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닝> 배우들.

영화 <버닝>으로 청춘성을 연기한 배우 유아인. ⓒ CGV아트하우스


"드디어! 이창동 감독님이 청춘영화를 만드셨구나."

영화 <버닝>의 시나리오를 읽은 뒤 유아인이 가졌던 첫 생각이다. 반가우면서도 부담이 컸다. 택배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작가 지망생,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 해미(전종서)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 같으면서, 수수께끼 같은 강남부자 벤(스티븐 연)을 만나며 알 수 없는 분노에 빠져버리는 이 청년.

폐막을 하루 앞둔 칸영화제 기간에 유아인을 만날 수 있었다. "<버닝> 속 젊은이들의 무력감을 유아인이 잘 알고 있었다"던 이창동 감독의 말처럼 유아인은 자신의 캐릭터를 온몸으로 안고 있었다. 그간 여러 작품에서 마치 청춘의 대명사처럼 관객 앞에 등장한 그에게 <버닝>은 어쩌면 결정적 작품일 수 있었다. 그는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분노의 실체

"감독님을 만나 때가 벗겨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버닝> 촬영 중에 어떤 화보를 촬영했는데 스스로 그 화보 제목을 '줄탁동시'라고 지었다. 내면과 외면으로 뭔가 알이 깨지는 느낌? 새롭게 제 자신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기묘했다. 그간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표현해왔고, 뭔가 많이 하면서 살았는데 정작 내 자신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이 들었다. 내면이 공허한 상태 같았다."

"마치 신인 배우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종수를 연기하면서 유아인은 "이물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럼에도 감독님 눈에 들고 싶어 애쓰며 따라갔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는 "(이번 작품에 참여하면서) 타협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영화 <버닝>의 한 장면

영화 <버닝>의 한 장면. ⓒ CGV 아트하우스


<버닝> 속 종수는 분노한다. 해미가 벤에게 호감을 느끼는 걸로 착각해 분노하고, 돈과 매너까지 겸비한 벤에게 분노한다. 어쩌면 변변치 않은 글조차 못 써내려 가는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 우리가 꿈꾸거나 희망하는 게 있잖나"라고 되물으며 그는 "하지만 세상은 더 불평등해지고, 기울어진다. 뭔가 응어리진 마음들이 생기는데 어쩌면 저보다 더 어린 친구들이 그런 마음이 더 클 것"이라 말했다.

"많이 들여다보려고 했다. <버닝>을 하면서 20대 친구들의 얘길 많이 들었다. 사실 제가 20대 초반 어른들에게 가졌던 의구심이었다. 제대로 그들이 청춘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을까 생각했거든. 혹시나 건방지게 그들을 표현하지 않기 위해 20대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접근했던 것 같다.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참 다양하더라. 사회적 분위기는 획일화 된 면이 있기에 그 질서 안에 청춘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전보다 더 개성이 넘치고, 글로벌 시대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도 전에 그들은 거세당하잖나. 저도 그랬다. 유독 많이 표현하고 드러내고 사는 것에 튀는 행동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그런 사회라는 것의 반증이다. 세상은 기울어지고 있고, 젊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점점 보잘 것 없어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유아인은 "<버닝>으로 청춘을 이해시키는 게 아닌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그에겐 어려운 과제였다는 의미다. "영화라는 걸 해석하고 분석하는 재미로 보기도 하지만 이번엔 다 내려놓고 감독님이 만들어놓은 현상을 따라가셨으면 좋겠다"며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 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칸의 기억

 영화 <버닝> 배우들.

영화 <버닝> 배우들. ⓒ CGV아트하우스


<버닝>에 대한 외신과 국내 평단의 반응이 좋다. 칸영화제 수상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배우로서 보단 관객으로서 기쁘다"며 "이창동 감독님의 기분 좋은 컴백으로 봐 달라"고 생각을 밝혔다.

"칸에 가는 게 당연한 꿈이고 당연한 영광인 듯 보인다. 미디어에서 그렇게 몰고 가는 부분도 있고. 실질적으로 이 공간을 욕망의 장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물론 배우로서 어떤 외적인, 내적인 성장을 보여드리는 장이 될 수는 있다. 근데 전 정말 겸허하게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있다.

수상도 수상이지만 전 이 작품에 대한 좋은 평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요즘 많이 비워진 것 같다. 배우로서 작품과 함께 흘러가는 삶을 살았는데 개인적인 사건들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가능한 무의미 한 순간은 줄이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요즘 들어 나는 누구지 라는 질문을 다시 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가 나를 그렇게 주장했고,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말이 전적으로 나로부터 나오는 건 아니었다는 걸 느꼈다.

배우의 자의식이라는 게 참 웃기다. 그런 의식을 갖고 연기력을 높이고, 남들 앞에 좋은 모습을 보이며 살기 위해선 배우는 정상적일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아인이라는 사람이 그리는 과정을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제가 감동하는 걸 타인에게 느끼게 하는 일종의 사명감이 제게 있다고 생각한다. 소명의식이 강해지는 것 같다."

함께 연기한 신인 전종서, 그리고 스티븐 연을 보며 유아인은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게 있었다. 많이 반성했다"고 덧붙였다. "역시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며 그는 "균형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관객 분들이 이 영화로 좋은 걸 얻어가셨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했다.

유아인 버닝 전종서 이창동 스티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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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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