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닝> 배우들.

영화 <버닝> 의 수확 중 하나라면 전종서라는 배우를 발견한 게 아닐까. ⓒ CGV아트하우스


영화 <버닝>에서 해미(전종서)는 방아쇠 혹은 불씨 같은 캐릭터다.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는 종수(유아인)의 내면을 건드려 새로운 눈을 뜨게 하고, 뭇 남성들이 왜곡된 시선을 보내도 스스로는 당당하다. 겉보기에 위태로워 보이지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당장 떠났던 해미를 신인 배우 전종서가 맡았다.

이창동 감독이 단번에 직감했을 정도로 그의 이미지는 강렬했다. 카메라 앞에서 인상적인 눈빛과 몸짓을 보인 그였지만 사실은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부터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첫 오디션에서 합격해 영화 작업을 처음하게 됐고, 칸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그야말로 빠른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연기하는 재미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걸 고민하는 것보단 아무래도 처음 촬영이니까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부터 알아가는 과정이 힘들었다. 첫날 첫 촬영 때 카메라를 의식하기도 하고 그래서... 시나리오는 마치 소설책처럼 부드럽게 읽혔다. 반복해서 읽으며 제목에 대해 생각했고, 해미가 참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느꼈다. 

해미가 불씨 같다고 질문하셨는데 그는 그렇게 분노를 품고 사는 아이는 아니다. 적어도 종수나 아프리카에서 만난 벤(스티븐 연)과 달리 적어도 삶의 의미를 구하잖나. 하지만 물론 억울하고 힘들지. 외롭기도 하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친구도 없고, 일터에서도 '따'를 당한다. 너무 철저히 자기만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그 와중에 노을 앞에서 춤을 춘다. 해미는 그냥 해미 그 자체인 것 같다."

 버닝

버닝 ⓒ cgv아트 하우스


극 중 해미가 노을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버닝>에서 꼽을 만한 장면들 중 하나다. 이 사회에 뿌리내리지 않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삶의 의미를 구하던 해미의 내면이 외부에 드러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윤식당>에서 윤여정 선생님이 노을을 보다가 우시는 모습이 나온다. 그 장면을 녹화까지 하면서 계속 봤다. 처음은 노을이 왜 슬프다고 우실까 생각했는데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노을은 슬프다. 불꽃 축제도 슬프고, 사람도 어떻게 보면 슬프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죽잖나. 그 춤을 추는 순간도 그랬다. 영화에선 약기운에 들떠서 행복해보이지만 노을은 지고, 그게 끝나면 슬퍼질 것이라 생각했다.

전 평소 살면서 좋으면 너무 좋고, 싫으면 너무 싫은 게 문제다. 밸런스, 중간을 찾아야 겠다고 요즘 느낀다. 저도 계속해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한다. 연기자를 꿈 꿔 왔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구해야 하잖나. 지금 인터뷰 하는 순간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항상 갈구하는 게 있다. 영화 <베티블루 37.2>를 정말 좋아하는데 해미를 보며 닮았다고 느꼈다."

영화광

전종서는 영화광이었다. 밖에 한 번도 나가지 않고 이틀 연속해서 영화만 이어서 보는 일이 허다했고, 극장에서도 3편씩 연달아 보는 게 일상이었다. "극장 VVIP기도 하다"며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서 남들과는 조금 다른 영화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어렸을 때 영화 보는 걸 좋아하게 됐을 때부터다.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실행하지 못했다가 대학교를 연기과로 갔다. 하지만 잘 적응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학교를 나왔고 소속사를 알아보는 중에 지금의 회사를 만난 것이다. 엄마가 돈을 뿌리고 다닌다고... (웃음) 전 재미가 있어야 몰두하고 관심이 가거든. 학교에선 그게 충족되지 못했다." 

첫 작업이 이창동 감독이라는 사실은 전종서라는 신인에겐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다. "저에 대한 이해가 크신 분이었다"며 그는 "열어주시고 기다려주셨고, 자유롭게 캐릭터와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다"고 말했다.

"제가 미숙해서 잘 못해냈던 순간이 많았다. 감독님은 기다려주셨다. 아인 오빠가 말하기를 모든 현장이 이렇지는 않다고 하더라. 아인 오빠, 스티븐 연 오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선배시지만 절 인간적으로 대해주셨다. 같이 소통하며 작업하는 환경이었다. 제게는 이 영화가 첫 단추를 꿰는 것이기에 아마도 기준이 될 것 같다. 한 인격체로 대우받고 인간적으로 배우는 게 많았다. 또 이 영화가 얘기하는 많은 교훈들을 느끼며 배웠다."

 영화 <버닝> 배우들.

ⓒ CGV아트하우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종서는 학창시절 중 일부를 캐나다에서 지냈다. 감수성이 강할 때 해외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본질을 묻는 습관을 주지 않았을까. 영화 속 해미처럼 전종서는 "연기를 하면서도 의미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말씀하시고 싶은 걸 다 이해하려면 제 머리가 터질 것이다(웃음). 적어도 지금 느끼는 건 저 같은 20대 청춘들에게 주저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용기를 주는 영화 같다는 점이다. 영화는 청년 실업 문제, 빈익빈 부익부도 말하고 있지만 제 입장에선 삶의 의미를 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저 같은 연기자, 연기자 지망생이 매우 많다. 앞길을 모른 채 계속 도전하는 친구들인데 물론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기회가 오겠지만 그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의미를 구하자고 항상 생각한다."

이 작업 이후로 전종서는 큰 한 걸음을 뗐다. "배우가 누구인지 정의하긴 어렵지만 누구보다 인간다워야 하고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며 그는 "많이 느끼고 경험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제 나이에 한 여성으로 살고 있다는 통찰도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대변할 수도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 남아야 하겠다. 아직 어떤 배우가 되겠다고 말하기는 부끄럽다. 아마도 제가 속한 환경에서 적응력이 생겨야겠지. 그걸 정확하게 보는 눈이 필요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제가 기본이 돼 있어야 한다. 놓치지 않고 학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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