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처음에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성공조차도 단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했다. 계속해서 비범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의 첫 영화는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을까? 그래서 현재 생존해있는 70세가 넘은 거장들의 첫 영화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은 과연 떡잎부터 달랐을까? - 기자말

 [돈을 갖고 튀어라]영화 포스터

[돈을 갖고 튀어라]영화 포스터ⓒ 팔로마 픽쳐스 인터네셔널


구부정한 어깨, 반쯤 벗겨진 곱슬머리, 뿔테 안경을 낀 자그마한 체구의 병약해 보이는 남자는 더듬거리면서도 무언가에 대해 혹은 모든 것에 대해 쉬지 않고 말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수다스러운 영화들을 쓰고 연기하고 감독까지 하는 우디 앨런의 이야기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 신문에 게재한 유머에서부터 시작해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여든 두 살의 우디 앨런은 지금까지(2018년 기준) 5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했고 2000년대 초반까지는 본인이 주인공을 연기했다. 1966년 <타이거 릴리>가 그의 첫 연출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타이거 릴리>는 일본 첩보영화(<카기 노 카기>, 1965년 작품) 위에 원작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영어대사를 더빙하고 코멘터리를 단 영화였다. 그가 감독으로서 의지를 가지고 참여한 영화가 아니기에 그가 창작자로서 전권을 가지고 연출에 참여한 작품, 1969년에 개봉한 <돈을 갖고 튀어라>를 그의 진짜 데뷔작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돈을 갖고 튀어라]의 한 장면.

[돈을 갖고 튀어라]의 한 장면.ⓒ 팔로마 픽쳐스 인터네셔널


형편없는 실력을 가진 강도 버질 스타크웰(우디 앨런)의 범죄 일대기를 다룬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는 작가, 감독, 배우 등 모든 면에서 다재다능한 우디 앨런의 모습을 보여준 영화다. 모큐멘터리, 즉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돈을 갖고 튀어라>는 이야기의 구성과 완성도보다 아이디어와 유머가 반짝이는 영화로 이후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스타일의 초석이 되어준 작품이다.

우디 앨런 스타일

빈민가에서 자란 버질은 불량한 무리들을 따라다니며 소소한 말썽을 부리지만 다른 아이들이 도망가는 동안 항상 어른들에게 걸려 혼이 나는 등 무리에 완전히 편입되지도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어 평생 그를 따라 다니는 이 불운은 영화의 중요 웃음 포인트 중 하나다. 총인 줄 알고 훔쳤는데 알고 보니 총 모양의 라이터이고, 탈주를 위해 비누를 조각해 총을 만들었더니 하필 탈주를 실행한 날 비가 내려 총은 거품이 되어 버린다. 협박 메모를 써서 은행을 털러 갔으나 은행 직원들은 그의 글씨체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한 번도 범죄에 성공한 적이 없음에도 바질은 수차례의 감옥생활을 한다. 범죄와 수감, 그리고 탈옥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버질은 아름다운 루이스(자넷 마골린)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려고도 해보지만 과거에 발목이 잡혀 다시 범죄를 계획한다. 이렇게 영화는 운 없는 도둑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들을 한데 모았다. 산만할 수 있는 이야기의 나열은 영화 중간 중간 등장하는 인터뷰 장면들로 정리가 되고 우디 앨런의 개그 연기로 만회가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은 부모, 선생님, 아내, 이웃, FBI 등등 모두 버질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로 그와의 일화들을 증언하고 있다. 그들이 설명하는 버질이라는 캐릭터는 사실 그의 다른 영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들과 직업만 달리 했지 같은 인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1935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디 앨런은 자신의 배경을 이야기에 적극 반영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유대인 가정, 반목하는 부모, 시끄러운 동네, 꽉 막힌 선생님들과 학교, 그 속에서 그는 성적 호기심이 충만한 말썽쟁이로 그려진다. <돈을 갖고 튀어라>를 비롯해 초기 작품들은 그의 슬랩스틱 연기까지 볼 수 있는 가벼운 코미디 영화다. 그의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연기에 국한되어 있지만 작품의 수가 늘고 작가 및 감독으로서 경력이 쌓여가면서 개그적인 요소는 줄어들고 캐릭터의 배경이 단단해지면서 오히려 개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팔로마 픽쳐스 인터네셔널


무지한 아이들이 장난감 총을 들고 강도 놀이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버질의 어설픈 범죄. 사람을 해친 적도 도둑질에 성공한 적도 없다. 처벌을 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근무시간이 짧고, 여행도 많이 다닐 수 있으며, 재밌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범죄자가 꽤 좋은 직업이라고 말하는 이 형편없는 범죄자는 아마도 돈이 필요할 때마다 도둑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디 앨런만 가능한

우디 앨런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가장 잘 활용하는 감독중 한명이다. 직접적인 정보전달이 가능한 내레이션 혹은 페이크 다큐멘터리에서의 인터뷰를 수가 낮은 기법이라고 보기 때문에 작가들은 가능한 이를 피하려 하는데 영화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대사가 끊이지 않는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는 오히려 그만의 개성으로 작용한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팔로마 픽쳐스 인터네셔널


버질의 범죄는 SNL(미국 코미디 프로그램) 패러디 꽁트에서 볼 법한 과장되고 기발한 에피소드들의 연속이다. 해석에 따라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그냥 웃고 넘어가는 농담일 수도 있다. 유머의 이해를 위해서는 문화와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지만 다행히 <돈을 갖고 튀어라>는 누가 보아도 재미있는 영화다.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전혀 다른 에피소드들을 연출하는 우디 앨런의 재능은 2018년에 보아도 놀랍다.

1977년 <애니홀>을 만들기 전까지 그의 영화가 다재다능한 코미디언으로서의 기발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애니홀>에서 부터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드라마 작가로서 재미와 작품성을 모두 갖춘 예술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애니홀>은 1978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대중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이후 많은 영화들이 수많은 영화제에서 후보로 선정되거나 수상했으며 1987년 <한나와 그의 자매들>과 2012년 <미드나잇 인 파리>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그의 시상식 불참으로 세 번 모두 대리수상자가 수상했다.)

 유대인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감방 장면

유대인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감방 장면ⓒ 팔로마 픽쳐스 인터네셔널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가 50년 동안 영화를 거의 매년 한 편씩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작품이 끝나는 동시에 다음 영화를 준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우디 앨런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작업 속도가 전과 다름없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90년대 충격적인 스캔들의 주인공(당시 연인이었던 미아 패로우의 수양딸 순이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한 것)이 되어 미디어의 엄청난 공세에 시달렸음에도 그의 커리어는 쉼 없이 계속되었다. 그는 여느 직장인들처럼 매일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중에는 명작도 있고 범작도 있고 형편없는 영화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이야기가 쉬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가 계속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17년에 시작된 미투 운동과 함께 그와 미아 패로우 사이에서 입양한 딸이 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와 작업했던 많은 배우들이 그와의 작업을 후회한다며 앞으로 그의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생활과 작품은 별개로 보아야 겠지만 그의 성추행이 사실이라면 그의 작품은 이전의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또한 그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현재 그는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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