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공식 포스터

▲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공식 포스터ⓒ 일본 NTV


일본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아래 <교열걸>, 2016년 10월~12월 방영)의 여주인공 코노 에츠코는 패션잡지 < LASSY >의 애독자다.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발권된 모두를 디테일하게 외울 만큼 < LASSY >를 사랑한다. 그래서 그녀는 < LASSY >를 출간하는 출판사인 경범사에 입사하려고 7년째 도전 중이다. 6번째까지는 번번이 탈락했다. 그러나 다행히 7번째에는 합격 통지를 받는다. 불행히도 자신이 원하는 패션 부서가 아니라 교열(校閱) 부서에 채용되지만 말이다.

패션부에 취직해 < LASSY > 에디터로서 화려하게 일할 것이라 잔뜩 기대했던 그녀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필 그녀가 채용된 교열부의 주된 업무들은 화려함과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녀는 일단 교열부에서 근무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여기서 근무하다 실적이 좋으면 < LASSY >의 편집 부서로 인사이동을 할 수도 있다는 교열부 편집부장의 꾐에 속아서다. 그래서 비록 시작은 '수수'하지만 조만간 화려해질 날을 꿈꾸면서 그녀는 우선 교열부 직원이 된다.

그녀는 교열부의 관행대로라면 자격 미달이다. 일단 한자(漢字)를 잘 몰라서 해독 능력이 형편없는데다 글을 빨리도, 정확하게도 읽지 못한다. 게다가 작가의 사생활이라든지 소설 안에 나타난 물건이나 장소의 실존 여부 등 텍스트 안쪽이 아니라 텍스트 바깥일에 관심이 더욱 많다. 책 속에 표현된 색깔이나 냄새, 음식 맛이 궁금하다고 교열을 하는 중에 갑자기 외근을 신청하기 일쑤다. 가끔은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지탐사를 위해 지방까지 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는 점차 교열부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간다.

교알못(교열 일을 알지 못하는 자)의 유쾌한 혁명

통상적으로 교열 작업은 "책상에서 시작하여 책상에서 끝내는 것이 일반적이다"라고 교열부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교열하는 사람들의 상식이고 법칙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코노 에츠코는 기존의 교열 업무에서 지켜야 할 상식과 법칙들에 저항한다.

그리고 그 저항들이 하나둘씩 '책상 밖에서' 효과를 드러낸다. 권위적이었던 작가들이 교열부의 충고에 맞춰 작품을 수정하기도 하고, 교열부를 오·탈자나 고쳐주는 일개 하급부서로만 여겼던 편집부 사람들도 어느덧 교열부를 출판사의 엄연한 주역으로 인정해주기 시작한다.

드라마 <교열걸>의 시청자들은 이렇듯 '비(非)전문가들의 유쾌한 반란'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하기 싫은 일도 참고 버틸 때 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숨은 적성을 찾을 수 있다는 '무한 긍정론'도 배울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당신에게 뜻밖의 명예와 부가 찾아오리라." 마치 칼뱅이 주창한 직업소명설의 21세기형 변형 판을 보는 듯하다. 칼뱅 시대에는 신이 직업을 정해줬다면, 21세기에는 취준생들이 불가항력적인 처지와 환경에 맞춰 내몰리듯 직업을 정한다는 점이 차이랄까.

상투적이지만 굉장해, 이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드라마 중에서

▲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드라마 중에서ⓒ 일본 NTV


여하튼 어찌 보면 무척 고루하고, 마냥 낙관적인 메시지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그처럼 뻔하디 뻔한 교훈조차 흡사 새것처럼 느끼게 하는 장치들을 곳곳에 설치해 놓았다.

첫째는 작품의 스타일과 미장센이다. 패션모델을 방불케 할 정도로 세련된 주연 배우 이시하라 사토미의 착장(着裝)은 매회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출연자가 무엇인가를 한창 열중하며 설명할 때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툭툭 튀어나오는 감각적인 CG들도 발군이다. 정극 드라마 안에서 살짝 살짝 애니메이션을 맛깔나게 시식하는 기분이다.

둘째는 개연성 있는 서사다. 솔직히 "닥치고 성실히 일하면 언젠가는 꼭 누군가가 알아준다!"를 주제화한 드라마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클리셰를 클리셰처럼 느껴지지 않게 내용을 구성하는 것도 작품성을 따지는 요건 중 하나라면, 일드 <교열걸>의 작품성은 적어도 평균 이상급이라고 할 수 있다.

엉뚱하게 연결되는 사건·사고들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가다 보면 왜 패션부에만 미쳐있던 코노 에츠코가 점차 교열부에 정을 붙이게 되는지 납득이 간다. 뿐만 아니라 매회 한편이 시작될 때마다 새롭게 터져 나오는 사연들이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묘하게 한데 뭉치는 것을 보면, 코노 에츠코가 근면할 수밖에 없는 원인과 동기를 만들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고심했을지 안쓰러울 정도다. 덕분에 시청자들도 웃고 즐기는 동안 어느새 설득 당하고 만다.

조금은 색다른 간바레케이(頑張れ系)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겠지만, 일본은 유독 다른 문화와 달리 근면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당연히 일본 드라마에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들이 많은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류(類)의 드라마들을 <頑張れ系(간바레케이)>로 분류한다. 어떤 역경에도 "파이팅!"을 외치며 주인공들이 분투하고, 끝내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그런 부류의 드라마들 말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몸소 실천하는 파이팅과 분투는 다른 간바레케이들과 결이 조금 다르다. 대개 간바레케이의 주인공들은 묵묵하다. 기존의 가치관과 자기 생각이 다르더라도 일단은 반항하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꽤 천천히, 나중에서야 증명한다.

하지만 우리의 수수하지만 굉장한 교열걸은 상당히 요란한 편이다. '닥치고 근면'한 것이 아니라, '반항적이고 호전적으로 근면'하다. 좌충우돌 난리법석을 떨면서도 일을 제법 잘해낸다. 드라마 안에서 코노 에츠코는 유토리(ゆとり)세대로 묘사되는데, 아마도 드라마의 감독과 작가는 유토리 세대가 일본 사회 안에서 제 나름껏 생산적인 일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항변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참고로 일본 사회에서 유토리 세대란 말은 정부의 실패한 교육 정책으로 인해 이전 세대에 비하여 사고나 태도가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다. 따라서 긍정적인 의미라기보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일 때가 훨씬 많다).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드라마 중에서

▲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드라마 중에서ⓒ 일본 NTV


코노 에츠코는 교열부에서의 업적을 바탕으로 결국 편집부에 화려하게 입성할 수 있을까? 아니면 교열부에서 자신의 숨은 재능을 찾은 덕에 계속 수수하지만 굉장한 교열걸로 남아 있을까? 정답은 -당연하게도- 마지막 회에 있다. 그리고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아직 이 일드를 정주행하지 못했다면, 당신의 '모를 권리'를 위하여 이 부분만큼은 철저히 함구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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