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포스터.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무서운 영화를 보면서 두려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감정이입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감독이 정한 인물의 시점에 따라 스토리를 본다. 보통 그 주체는 주인공이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스토리를 따라가며 갖은 갈등과 고난을 우리도 같이 겪는다. 감독이 만든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막연하거나 비약적인 스토리의 영화는 외면 받기 쉽다. 관객에게 공포를 주입시키기 위해 외계 생물체든, 실제로는 보기 힘든 미친 살인마가 나오든 간에 나름의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조금 다르다. 비현실적인 괴물 대신 차가운 현실이 공포의 대상이다. 그저 우리가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을 다룰 뿐인데도 웬만한 공포영화보다 무섭다. 이는 현실이 허구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 수남(이정현)을 살펴보자.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수남에게 닥친 시련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수남 역을 맡은 이정현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수남 역을 맡은 이정현 ⓒ CGV아트하우스


수남은 학창시절, 선생님이 추천하는 주산 등의 자격증을 모조리 취득할 만큼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컴퓨터의 등장으로 모든 자격증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리하여 결국 작은 공장에 취직하여 구박을 받으며 지내던 중,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결심한다. 행복을 꿈꾸던 것도 잠시, 원래도 좋지 않았던 남편의 귀가 아예 안 들리게 된다. 최신식 보청기를 끼면서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지만 내 집 마련과 신혼여행의 꿈은 저 멀리 날아갔다. 남은 건 2000만 원이라는 빚뿐이다.

그 후로도 그녀의 고난은 계속된다. 공장에서 일하던 남편은 보청기에서 나는 삐 소리에 잠시 정신이 팔려 손가락 세 개를 잃는다. 그로 인해 남편은 삶에 대한 의지마저 잘려 나갔다. 수남은 남편의 소망이었던 집을 사기 위해 잠도 아껴가며 그의 몫까지 뼈 빠지게 일했다. 집념의 그녀는 마침내 집을 살 수 있게 됐지만 대출한 금액이 모은 돈 보다 많다. 후에 자살 시도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고심하던 중, 수남의 동네가 재개발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수남은 재개발 반대 세력을 일일이 찾아가 서명을 받으려 고군분투한다.

주목해야할 점은 이 과정에서 그녀가 살인자가 된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순수하던 그녀를 누가 살인범으로 만들었을까. 식물인간이 된 남편일까 아니면 그녀에게 고문, 감금을 일삼는 재개발 반대 단체일까. 혹시 너무 순수하고 성실하기만 했던 그녀 자신의 문제일까. 만약 그렇다면 순수와 성실이 어쩌다 잘못으로 의심받게 됐을까. 이 덕목들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요구하던 것들 아니었던가.

특히, 성실은 언제, 어디서든 모두가 꼭 필요하다고 역설하던 덕목이다. 열심히 해야 취직한다, 열심히 해야 승진 한다 등 먹고 살려면 열심히 해야만 했다. 이렇듯 사회는 성공을 이야기할 때 환경이나 제도보다도 개인의 노력에 초점을 맞춰서 해왔다. 다수의 기성세대들은 취업난, 잦은 이직 등을 청년들의 불성실을 주된 이유로 삼으며 몰아붙여왔다. 하지만 수남의 꼴이 어떤가. 취미생활은커녕 잠도 못 자고 일만 해도 그녀의 인생은 도무지 빛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과연 영화라는 허구라서 보다 심각하게 표현된 걸까.

유쾌하게 표현했지만 씁쓸한 현실 담았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경숙 역을 맡은 서영화, 수남 역을 맡은 이정현.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경숙 역을 맡은 서영화, 수남 역을 맡은 이정현. ⓒ CGV아트하우스


분명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화 매체의 특성상 극적으로 표현됐다. 현실에서 그녀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이는 흔치 않다. 그러나 그녀에게 닥친 불행을 나눠서 보면 재개발 계획으로 인한 충돌, 가족 부양 등을 각각 겪는 이들은 주변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잠을 줄이며 일하는 노동자는 너무 많아 사회 문제가 될 정도다.

게다가 영화는 인물들의 표정과 대사를 다소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마치 총을 장전하고 적을 처치하는 특수요원처럼 청소, 신문배달 일을 하는 수남의 모습은 오히려 암울한 상황을 덜 비극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공포로 다가온다. 결국 영화라서가 아닌 애초에 현실 자체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안국진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가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루면서도 희극적 분위기를 가미해 사회적 메시지와 영화적 재미, 둘 다 잡았다. 그로 인해 수남에게 감정이입하게 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즉, 뒷맛이 강하게 남는 연출을 보여줬다. 또한 이정현, 서영화, 명계남, 이준혁 등 배우들이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뽐내며 영화의 메시지와 재미를 배가시켰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청년에게 노력을 강요하면서도, 그만큼 기회나 환경은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에게 보내는 외침이다. 마치 "성실하게만 살면 된다며!"라고 외치는 듯하다. 영화를 보면 다들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정말 노력하기만 하면 인생이 살만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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