 쉬어간다. 육체의 회복을 위한 휴지가 아니라 티베트 서쪽의 성산 카일라스산으로 이동할 경비를 벌기 위해서다. 필요한 돈을 모으자 이들은 다시 출발한다.

티베트인 뿐 아니라 주변 국가의 많은 사람들이 성산(聖山)으로 추앙하는 카일라스산은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는 수미산(須彌山)으로 부르며 신성시한다. 티베트 고원 서남부에 있는 강디쓰 산맥을 구성하는 수많은 봉우리들 중 하나이며 세계적인 대하천의 발원지이다. 티베트 고원을 흐르는 4대 하천인 브라마푸트라 강, 인더스 강, 수틀레지 강, 갠지스 강이 여기서 발원한다. 티베트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뵌교 등 4개 종교의 성지이다.

알려진 해발고도는 6700안팎이다. 고도가 정확하지 않은 건 수미산이 성산이기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 산을 우주의 중심이라 믿고 수미산이라 칭한다. 이처럼 이 산을 신성시하기 때문에 정상도달은 물론 등반 자체를 금기시해 아직까지 정확하게 고도를 측정하지 못했다.

수미산 밑동 돌기를 '코라'라고 한다. 수미산뿐 아니라, 라싸 등 신성한 장소를 도는 행위나 도는 곳을 코라라고 한다. 수미산 코라를 한 번 돌면 금생의 죄업을 씻고, 108번 돌면 해탈하여 성불한다고 한다.

영화에서 순례단의 일원인 노인은 기나긴 여정이 끝나가는 수미산에서 숨을 거두고 산자락에 묻힌다. 우리 시각으론 객지에서 비명횡사한 것이지만 티베트 불교인 입장에선 아름답고 축복받은 죽음이다. 11명으로 떠난 순례단은 노인의 죽음에도 떠난 숫자를 그대로 유지한다. 순례 중간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이미 다가올 죽음을 벌충하였기 때문이다.

순례길에서 대면한 삶과 죽음. 오체투지를 통해 끊임없이 마주한 티베트 고원의 흙과 먼지. 힘들게 무릎을 세우면 시야에 들어오는 설산과 푸른 하늘. 영화를 보다 보면 특정하기는 힘들지만, 순례단이 어느 순간엔가 부처를 만났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逢佛殺佛)고 했던가. 티베트의 산과 하늘을 닮은 순례단의 표정, 그리고 그들이 겪은 노고를 생각하면, 순례단이 부처를 죽이지는 않았을 것 같고, 다만 길에서 만난 부처를 길에서 떠나보내고 빈손으로 귀향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부처를 닮은 티베트의 산하

영화 <영혼의 순례길> 순례

▲ 영화 <영혼의 순례길>순례ⓒ 영화사 오원


앞서 이 영화에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라는 단서를 달았는데, 그 이유는 그냥 있는 것을 보이는 대로 찍은 게 아니라 장양 감독이 <영혼의 순례길>에 영화적 설정을 가미한 데에 있다.

장양 감독은 이 영화를 찍게 된 계기를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오래 전 순례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동기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는 이 영화의 등장인물과 비슷한 인적 구성의 순례단과 조우한 경험이 있다. 노인, 젊은이, 임부, 순례길에서 태어난 4개월 된 아이 등으로 구성된 순례단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캐릭터를 생각해 두었다. 그러고는 이 모든 인물을 한꺼번에 만나기 위해 티베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마침내 망캉주의 한 마을에서 찾아내는 데에 성공한다. 영화 <영혼의 순례길>을 만들기 위한 감독만의 순례가 선행됐던 셈이다.

장양 감독의 제안과 설득을 받아들여 마을 사람들은 순례단을 만들어 여정에 돌입한다. 다른 욕심이 있었다기보다는, 티베트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성지 순례를, 이렇게 이교도 영화감독이 찾아와 권유한 데에는 '부처의 뜻이 작용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사실 이 순례단은 배우다. 다만 그들은 연기하지 않고 그저 삶을 산다. 영화로 기록된 특정한 시점에는 순례한다. 감독의 의도가 개입했지만, 제작과정에서 영화적 설정이 무력해지기에 영화는 저절로 다큐멘터리가 되고, 그 이상이 된다.

장양 감독이 1년 동안 해발고도 4000m의 험준한 길 위에서 그들과 동고동락하였음은 물론이다. 보는 사람보다는, 만드는 사람과 출연한 사람이 기독교식으로 말해 더 큰 은혜를 받지 않았을까. 그러나 보는 사람에게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잖은 은혜가 주어진다.

"다큐멘터리식으로 대본도, 전문 배우도 없이 촬영된 이 영화는 내게 힘든 도전이었지만 동시에 놀라움과 진정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는 장양 감독의 소감은 아마도 100% 진심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정말로 길에서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하는 말이다.

5월 24일 개봉됐다.

덧붙이는 글 안치용 시민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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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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