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성못' 포스터.

영화 '수성못' 포스터. ⓒ 인디스토리


대구 수성구 수성유원지 수성못에서 오리배 아르바이트를 하며 편입 공부를 병행하는 오희정(이세영 분), 그녀는 집안의 도움 없이 홀로 치열하게 분투한다. 어떻게든 이곳을 떠나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가기 위해서다. 그러던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손님도 없고 해서 쏟아지는 잠을 감당 못 하는 사이 중년 남성 한 명이 무단으로 오리배를 탈취해 수성못으로 나아간다. 그러곤 곧 투신자살을 시도한다.

희정은 오리배 담당자로서 당연히 구명조끼를 지급해야 했지만 조느라 깜빡한 상황, 이를 사장이 알게 되면 잘리게 될 거라고 질겁한다. 당일 야밤에 몰래 구명조끼를 수성못에 버리려다가 때마침 촬영을 하고 있던 차영목(김현준 분)에게 들킨다. 그는 자살시도자들을 촬영하고 있었던 것. 영목은 희정의 비밀을 빌미로 그녀를 자살센터로 끌어들여 자살시도자 촬영을 돕게 한다.

한편 희정에겐 오빠 오희준(남태부 분)이 있다. 그는 아무런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집에서 책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며 희정에게 '하고 싶은 일도 있어서 좋겠다'고 푸념한다. 그는 자살 충동 때문에 정신병원을 다니고 있다.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수작 같기도 하고 군대를 못 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KAFA 출신 감독의 장편 데뷔작 <수성못>

 영화 '수성못'의 한 장면.

영화 '수성못'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영화 <수성못>은 한국의 영화사관학교라 불리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출신 유지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 작품은 KAFA 2017년 장편 데뷔작 기획전에 출품되었는데, 장편제작연구과정 9기의 대표 완성작 중 하나다. 지난 2009년 시작된 장편제작연구과정의 기획전 대표작들을 들여다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2010년엔 개인적으로 2000년대 한국 독립영화 중 최고로 꼽는 <파수꾼>, 2013년 <잉투기>와 <들개>, 2015년 <소셜포비아>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선보였다. 출중한 데뷔작 이후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는(못하는) 감독들이 상당한 게 마음에 걸리지만 KAFA의 능력에 의문을 품진 않는다.

2017년에 선보인 <수성못>은 3명의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는 시선과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두루뭉술한 듯 선명하고 식상한듯 신선하다. 청춘의 삶과 죽음, 삶과 죽음에의 치열함, 지방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등을 다룬 주제는 수성못이라는 소재로 집결하고 수성못이라는 소재에서 비롯된다.

'삶'도 '죽음'도, '치열하지 않음'도 치열한 청춘들

 영화 '수성못'의 한 장면.

영화 '수성못'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정녕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희정은 돈도 열심히 벌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이다. 그녀에게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가 보면, 지방과 여성이 보인다. 지방에선 성공할 수 없으니 이곳에서 살아선 안 된다는 열망, 여성으로 살기 힘드니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열망이 그의 동력이다.

영목이 자살시도자를 촬영하고 그들의 말을 듣는 건 알고 보니 사회봉사의 일환이었다. 영목은 다름아닌 동반자살클럽 회장으로, 동반자살을 주도했다가 실패한 경력이 있다. 정녕 '죽음'에도 치열하게 임했던 영목이다. 그 치열함에서 희정의 치열함이 떠오른다. '그들'의 '치열함'은 목적이 분명하다. 그들은 대구를 떠나 서울로 가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든,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가려 한다.

장강명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한국이 싫어서>(민음사)가 겹쳐진다. '헬조선'을 탈출해 호주로 가려는 청춘들, 하지만 작품은 호주도 또 다른 '헬'일 뿐이라는 교훈 아닌 교훈을 던진다. 소설은 탈출 이후까지의 이야기를 그리는 반면, <수성못>은 탈출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삶이든 죽음이든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공중에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그 모습을 수성못에 떠 있는 오리배라고 보았다. 하염없이 떠다니지만, 절대 수성못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오리배들 말이다. 그 어떤 치열함으로도 대구를,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그들이 애처롭다.

광범위하게 그저 보여준다

 영화 '수성못'의 한 장면.

영화 '수성못'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영화는 삶과 죽음에 대해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지양하라고 가르치지도 가리키지도 않는다. 설교하지도 선언하지도 않으며 판단하지도 재단하지도 않는다. 그저 보여준다. 때론 우스꽝스러움 속의 진지함으로, 때론 흐리멍덩함 속의 적나라함으로.

그 모든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 주위의 모습이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 영화 <수성못>은, 독립영화가 흔히 추구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작가적 시점으로 파고드는 게 아니라 의외로 꽤나 광범위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파괴적인 영화적 재미에선 조금 떨어질 우려가 있는데, 자살이라는 소재와 더불어 극초반에 벌어진 자살미수 사건에서 비롯되는 소소한 미스터리를 흥미 유발의 원천으로 사용한다.

이 감독의 능력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더욱 기억에 남는 영화를 남기기 위해선 오히려 이 영화의 장점이었던 적절함을 버리고 한 곳을 파고드는 집요함이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이제 갓 데뷔한 감독한테 흔히 보이는 패기 대신 노련함이 엿보이는 유지영 감독, 오히려 다음 작품에서 패기있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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