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한국시각) 영국 리버풀 에코 아레나서 있었던 'UFC FIGHT NIGHT 130'대회를 앞두고 해외 팬들 사이에서 '고질라' 대런 틸(25·영국)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랭킹 1위 '원더보이' 스티븐 톰슨(35·미국)과의 승부에 강한 자신감을 표출했으면서 정작 계체는 실패해버렸기 때문이다.

평소 틸은 "나는 웰터급에서 뛰는 라이트헤비급 선수다"라며 자신의 큰 체격을 자랑하고는 했다. 실제로 틸은 신장도 크지만 체격 자체가 워낙 좋은지라 탈 웰터급 파워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선수가 체중오버를 했다는 것은 상대 선수 입장에서 매우 치명적이다. 더욱이 지난해에도 계체 실패를 했던 전례가 있었던지라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틸은 그러한 부분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경기가 펼쳐지는 리버풀은 자신의 홈그라운드였던지라 계체 실패와 관계없이 최고의 분위기에서 싸울 수 있었다. 이를 입증하듯 틸은 경기 내내 엄청난 환호와 응원을 한 몸에 받았고 본의 아니게 '악역'이 된 톰슨은 심한 야유 속에서 외롭게 경기를 펼쳐야 했다. 경기장 분위기만 본다면 마치 톰슨이 계체에 실패한 선수 같았다.

틸은 자유롭게 경기장 분위기를 조율(?)했다. 경기가 지루하게 흘러간다 싶으면 양손을 휘저으며 관중들의 함성을 유도했고 톰슨에게 쏟아지는 야유를 손짓 한번으로 순간적으로 끊어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지루한 경기 양상이었음에도 관중들의 분위기만 보면 틸이 엄청난 플레이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주최 측에서 밀어주는 영국스타, 어디까지 성장할까?

톰슨은 특유의 미끄러지는 듯한 스탭으로 옥타곤을 넓게 쓰며 자신의 거리를 만들어갔다. 마치 '경공술(輕功術)'을 쓰는 무협소설 속 협객 같았다. 우람한 체격의 틸은 중앙을 차지한 채 성큼성큼 압박해갔다. 탈 웰터급 체격의 소유자인지라 힘과 맷집에서는 톰슨보다 우위에 있어보였다.

톰슨은 원거리를 유지하다가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고 짧게 치고 빠지고를 반복했다. 틸의 레프트가 터질 어설픈 중거리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았다. 틸도 1라운드에서는 구태여 무리를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2라운드부터는 틸도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앞손으로 견제해주고 미들킥을 차며 장기인 뒷손 레프트 스트레이트 타이밍을 노렸다. 톰슨이 가까이 붙었다 싶은 순간에는 적극적으로 넥클린치 후 니킥을 노렸다. 스탭이 좋은 톰슨 저격용으로 들고 나온 맞춤형 무기로 예상됐다. 힘에서 밀리는 톰슨 입장에서는 꽤나 부담스러운 옵션이었다.

틸은 체격이 클 뿐 아니라 빠르고 신중하기까지 하다. 톰슨의 기습적인 돌려차기와 옆차기, 하이킥 등도 잘 흘려냈다. 때문에 톰슨도 경기를 풀어나가기 쉽지 않았다. 물론 뜻대로 플레이가 안 되는 것은 틸도 마찬가지였다. 틸이 왼손을 내려고 할 때마다 톰슨의 짧은 펀치와 킥이 먼저 나오는지라 번번이 타이밍을 놓쳤다.

전체적으로 경기 흐름을 잠식해가는 쪽은 톰슨이었다. 틸의 반응속도 또한 좋은 편이었으나 그림자처럼 상하좌우를 오가는 톰슨을 맞추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뒷손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아무리 장전해도 발사할 타이밍을 제대로 잡기 어려웠다. 기회다 싶어 뻗는 순간 어느새 톰슨은 멀찌감치 빠져버리거나 어깨에 걸리기 일쑤였다.

시종일관 어려움을 겪던 틸에게도 5라운드 막판 기회가 왔다. 톰슨이 다소 방심한 틈을 타 드디어 왼손 한방이 제대로 걸렸다. 충격을 받은 톰슨은 그대로 다운됐다. 왜 틸의 왼손이 위험한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노련한 톰슨은 이내 몸을 일으켜 빠져 나갔다. 케이지로 몰린 상황에서 흐름이 좋지 않게 흘러가는 듯 싶어지자 기습적으로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며 틸의 리듬을 끊어버렸다.

왼손에 해머를 든 거대하면서 빠른 '영국산 고질라' 틸과 날렵한 '엘프족 궁사' 톰슨의 대결은 의외의 판정결과가로 이어졌다. 놀랍게도 판정단은 만장일치로 틸의 승리를 선언했다. 비록 막판 다운을 한번 빼앗기기는 했으나 경기 내내 지속적으로 잔 타격을 맞춘 쪽은 톰슨이었다. 틸이 맷집이 좋아 티가 안났을 뿐 깔끔한 정타도 매라운드 여러 차례 들어갔다.

다소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톰슨은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틸은 마치 챔피언 타이틀이라도 차지한 듯 괴성을 지르며 옥타곤에서 포효했고 영국 관중들 역시 엄청난 함성으로 화답했다. 비록 계체에는 실패했으나 톰슨과의 경기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된 틸이었다.

 대런 틸은 계체실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

대런 틸은 계체실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 ⓒ UFC


애매한 판정으로 홈에서 경기를 이기기는 했지만 어쨌든 틸은 톰슨이라는 거물을 잡아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현 챔피언 '선택받은 자(The Chosen One)' 타이론 우들리(36·미국)를 도발할 자격을 얻게 됐다. 팬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손해보지 않는 영리한 경기운영을 하는 두 선수가 맞붙게 되면 '또 얼마나 지루한 경기가 나올까' 벌써부터 걱정하는 분위기다.

17승 1무의 전적으로 무패(UFC 6연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틸은 흡사 자신 이전 영국을 대표했던 파이터 마이클 비스핑(38·영국)을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선수 생활 초창기 엄청난 연승행진을 비롯 영국, 미국 백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받고 있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소 찌질한 행보를 보이면서도 정의롭고 멋있는 파이터로 보이고 싶어한다는 부분도 판박이다.

물론 주최 측과 영국 팬들은 비스핑에 그치지 않고 아예 '잉글랜드판' 코너 맥그리거(30·아일랜드)를 기대하고 있다. 자신의 거리를 잡고 싸우면서 벼락 같은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주무기로 한다는 점에서 파이팅 스타일도 닮아있다. 장외에서의 독설 실력 역시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계체 실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이익을 챙긴 틸이 어떠한 유형의 캐릭터로 진화할지 지켜보는 것도 UFC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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