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데드풀 2' 포스터

영화 '데드풀 2'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1.

2년 전, 팀 밀러 감독이 영화 <데드풀>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더 컸다. 월드 와이드 약 7억8천만 달러(한화 약 8400억 원).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캐릭터가 솔로 무비로 벌어 들였다고 상상하기 어려울 인기였다. 다른 모든 히어로들이 세상의 평화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고 정의를 외치고 있을 때 등장한 이단아의 거침없는 행동과 제약 없는 언변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물론 그것만으로 성공에 이르렀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거침없는 장면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맥락도 없고 짜임새도 없는 것 같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구석 하나 의도되지 않은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근원적인 문제로 인해 뛰어난 번역으로도 모두 전달하기 힘든 구석이 있는, 원어 그대로의 코미디와 성역 없이 펼쳐지는 풍자들 역시 이 작품의 핵심이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을 표현하자면, 탄탄한 스토리 위에 펼쳐놓은 예상 불가능한 정도의 코믹함이라고 하겠다.

 영화 <데드풀2> 스틸 사진.

영화 '데드풀2' 스틸 사진.ⓒ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02.

2년 만에 돌아온 영화 <데드풀2>은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팀 밀러 감독이 캐스팅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결국 하차하고, 이를 이어받은 데이빗 레이치 감독에 대한 의문이 제작 초기부터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 분)이라는 캐릭터 특유의 에너지와 장점들을 스크린에 다시 한번 쏟아내는 데 성공한 듯하다(데이빗 레이치 감독의 전작이 <아토믹 블론드>(2017)라는 걸 깨닫는다면, 그의 스타일리시한 연출에 대한 의구심은 괜한 우려에 불과했던 것 같다). 이 작품에서는 많은 시리즈의 속편이 겪는, '소포미어 징크스'를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뼈대를 구성하는 메인 스토리를 제외하고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엉망진창이다. 좋은 의미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패러디와 풍자는 웬만한 이해력이 아니고서는 모두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로 다채로우며, 개연성 없이 튀어나오는 인물들의 행동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오락적 요소들은 한데 어우러져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데, 그것은 그 자체로 각본가들의 실력을 반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러닝타임 내내 자신들을 향해 '대본 너무 쉽게 쓰는 거 아니야?'라고 반문하지만, 이 또한 어지간한 자신감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03.

데드풀 특유의 오락성이 여전히 전체 분위기를 휘어잡는 가운데 이번 작품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바네사(모레나 바카린 분)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사랑하는 그녀를 따라가고자 하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데드풀의 고민이 이 작품에 녹아있다(데드풀은 능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불사의 몸을 가지게 된다. 극의 후반부에서 케이블이 그를 살리고자 했던 것은 돌연변이 능력을 제한하는 장치를 착용한 상태에서 총을 맞았기 때문이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 전에 등장하는 영상에서 바네사의 죽음 앞에 분노하는 그의 모습은 지금껏 데드풀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줬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극히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심지어는 그 모습이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이후 오프닝 크레디트에 등장하는 개그감 넘치는 소개에도 웃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 전해져 온다. 어쩌면 돌연변이가 된 이후 죽음에 다소 둔감해졌을 캐릭터가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라는 반동을 통해 다시금 유한한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데드풀 2' 스틸컷

영화 '데드풀 2'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04.

데드풀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지난 작품인 <데드풀>과 연계하는 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자신을 슈퍼히어로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었던 프란시스(에드 스크레인 분)를 처단하는 전편의 내용(물론 프란시스가 개인적 원한 이상의 일을 벌이기는 했다)은 이번 작품의 초반에 이르러 나름의 정의를 위해 무법자들을 처단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종국에는 러셀(줄리안 데니슨 분)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변모해 나가기 때문이다. 이는 돌연변이화 되고 난 이후에 스스로 정립해 나가는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으며 히어로의 의미에 대해 자각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무관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각은 앞서 언급한 존재에 대한 자각과는 또 다른 것으로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 할 것이다. 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엑스맨 팀과의 교류 역시 앞으로 데드풀이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가볍기만 한 것이 아니라 히어로로서의 책임감과 무게까지 짊어지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역시, 그렇다고 해서 그의 스타일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05.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이번 작품에 포함되었던 것 역시 유사한 관점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생각한다. 전편에서도 프란시스 무리와 대결하기 위해 엑스맨 팀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힘을 빌린 것일 뿐, 애초에 이제 막 능력을 가진 데드풀에게는 제대로 된 소속이 없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그 곁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 연인이었던 바네사였던 것도 함께. 그런 연인마저도 잃어버린 데드풀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어떤 소속감이자 동료였을 것이며, 이는 바네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함께 약속했던 두 사람의 아이, 가족의 의미에까지 닿게 된다. 여기에는 가족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 또한 함께 뒤섞인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러셀을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는 그런 설정들의 의미가 감춰져 있다.

 영화 <데드풀2> 스틸 사진.

영화 '데드풀2' 스틸 사진.ⓒ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06.

코믹스 원작에서는 엑스맨 팀이 결성하게 되는 엑스 포스를 데드풀이 결성한다는 설정이나 케이블(조슈 브롤린 역)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은 다소 변용이 있기는 하지만, 기존의 엑스맨 세계관에 또 다른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북미에서는 울버린 역을 맡았던 휴 잭맨의 마음만 돌릴 수 있다면, 새로운 엑스맨 시리즈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현실적으로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이번 작품이 다양한 부분에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하나의 작품이 여러 가지 방면에서 뛰어나기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많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 '소포모어 징크스'에 힘들어 하며 부침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중간에 위치한다는 것의 의미는 처음의 것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추후에 있을 다음의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런 점에서 데드풀의 두 번째 작품은 수준 높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시리즈 내 두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보여줬다는 것 역시 큰 수확이다. 다음 작품이 이전과 같은 솔로 무비가 될지, 이번 작품에서 결성된 '엑스포스'가 확장된 모습이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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