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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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파티오나인에서 <굿와이프>의 주연배우 전도연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전도연은 극중 김혜경 역을 맡아 오랜만에 안방 극장에 복귀했다. 전도연은 이날 <굿 와이프>에 출연한 소감과 에피소드 등을 이야기했다.

2016년 8월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파티오나인에서 <굿와이프>의 주연배우 전도연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전도연은 극중 김혜경 역을 맡아 오랜만에 안방 극장에 복귀했다. 전도연은 이날 <굿 와이프>에 출연한 소감과 에피소드 등을 이야기했다.ⓒ 매니지먼트 숲


올해로 영화 데뷔 21년이 되는 전도연은 연기 잘하는 배우를 얘기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다. 1990년 CF 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해서 TV 드라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녀는 1997년 영화 데뷔작 <접속>으로 충무로에서 가장 사랑받는 배우가 되었다.

1997년 가을에 개봉한 <접속>은 서울 관객 80만 명을 동원하며 그 해 가장 흥행한 한국 영화 2위를 기록했다. 남녀 주인공이 영화 마지막에서야 만나게 된다는 설정이(스쳐지나가는 것은 제외하고) 신선했던 영화는 1990년대 가장 감각적인 한국 영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PC통신을 소재로 가져온 영화는 특히 젊은 세대들의 호응을 크게 얻으며, PC통신의 사용이 늘고 사라 본이 부른 '러버스 콘체르토(A Lover's Concerto)'는 수개월 동안 라디오와 거리에서 흘러 넘쳤다.

라디오PD 동현(한석규)은 옛 연인을 잊지 못하고, 홈쇼핑 전화상담원 수현(전도연)은 친구의 연인을 짝사랑 중이다. 수현이 '여인2'라는 아이디로 동현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를 신청하자 동현은 '여인2'가 자신의 옛 연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당시 한국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무명 밴드와 마찬가지였다) 채팅창에서 '여인2', 즉 수현에게 대화를 신청한다(동현의 아이디는 '해피 엔드'인데, 후에 전도연이 출연한 정지우 감독의 영화 제목 또한 '해피 엔드'다).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간파한 영화 <접속>

 영화 <접속>의 한 장면

영화 <접속>의 한 장면ⓒ 명필름


컴퓨터 채팅 창에서만 이루어지는 동현과 수현의 만남을 엮은 것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페일 블루 아이즈'이다. 동현에게 이 노래는 지나간 사랑의 아픈 추억이지만 수현에게 이 노래는 교통사고의 순간 자신을 위기에서 지켜준 수호신과도 같은 희망의 노래다.

이 노래에 대한 이들의 상반된 감정은 사랑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사랑의 상처로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동현과 가능성 없는 사랑에 마음을 열고 혼자 속앓이를 하는 수현은 서로의 인생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동화되어간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주는 익명성은 편견 없는 대화로 사람을 더욱 진솔하게 만들고 보이지 않는 상대에 대한 묘한 설렘을 가지게 한다.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되어 있다는 운명론을 믿고, 무한의 가능성을 꿈꾸게 되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 <접속>은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간파했고,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하지만 채팅창에서 동현과 수현이 주고받는 대화들은 20년이 지난 지금,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의 대화처럼 까마득하고 촌스럽게 느껴진다. 익명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오프라인에서의 만남보다 익숙한 세대들은 동현과 수현이 서로를 이해하고 다가가는 속도에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소재가 주는 신선함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빛을 바랠 수밖에 없다. 동현과 수현이 1990년대를 대변하는 인물이 아닌데다가 그들이 끌어내는 공감대가 '인연'과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임에도 소재에서 파생된 에피소드와 그 표현방식은 1990년대 PC통신에 대한 향수 말고는 큰 공감을 얻기 힘들어 보인다.

전도연의 편안한 연기, 영화 톤과 조화 이루며 돋보여

 영화 <접속>의 한 장면

영화 <접속>의 한 장면ⓒ 명필름


<접속>이 개봉 했을 때, 영화에 참여한 이름들은 한석규를 제외하고 모두가 낯설었다. '명필름'이라는 신생 제작사, <접속>이 상업영화 데뷔작인 장윤현 감독, 'TV드라마에서 보기는 했어도 영화 주인공 감이던가?' 했던 전도연까지. 영화를 보고나서 관객들은 상업영화계에선 이름이 생소한 감독의 영화를 선택한 한석규의 안목과 한석규와의 연기 밸런스에서 전혀 기울지 않는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연기에 놀라게 된다. 수많은 스타배우들이 거절한 수현이라는 배역은 전도연 개인에게는 배우로서 엄청난 기회이자 성공이었으며 한국 영화계로서도 전도연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발견하게 해준 행운이었다.

남을 배려하는 게 몸에 밴 수현의 다정하고 소극적인 모습을 전도연은 과장됨 없이 연기했다. 잔잔함 속에서도 관객은 수현의 감정변화와 갈등을 느낄 수 있었고, 전도연의 편안한 연기는 영화의 톤과 조화를 이루며 더욱 돋보였다.

<접속>의 성공으로 전도연은 드라마 조연 배우에서 주연 배우로 인정받고, 차기작으로 1990년대 말 한국 영화계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했던 장르 중 하나인 최루성 멜로 <약속>에 출연하며, <접속>에서의 성공이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낸다. 이후 <내 마음의 풍금>에서 열일곱 순수한 소녀를 연기하고 <해피 엔드>에서 옛 애인과 불륜에 빠진 유부녀 역할을 연기하며, 장르와 역할에 상관없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하지 않은 배우

 <접속> 포스터

<접속> 포스터ⓒ 명필름


하나의 이미지에 고정되어 늘 비슷한 역할만 맡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배우들은 작품 선택에 항상 신중을 기하기 마련이다. 특히 여배우들에게 노출 연기는 그들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장애처럼 작용해 작품이 좋아도 출연을 꺼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하지만 <해피 엔드>에서 전도연의 노출 연기는 그녀를 하나의 이미지로 묶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배우로서 그녀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해피 엔드> 이후로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들을 연기한 그녀의 작품 선택과 작품에 헌신하는 태도는 많은 후배 배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우리가 어떤 배우를 볼 때, '이 배우라면 어떤 역이라도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기는 쉽다. 하지만 '만약에 다른 배우가 이 역을 맡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다른 배우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 배우는 흔치 않다. 전도연이 바로 그런 배우다.

그녀 없는 <해피 엔드>, 그녀 없는 <밀양>, 그녀 없는 <무뢰한>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고 그녀의 자리에 다른 배우를 놓을 수도 없다. 그녀가 앞으로 세월의 흐름과 함께 배우로서 어떤 변화와 깊이를 보여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하며 그녀의 이름 앞에는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사실 그녀는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하지 않는 배우다. 전도연, 그녀의 이름 석 자면 충분하다.

* 추신 : 그녀는 자신의 인생 영화로 <접속>, <해피엔드> 그리고 <밀양>을 꼽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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