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영화 <당갈> 포스터

인도영화 <당갈> 포스터 ⓒ NEW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 분)은 오래전에 아버지의 반대와 회유로 레슬링을 그만두었다. 전국대회 우승 선수였던 그에게 레슬링은 존경과 명성을 주었을 뿐 돈을 주지 않았다. 더구나 레슬링은 인도에서 비인기 종목이라 국가 지원도 없었다. 포갓은 이제 곧 태어날 아이로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한다. 레슬링을 가르치기 위해선 아들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아들이 아니었다. 딸이 태어나자 실망을 금치 못하는 포갓. 인도의 시골 동네에서 여자가 레슬링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와 둘째가 동네 남자 아이들을 묵사발로 만든 걸 보고 그 둘을 레슬링 선수로 키울 것을 결심한다. 당사자는 물론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하비르 싱 포갓은 곧바로 특훈 돌입한다.

아이들은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아빠 포갓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까? 포갓은 어떻게 여자아이들을 최고의 레슬러로 키워낼 수 있을까? 그들이 가야 할 길은 너무 멀고 험난하고 구불구불하다. 수많은 장애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소수자 어루만지고, 혁명적인 시선을 동력으로 삼는 영화

 인도영화 <당갈>의 한 장면

인도영화 <당갈>의 한 장면 ⓒ NEW


영화 <당갈>은 인도 국민배우 중 하나이자 우리에게도 친숙한 '발리우드' 스타 아미르 칸이 제작하고 주연을 맡았다. 그는 할리우드 스타이자 사회운동가로 명성이 높은 마크 러팔로처럼 영화계뿐만 아니라 사회운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의 유명한 전작 <지상의 별처럼> <세 얼간이>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등도 내용과 메시지를 보면 마치 사회운동의 일환처럼 느껴진다. 소수자를 어루만지고, 고정관념 타파의 혁명적인 시선을 동력으로 삼는다.

같은 지점에서 이번 영화 <당갈>도 전작의 맥을 잇고 그 결을 함께한다. 우선 소재부터 인도에서 비인기 스포츠 종목인 레슬링이다. 남자와 여자의 개념이 너무도 명백히 구분되어 있는 인도에서도 특히 남녀 차별이 심할 수밖에 없는 시골마을 하르야나 주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 와중에 여자가 레슬링을, 그것도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강권에 의해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 등에서 인도의 현실이 엿보인다.

이런 메시지들을 전달하는 방식이 인도 영화의 특성에 가까우면서도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는 게 특이할 만한 점이다. 인도영화, 즉 '발리우드'의 가장 큰 특징은 노래와 춤을 중심에 두고 코미디와 로맨스와 액션 등의 온갖 장르를 버무린다는 점이다. 그런데 <당갈>에는 최소한의 노래와 춤이 나오고 구성 역시 최소한의 장르적 특성들만 조합했을 뿐이다. 마치 <당갈>에서는 레슬링이 기존 인도 영화의 노래와 춤·액션 등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한 가지, 이미 법적으로 사라졌지만 아직까지 인도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카스트제도의 존재를 상기했을 때 이런 소재와 줄거리를 가진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내가 더 놀라웠던 건 <당갈>이 개봉 당시 인도 영화 역사상 가장 높은 흥행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런 제작 과정과 결과에 다분히 제작자이자 주연을 맡은 아미르 칸의 영향이 있지 않나 싶다.

감동적 대사들 "내일 이기면 수백만의 여자들이 너와 함께 이기는 거다"

 인도영화 <당갈>의 한 장면

인도영화 <당갈>의 한 장면 ⓒ NEW


영화는 인도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장면과 인도영화만이 발산하는 재미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덕분에 거의 3시간에 육박하는 긴 러닝타임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와중에도 주요 장면마다 감동을 수반한 주요 메시지들이 굉장한 파격을 선보이는데, 여성인권·관료주의·부녀관계 등에 관해 지적하는 식이다. 해당 장면에서 핵심적인 메시지들은 주로 대사로 전달된다.

"적어도 너희 아버지는 너희를 생각하잖아. 우리에게는 요리와 청소를 가르치고 집안일을 하게 해. 14살이 되면 혼인시켜 짐을 벗어버리지. 생전 본 적도 없는 남자에게 넘겨주는 거야. 아이를 낳고 기르게 만들어. 여자는 그게 전부야. 너희 아버지는 너희를 자식으로 생각하고 온 세상과 싸우면서 그들의 비웃음을 묵묵히 참고 있잖아. 너희 둘은 미래와 삶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고 말이야."

"내일 이기면 너 혼자 이기는 게 아니야. 수백만의 여자들이 너와 함께 이기는 거다. 그건 모든 여자들의 승리야.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평가받고 가사 노동을 강제로 하고 자식을 낳기 위해 시집 보내지는 여자들 말이다. 내일 시합은 아주 중요한 거다. 왜냐하면 내일 너는 상대방 선수뿐만 아니라 여자를 하찮게 보는 모든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가 메달을 못 따는 이유는 당신 같은 관리가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오... 인도 연방은 그런 흰개미들 온상이야. 그들이 스포츠를 망쳤어. 체육인에 대한 지원은 없어. 이기지 못하면 욕만 하지. 메달리스트는 나무에서 열리는 게 아니야. 그들을 키워내야지. 사랑으로, 성실로, 열정으로."

"난 언니를 굳게 믿어. 하지만 아빠의 언니에 대한 믿음엔 비교가 안 돼. 아빠와 한번 얘기해 봐, 아빠잖아. 최악의 경우라도 무슨 일이 있겠어? 꾸중이나 하시겠지. 그걸 받아들여. 아빠의 질책이 항상 우리에게 도움이 됐어."

지극히 전형적인 스토리... 그럼에도 이 영화를 응원하는 이유

 인도영화 <당갈>의 한 장면

인도영화 <당갈>의 한 장면 ⓒ NEW


앞서 언급한 부분은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충분히 명대사라 할 만하다. 상당히 아마추어적으로 보이는 영화적 대사 기법을 차용해 명백한 메시지들을 전달하는 <당갈>은 '인도영화'라는 한계 및 특성을 직시했을 때 더할 나위 없는 빛을 발한다. 그야말로 인도영화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의 혁신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명백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줄거리와 결말은 다소 평이하다 못해 뻔해 아쉽다. 지극히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인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그 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진행(?)하기에 오히려 불편한 점이 적었고 여타 전형적인 영화보다 아쉬운 점이 덜했다.

온갖 할리우드 히어로가 전 세계 영화계에 판치는 지금, '진정한 의미에 가까운' 발리우드 히어로가 여기에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현실에 두 발을 굳건히 내디딘 채 더 나은 현실로 나아가기 위해 온 세상과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 말이다. 누구보다 인도라는 나라를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인도를 구성하고 있는 폐습과 악습을 타파하고자 하는 아미르 칸의 의도를 과감히 응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당갈 레슬링 인도영화 아미르 칸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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