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약체인 한국은 그간 실점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축구에 익숙했다. 실제로 한국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린 2002 한일월드컵에서도 4강의 원동력은 탄탄한 수비의 힘이었다. 홍명보-김태영-최진철로 이어지는 역대 최고의 스리백을 중심으로 이영표-송종국의 좌우 윙백, 김남일-유상철의 더블 볼란치와 골키퍼 이운재까지 그야말로 물샐틈없는 수비라인을 과시했다.

러시아월드컵에 도전하는 '신태용호'의 고민은 공격과 수비의 불균형이다. 한국축구의 오랜 고민 중 하나는 공격력은 과거보다 많이 상승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자리 잡은 손흥민(토트넘)을 필두로 권창훈(디종)-황희찬(잘츠부르크) 같은 유럽파에 월드컵 경험을 갖춘 이근호(강원)-김신욱(전북)까지 신구조화를 이룬 공격진을 구축했다.

러시아 월드컵 준비상황 설명하는 신태용 감독 신태용 남자축구대표팀 감독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준비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러시아 월드컵 준비상황 설명하는 신태용 감독 신태용 남자축구대표팀 감독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준비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 부임 이후 치른 14차례의 A매치에서 한국은 총 20골을 득점했다. 눈여겨볼 것은 첫 2경기에서만 무득점에 그쳤을 뿐 이후 12번의 A매치에서 꾸준히 득점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약팀도 있었지만 일본, 러시아, 모로코, 콜롬비아, 세르비아, 북아일랜드, 폴란드 등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나 유럽예선 플레이오프권의 팀들을 상대로도 최소한 한 골 이상은 꼬박꼬박 터트렸다. 한국이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2002년이나 2010년과 비교해도 공격진만큼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하지만 수비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불안한 수비는 사실 신태용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신태용 감독은 올림픽과 청소년대표팀을 이끌던 시절에도 늘 수비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공격 지향적이고 과감한 축구를 선호하는 신태용 축구의 특성상 강팀을 상대로도 골은 잘 넣지만 중요한 토너먼트에서 수비불안으로 결정적인 한 방을 얻어맞고 침몰하는 경우가 잦았다.

수비수만 12명... 고민 거듭하는 중?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나갈 1차 엔트리 28명을 발표했는데 수비수만 무려 12명이나 뽑았다. 사실상 최종엔트리의 윤곽이 거의 드러난 공격과 미드필드진에 비하여 신태용 감독이 수비진 구성에 대하여 막판까지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초 신 감독은 포백을 중심으로 한 4-4-2 전술을 대표팀의 플랜A로 구상해왔다. 그런데 신 감독이 주전급으로 생각하고 있는 두 명의 수비수 김민재와 김진수(이상 전북)가 한꺼번에 부상을 당하며 계획에 심각한 차질이 생겼다. 김민재는 월드컵 엔트리 탈락이 확정됐고 김진수도 28인 명단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부상 회복 상태에 따라 최종엔트리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신태용호 출범 이후 꾸준히 오른쪽 풀백으로 발탁되어왔던 최철순(전북)도 탈락했다.

주전급으로 분류되는 수비수들이 한꺼번에 3명이나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해지면서 신태용 감독은 본선을 코앞에 두고 계획을 변경해야 할지도 모르는 고민에 처했다. 신 감독은 러시아월드컵에서 플랜A가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기존의 4-4-2에서 스리백을 앞세운 3-4-3이나 3-5-2전술을 들고나올 가능성도 있다.

신 감독이 이번 28인 명단에서 중앙수비 자원(6명)을 많이 뽑은 것도 스리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장현수(도쿄)-권경원(텐진)-김영권(광저우)가 빌드업과 수비조율에 좀 더 능하다면 정승현(사간도스)-윤영선(성남)-오반석(제주)은 활동량과 몸싸움에 강한 선수들이다. 상대 팀에 따라 스리백과 포백을 유연하게 넘나들겠다는 구상이다.

히딩크 감독도 2002년 당시 포백을 시도하려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스리백으로 전환하여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스리백은 수비 숫자를 늘려서 안정감을 줄 수도 있지만 운용하는 방식에 따라 역습상황에서는 오히려 포백보다 더 공격적인 전술이 될 수도 있다. 현대축구에서도 다양한 변형 스리백이 다시 유행하는 추세다.

하지만 문제는 신태용호가 그간 스리백을 들고나왔을 때 크게 재미를 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다. 신태용호가 스리백 전술로 승리를 거둔 것은 지난해 동아시아컵 북한전이 유일하다. 북한은 신태용호가 만난 가장 최약체 상대였고 1-0 신승을 거뒀으나 내용은 그리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러시아-모로코-폴란드 등 강팀들을 상대로 스리백을 사용했다가 실패를 맛보고 다시 포백으로 바꾼 경우가 더 많았다.

신태용호가 스리백을 자신 있게 대안으로 내놓지 못하는 이유도 스리백의 핵심을 이루는 수비수들 개개인의 기량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이다. 물론 수비는 조직력이 생명이라고 하지만, 그 조직력도 결국 수비수 개인의 능력이 뒷받침되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신태용 감독도 우리 수비수들의 일대일 마크 능력이나 제공권 등이 세계적인 강호들에 비하여 뒤진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다. 이들은 한국과 아시아 무대 기준으로는 빌드업이나 몸싸움이 뛰어날지 몰라도 세계적인 선수들과 비교하면 어정쩡함에 가깝다. 특히 현재 신태용호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하다는 장현수와 김영권도 A매치 때마다 잦은 실수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홍명보나 이영표, 최진철같이 한국축구 역대급으로 꼽히는 수비수들을 보유했던 시절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최종 엔트리 확정할 때가 다가와

좌우 윙백의 공수전환 능력도 관건이다. 일반적으로 스리백 전술에서는 윙백이 측면 공격수의 역할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수비로 전환할 때는 좌우 윙백이 가담하여 5백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윙백들의 활동량과 공수밸런스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포백보다 공수 간격 유지가 어렵다. 조직력을 다지는 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될 수도 있다.

신 감독이 측면수비수로 1차 명단에 발탁한 홍철, 김민우(이상 상주), 이용(전북), 고요한(서울) 등은 모두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윙백에 더 적합한 선수들이다. 이들은 크로스 능력과 멀티 포지션 소화 능력을 갖춰 미드필더와 수비를 겸할 수 있는 자원들이 대부분이다. 마지막까지 경쟁을 유도한 중앙수비진과 달리 측면수비진은 1~2명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월드컵 최종엔트리까지 동행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들은 수비적인 안정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다. 이들이 만일 공격전환 시에 오버래핑을 깊숙이 올라갔다가 공수 간격 유지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상대의 역습 상황에서 측면이 무방비로 노출될 위험도 크다.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도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 신감독은 선수단 소집이후 일주일 사이에 단 두 차례의 평가전을 거쳐 최종엔트리를 확정하고 이제 답안을 내놓아야 한다. 결국 대표팀의 수비 전술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플랜A가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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