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메인포스터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메인포스터 ⓒ (주)티캐스트


01.

부르고뉴는 프랑스 중동부 지역에 위치한 와인 명산지 중 하나다. 프랑스 서남부 지역의 보르도와 함께 전통적인 와인 생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강하고 진한 맛을 자랑하는 보르도산 와인과는 달리 섬세하면서 다양한 향기를 느낄 수 있기에 부르고뉴 지방에서 생산된 와인은 많은 사랑을 받는다.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부르고뉴에 위치한 오래된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영화는 프랑스판 <리틀 포레스트>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 표현은 내용적인 유사함 때문이 아니라, 작품을 촬영하는 지점에서의 감독의 철학과 같은 것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2018)가 한국의 사계절을 영화 속에 담기 위해 4번의 크랭크인과 크랭크업을 거듭한 것처럼 이 작품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 역시 사계절을 모두 직접 촬영하여 부르고뉴의 완전한 1년을 영화 속에 담는 데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작품 속에는 실제 포도 나무가 자라는 모습, 와이너리의 포도밭이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 등이 현실적으로 담기게 되었다. 이런 부분은 곧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결합하여 현실감을 끌어내는데도 기여한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 (주)티캐스트


02.

영화는 집을 떠나있던 첫째 장(피오 마르마이 역)이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르고뉴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삼 남매 중 첫째에게 주어진 역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전 세계를 여행하다 알리시아(마리아 발베르드 역)를 만나 아들까지 낳고 호주에 정착한 지 10년 만의 귀향이다.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장을 대신해 가업을 이어가고 있던 둘째 줄리엣(아나 지라르도 역)과 결혼 후 처가생활을 하며 재력가인 장인어른의 등쌀에 시달리고 있는 막내 제레미(프랑수아 시빌 역)는 그와의 재회가 반갑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도 느낀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것은 물론, 이제는 모두 성인이 되어 각자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이 있기에 서로의 입장을 마냥 이해할 수가 없던 삼 남매가 함께 마음을 헤아려 가며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가장 주목해 볼 만한 부분은 부모의 부재 이후 남겨진 삼 남매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또 다른 하나의 가족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 포도를 재배하여 와인을 숙성시켜가는 과정에 비유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지점에 어떤 사건을 대입하여 구조적으로 짝을 이뤄나가며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유적으로 설명된다는 것이 핵심.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의 맛을 자세히 따져가며 수확일을 정하고, 와인이 숙성해 가는 과정을 기다리는 일이 삼 남매가 서로의 삶에 다가가고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비견된다.

03.

어떻게 보면 작품 속 사소한 갈등의 시작은 공동 소유가 된 유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 세 남매의 모습이다. - 갈등이라기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오해다. - 10년이 넘게 집을 떠나 연락 한 번 없었던 첫째 장과 다른 형제들과의 관계는 물론, 와인을 감별하고 와이너리를 감별하는 일에 독보적인 적성을 보인 줄리엣과 그렇지 못했던 제레미의 관계까지. 처음 재회하자마자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조차 연락하지 않은 형을 원망하는 막내의 모습에서는 그가 부모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부모로부터 주어진 – 아버지로부터 기대된 역할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 맏아들에 대한 기대와 책임감을 피해 장이 집을 떠났던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만약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이 정도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가족의 삶이라는 것은 완전히 독립적일 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아름다울 수 없는 법이다. 관계의 연결 지점에서 갈등은 언제나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 갈등이라는 것은 모두 함께 떠받치고 있는 판자 위에 올려진 돌덩이와 같아서 어느 한쪽의 입장만 높이다 보면 다른 쪽의 누군가는 반드시 그 무게를 홀로 짊어질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균형에 대한 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로 시간만 흘러버리고 말았으니, 한쪽 손을 제대로 어쩌지도 못한 상황에서 다른 한 손에 쥐어지게 된 또 다른 판자(가족)는 서로의 입장을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쪽으로 몰고 가 버린다. 영화 속에서 장에게 주어진 난제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이 품어져 있던 가족과 앞으로 품어가야 할 가족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었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 (주)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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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속 인물들이 서로에 대한 관심과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장은 오래된 유산과도 같은 와이너리를 떠나 세계를 방황하지만 결국 호주에서 자신의 와이너리 사업을 시작한다.

맏아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줄리엣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장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좋아하던 이가 누구였나. 바로 그녀다. 어쩌면 줄리엣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따라 집을 떠난 장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장인어른의 눈에 들기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던 제레미가 가족의 역사를 무시하고 비난하던 장인 앞에서 폭발하고 마는 것 역시 자신의 가족에 대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세 남매는 그렇게 표현하지는 못했으나 서로의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마음을 서로 교환하며 간극을 줄여나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포도를 수확하는 날을 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수확이 가까워져 오면 하루 사이에도 맛이 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아니, 같은 날 수확을 하더라도 넓은 와이너리의 이질적인 지형적 구조 때문에 포도 나무가 어디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열매의 맛이 달라지고 만다. 같은 포도밭에서 동일한 정성으로 키워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치 삼 남매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그렇다. 영화 속 와이너리는 그런 모든 불완전한 것들을 긴 시간으로 보듬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막 만들어져 아직 향이 채 터지지 못한 와인이 익숙함과 편안함 속에 자신의 진짜 맛과 향을 찾아가듯이, 이전 세대의 가족이 해체된 이후에 남겨진 이들이 또 그들만의 가족을 만들어가는 곳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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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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