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 강지원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파티쉐로 일하고 있는 토마스(팀 칼코프)는 한 달에 한 번씩 출장차 독일을 방문하는 오렌(로이 밀러)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오렌은 이스라엘에 아내와 아들이 있는 유부남이다. 떠나면서 한 달 후에 다시 오겠다던 오렌은 한 달이 지나도록 전화 한통 없고, 오렌의 회사에 찾아간 토마스는 그가 이스라엘에서 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오렌의 흔적을 찾아 이스라엘로 떠나 온 토마스는 그의 가족 주변을 배회한다. 오렌은 자신이 누구인지, 오렌과의 관계를 숨긴 채 오렌의 아내 아나트(사라 애들러)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종업원으로 일한다. 그러면서 둘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보편적이지 않은 소재로 보편적인 주제를 이야기할 때, 독자 혹은 관객은 낯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다 본질적인 것에 접근하게 된다. 영화 <케이크 메이커>에서 토마스와 아나트의 만남은 둘의 배경(독일과 이스라엘) 만큼이나 이질적이다. 하지만 영화가 이들 관계의 공감을 끌어내는 방식은 가랑비에 몸이 젖어가는 것처럼 조용하면서도 강렬하다.

죽은 남자의 애인과 부인의 만남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강지원


카페와 집을 오가며 일을 하는 것 말고는 친구도 만나지 않는 토마스의 일상은 그의 표정만큼이나 단조롭다. 부모 없이 할머니 밑에서 자란 그가 자신의 생활에 불만이 없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오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특별한 요구가 없다. 이런 행동의 배경은 이미 외로움에 익숙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오렌이 갑작스럽게 죽고 이스라엘로 떠난 토마스는 그곳에서 결코 공유될 수 없었던 오렌의 남겨진 삶 속으로 들어간다. 관객은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것인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아나트는 코셔 인증을 받은 카페를 운영 중이다. '코셔'란 전통적인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식재료를 선택하고 조리한 음식을 일컫는 말이다. 코셔에 따르면 어류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 하고 조류는 가금류만 가능하며, 육류는 되새김 위가 있고 발굽이 갈라진 동물이어야만 하는 등 율법이 꽤 까다롭다.

아나트의 카페에서 일을 시작한 토마스가 그녀의 아들 생일을 위해 쿠키를 굽자 아나트의 친척 모티는 토마스가 오븐을 쓰는 것은 코셔에 위반된다며 화를 낸다. 하지만 아나트는 거기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영화에서 '음식'이 가지는 지분은 꽤 큰데, 음식은 문화의 차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차이를 극복하는 매개로 사용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때로는 말하지 못한 진심이 더 크게 전달되고 마음을 움직이는 법

각각의 종교와 문화에는 그들 각자의 율법이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만났을 때 율법은 장벽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통하는 진심으로 극복되기도 한다. 옳고 그름, 용납과 금기의 율법처럼 사람의 마음은 재단될 수 없는 것이다.

토마스와 아나트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독일인과 유대인, 죽은 남자의 애인과 부인의 만남에는 구시대적 편견 혹은 결코 연결될 수 없는 금기와 다름없는 크고 작은 장벽이 존재한다.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들의 감정이 어떤지에 대해 관객은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다만 그들이 주고받는 것이 아끼는 마음이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케이크 메이커>는 과묵한 영화다. 누구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 노골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때로는 말하지 못한 진심이 더 크게 전달되고 억누르는 슬픔이 폭발하는 슬픔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강지원


2017-2018 세계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케이크 메이커>는 감독이 8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완성한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건조하고 단조로운 톤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오히려 이 단조로움 덕분에 관객은 감정의 막을 한 겹 한 겹 쌓을 수 있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쌓아올린 감정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게 된다.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출이 조화를 이룬 수작으로 오는 24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케이크메이커 이스라엘영화 케이크 영화리뷰 사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