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D수첩 >은 지난 22일 방송된 ’목소리로 범인을 찾아드립니다 - 소리박사 배명진의 진실’편에선 소리 전문가로 알려진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교수를 탐사한다.

< PD수첩 >은 지난 22일 방송된 ’목소리로 범인을 찾아드립니다 - 소리박사 배명진의 진실’편에선 소리 전문가로 알려진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교수를 탐사한다. ⓒ PD수첩 화면 갈무리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교수. 배 교수는 25년 가까이 언론에 출연해 소리전문가로 활약 중이다. 배 교수 스스로 언론에 총 7000여 회 출연했다고 했다. MBC에 출연한 회수만도 300여 회에 이른다. 이밖에 SBS <궁금한 이야기Y> <그것이 알고싶다> 같이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프로그램에도 자주 얼굴을 내비쳤다.

뿐만 아니다. 배 교수의 음성분석 자료는 미제 사건 등 각종 수사와 재판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음성 녹취 분석 감정서다.

2015년 4월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자원외교 비리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눈물로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고, 기자회견 바로 다음 날 유서를 쓰고 잠적했다.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성 전 회장은 세상을 등지기에 앞서 <경향신문> 이기수 편집국장과 인터뷰 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 각각 미화 10만 달러와 7억 원을 건넸다고 밝혔다. 특히 성 전 회장은 2007년 허 전 실장(당시 박근혜 선거캠프 직능총괄본부장)에게 7억 원을 건넸다고 하면서 "그렇게 경선을 치른 것"이라고 밝혀 이 돈이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경선 후보)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와중에 고인의 의복 주머니에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불리는 메모가 발견됐다. 성완종 리스트엔 '김기춘 10만 달러, 허태열 7억원, 홍문종 2억원, 부산시장(서병수) 2억원, 유정복 3억원, 홍준표 1억원, 이완구, 이병기(금액 없음)' 등 당시 정권 실세들의 이름과 돈의 액수가 적혀있었다. 문제의 메모는 고인이 정권 실세들에게 금품을 건넸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었다.

특정 대목에서 말 흐리면 거짓말?

 배명진 교수는 자신을 찾아온 PD수첩 취재진을 거칠게 대했다. 그간 언론에서 봤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배명진 교수는 자신을 찾아온 PD수첩 취재진을 거칠게 대했다. 그간 언론에서 봤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 PD수첩 화면 갈무리


녹취록, 그리고 뒤이은 성완종 리스트의 등장으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실제 리스트에 적힌 인물 중 한 명인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정치자금범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녹취록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전혀 다른 판단을 내렸는데, 2심에는 배명진 교수의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가 분석한 감정서가 제출됐다. 취재진이 입수한 분석 감정서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결론적으로 성완종의 인터뷰 목소리에 대해 진정성을 분석한 결과 상대방에게 건네준 금액을 이야기할 때는 적어도 그 진실성이 평균 75% 정도로 낮게 나타나서 거짓에 더 가까운 말로 분석되었다. 또한 이완구에게 주었다는 금액을 이야기 할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다는 금액을 발성할 때보다 더 낮은 평균 62.7%의 진실성이 얻어졌고, 중요한 금액 발성도 오락가락하면서 모호하게 발성했다. 따라서 금액발성을 근거로 성완종의 목소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았을 때, 성완종이 이완구에게 주었다는 금액의 인터뷰 내용은 전혀 신뢰할 수가 없는 수준의 거짓말이라고 우리는 판단했다."

한 마디로 고 성 전 회장이 금액을 이야기할 때 목소리를 낮췄고, 이런 이유로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의미다. 배 교수는 감정서에 '과학적으로' 분석했다고 적었다.

1991년 발생한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에서 범인으로 추정된 남성의 음성에 대해 배 교수는 "한국인의 평균 목소리 특성을 봤을 때 범인은 26세에서 27세 정도의 목소리 연령으로 측정이 됐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그 과학적이라는 분석 기법에 대해선 별로 말이 없다. 더구나 배 교수는 자신을 찾아온 < PD수첩> 취재진을 무척 거칠게 대했다. 그간 언론에 비친 세련되고 전문적인(?) 인상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배 교수는 평소 자신만만한 어조로 "(목소리로) 그 사람인지 아닌지 '분명히' 밝혀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다른 음성학자들은 '난센스'라고 일축한다. 이봉원 나사렛대 언어치료학과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일단은 그 목소리가 그 사람의 개인적 특성을 반영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어떤 경향성을 얘기하는 것이지 어떤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증거가 되기에는 너무나 변수가 많은 겁니다. 개인차가 굉장히 큰 것이기 때문에 이런 목소리만으로 어떤 개인의 구체적인 어떤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 자체는 상당히 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과학은 충돌하는 주장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만약 하나의 주장이 반대 주장에 부딪히면 당당히 검증에 나서야 한다. 이게 학자로서의 도리다. 그러나 배 교수는 자신의 분석 기법에 제기된 의혹은 물론, 언론 취재마저 불쾌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지점에서 과연 그가 전문가가 맞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든다.

또 하나, 배 교수의 음성 분석 기법에 대해 음성학자들 사이에 논란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배 교수는 제주도에서 벌어진 김 모 하사 자살사건에서 현장 제보자의 음성을 잘못 감정해 김 하사의 부대 선임자를 용의자로 지목한 적도 있었다. 또,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를 잘못 받아적는 실수를 하고, 그걸 해석하고 '거짓말'이라고 감정했다.

수치와 그래프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다 과학이 아니다. < PD수첩>의 취재만 놓고 본다면, 배 교수의 방법엔 분명 문제가 있다. 윤리적 책임마저 찾아볼 수 없기에 더더욱 심각하다.

전문가의 존재 의미를 묻는다 

이번 < PD수첩> '목소리로 범인을 찾아드립니다-소리박사 배명진의 진실' 편은 지난 2005년 11월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편과 견줄 만하다.

당시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는 1999년 체세포 복제 방식으로 젖소 '영롱이'를 탄생시켰고, 이어 2004년엔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연구성과는 여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황 교수는 권력으로 군림했다.

이에 대해 < PD수첩>은 검증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5개월에 걸친 취재 끝에 '스타 과학자' 황 교수의 이미지가 허상임을 밝혀냈다. 배 교수 역시 언론이 주목한 전문가였고, < PD수첩>은 '스타 전문가'를 집중 검증했다. 따라서 이번 보도는 여러모로 황우석 보도와 닮은 꼴이다.

전문가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어떤 특정한 부문을 오로지 연구하여 그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 또는,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

공동체의 삶의 질을 끌어 올리고, 일반인들의 특정 분야에 대한 이해 향상을 위해선 전문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일반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언론은 전문가의 조언 없이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성을 과대포장했을 때, 그리고 언론이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을 때 감당해야 할 대가는 만만치 않다. 특히 한국 언론에서는 일반 시청자가 보기에도 전문적이지 않은 전문가들이 복수의 언론에 겹치기 출연하며 아무말에 가까운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내는 실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 PD수첩> '소리박사 배명진의 진실' 편은 전문가의 존재 의미, 그리고 언론의 전문가 검증 기능에 경종을 울리는 보도로 남을 것이다.


배명진 교수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성완종 리스트 이완구 전 총리 황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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