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 오드(AUD)


'쯧쯧, 어쩌면 어린 것들이 저런 짓을...' 눈살이 찌푸려졌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천진스런 미소를 지닌 6살짜리 소녀 무니와 친구들이 벌이는 소동들이 장난으로 보기엔 지나쳤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새로 이사 온 이웃 차에 집단적으로 침을 뱉을 뿐만 아니라 나무라는 차 주인을 조롱하며 도망친다. 모텔의 출입금지 구역을 드나들며 전기 차단기를 내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죽치며 구걸을 하거나 손님들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달라고 해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도 한다. 아이들은 급기야 이웃 동네 빈 건물에 들어가 불을 내고 몰래 도망을 치고, 무니는 겁먹는 친구들에게 잘못에 대해 함구하라고 다짐을 놓는다.

무니와 디즈니월드 길 건너편 허름한 모텔에 사는 미혼모 엄마 핼리는 불법 행위를 반복하고, 무니는 위탁가정으로 데려가려는 아동국 사람들을 피해 달아난다.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해피엔딩은 아니어도,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라도 무니와 핼리가 잘 될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엿볼 수 있길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맞닥뜨린 것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무니와 핼리 모녀의 고통스럽고 아픈 현실이다. 답도 없이 끝나 버린 영화 탓에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 오드(AUD)


출구가 보이지 않는 모녀의 현실

무엇보다 도덕성 따윈 찾아보기 힘들고 불법을 저지르고도 뻔뻔한 핼리의 모습에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엄마라면 자식이 바르게 자라길 바라고, 나쁜 짓을 하면 타이르고, 안 되면 혼을 내서라도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핼리는 무니가 무슨 짓을 하든 절대 화내거나 혼내는 법이 없다. 오히려 잘못한 무니를 나무라는 이웃 할머니에게 아이 앞에서 대놓고 빈정거린다. 게다가 무니를 옆에 두고 도둑질에 성매매까지 한다. 무니는 엄마처럼은 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동국 직원들이 들이닥쳤을 때 순간적으로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무니를 데려다 위탁 가정에 맡겨 좋은 교육을 받게 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분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기회를 주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그런데 무니가 운다. 엄마와도 단짝 친구와도 영영 헤어지게 될까봐 운다. 핼리가 어린 딸과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동안 아동국은 무얼 하다가, 이 상황이 돼서야 나타나 아이와 떨어지지 않으려 악을 쓰는 핼리와 우는 무니를 떼어 놓으려 하는 걸까. 문득 불법을 무릅쓰는 핼리의 행동들이 어쩌면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문신투성이 마리화나 중독자인 핼리는 취직이 안 돼서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가 없다. 사랑하는 어린 딸과 함께 길에 나 앉거나 굶어 죽을 판인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법을 지키라고, 옳고 그름은 따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질책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다가 핼리는 의지할 곳도 없이 희망도 없어 보이는 이런 삶을 살게 된 걸까? 핼리도 지금의 무니처럼 도덕성이나 준법성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힘든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철없는 나이에 미혼모가 됐어도 자식을 포기하지 않고, 위태로운 짓들을 하면서라도 애지중지 키워온 무니와 생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핼리 처지가 측은하고 딱하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 오드(AUD)


시스템은 어디로 갔나

무니가 자라 제 2의 핼리가 되지 않으려면 아동국이 계획했듯이 아이를 위험한 상황에 방치하지 말고 보호받고 제대로 교육받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모녀를 생이별시켜 무니를 교육시키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아닌 것 같다. 무니만 보호와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핼리가 이런 막다른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도와주고 보호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계속 지금 방식대로 살게 두어서는 안 된다. 핼리가 마리화나 중독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생활 방식을 고치도록 치료와 교육을 받게 해주고, 취업해서 무니를 키울 경제력을 스스로 갖출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무니와 핼리가 둘 다 교육받고 제대로 된 생활을 꾸려나가도록 돕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무니는 친구 손을 잡고 울면서 디즈니월드를 향해 달려온다. 영화 속 디즈니월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길 건너편 모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꿈과 희망이 가득 찬 디즈니월드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길 건너편 바로 이웃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은 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헤쳐 나올 수 없는 어려운 현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무니와 핼리를 우리 눈앞에 들이밀며, 이대로 계속 모른 척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묻고 있다.

참고로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공동 제작자이면서 감독과 함께 각본을 쓴 크리스 버고크가 한 설명에 따르면,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제목은 1967년쯤에 디즈니월드가 처음 지어질 때 불린 이름인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집 없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인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이중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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