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명명 하에 박정희 정권이 서산개척지에서 자행한 국가 폭력, 인권 유린, 강제 노역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2018) 한 장면

1961년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명명 하에 박정희 정권이 서산개척지에서 자행한 국가 폭력, 인권 유린, 강제 노역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2018) 한 장면 ⓒ (주)훈프로


57년 만에 드러난 충격적인 진실 앞에서 머뭇거리는 피해자들은 창피함과 억울함, 답답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젊은 시절 영문도 모른 채 서산으로 끌려온 후 온갖 구타, 폭언에 시달리며 황무지를 비옥한 옥토로 개간했지만, 이에 대한 단 한 푼의 보상도 받지 못한 심정을 어느 누가 가늠할 수 있겠는가.

이조훈 감독의 <서산개척단>(2018)은 1961년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명명 하에 박정희 정권이 서산에서 자행한 국가 폭력, 인권 유린, 강제 노역 등을 다룬 충격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다. 서산개척단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는 지난해 10월 <오마이뉴스>의 '박정희판 군함도, 모월리의 진실'과 지난 3월 <그것이 알고 싶다> '인간재생공장의 비극-대한청소년개척단을 아십니까?'에서 다뤄진 바 있다.

속칭 '서산개척단'으로 불리는 대한청소년개척단의 시작은 박정희 세력이 일으킨 5.16 쿠데타로 거슬러 올라간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세력은 국가재건과 부랑아 단속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거리를 배회하던 수많은 청년들과 부녀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한다.

납치된 청년들과 부녀자들을 서산 간척사업에 동원한 대한청소년개척단은 원활한 국토개발사업 진행을 위해 끔찍한 폭행과 강제노역, 강제 합동 결혼식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인권 유리를 자행했다. 간척사업 도중 구타와 강제노역을 이기지 못하고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하지만, 서산개척단에서 목숨을 잃은 단원의 수는 공식 집계조차 없다.

납치, 감금, 폭행, 노역... 모든 악행을 고스란히

 1961년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명명 하에 박정희 정권이 서산개척지에서 자행한 국가 폭력, 인권 유린, 강제 노역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2018) 한 장면

1961년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명명 하에 박정희 정권이 서산개척지에서 자행한 국가 폭력, 인권 유린, 강제 노역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2018) 한 장면 ⓒ (주)훈프로


이조훈 감독의 대학 후배인 KBS <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3> 유일용 PD의 제보에서 시작된 서산개척단의 피맺힌 진실은 57년이 지난 지금도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다. 박정희 정권이 자행한 인권 유린이야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만도 여러 건이나 납치, 감금, 폭행, 노역 등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악행이 고스란히 집약된 서산개척단이 안겨주는 놀라운 감정은 '조국근대화의 영웅'으로 근사하게 포장된 박정희 정부의 허상을 돌아보게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이 겨냥하는 목표는 분명하다. 서산개척단은 박정희 정부가 국가재건이라는 미명 하에 주도한 인권 유린 사건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박정희 정부, 국가에게 있다. 서산개척단이 단순한 인권 유린이 아닌 국가 폭력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서산개척단 시작부터 해체까지 박정희 정부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전국 간척사업의 명분으로 미국 원조금 PL-480까지 받은 박정희 정부가 그 돈을 간척사업장 운영에 사용하지 않고,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횡령한 증거까지 포착했다고 밝혀낸다. 박정희 정부는 억울하게 납치된 여성들을 서산개척단원들과 강제 결혼 시킨 것도 모자라, 서산개척단 홍보를 위해 윤락녀로 둔갑시키는 파렴치한 행위도 스스럼없이 벌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박정희 정부가 서산개척단원에게 토지 배분을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약속한 토지 배분을 굳게 믿고, 온갖 고통과 울분을 참아낸 서산개척단원과 가족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100명 남짓 살아있는 서산개척단원들은 자신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땅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동안 입은 피해와 고통을 보상받기 위해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산개척단 피해자들 한 풀어줄 수 있는 건

 1961년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명명 하에 박정희 정권이 서산개척지에서 자행한 국가 폭력, 인권 유린, 강제 노역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2018) 한 장면

1961년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명명 하에 박정희 정권이 서산개척지에서 자행한 국가 폭력, 인권 유린, 강제 노역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2018) 한 장면 ⓒ (주)훈프로


다큐 <서산개척단>은 오랫동안 서산개척단원과 가족들의 가슴에 맺힌 한으로만 자리 잡고 있던 피해 사실을 널리 알리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통해 이들이 가진 울분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하지만 서산개척단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은 국가의 공식 사과 및 확실한 피해 보상이다. 그 이전에 57년 만에 어렵게 용기를 내어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사람들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도 필요하겠다.

우리는 박정희 정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산개척단 외에도 박정희 정권이 자행했던 수많은 인권 유린 사건은 아직 청산되지 못한 우리의 아픈 역사다. 다시는 이런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진실 규명과 함께 정확한 평가가 이어져야 한다.

서산개척단 피해자들의 내밀한 인터뷰와 서산개척단을 둘러싼 방대한 아카이브 영상 자료 제시를 바탕으로 박정희 정권이 자행한 인권 유린 사건의 진실을 명쾌하게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은 오는 24일 극장 개봉을 통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서산개척단 박정희 다큐멘터리 국가 폭력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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