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델과 어니스트' 포스터.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있다. 아이를 재우려고 자장가를 불러주다, 어릴 적 아무 생각 없이 부르던 동요의 고운 가사에 애틋해지고, 아이의 '독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책을 읽어주다 그 작가의 글과 그림체에 매료돼버린다. 내겐 레이먼드 브릭스도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년과 눈사람의 우정을 그린 <눈사람>의 작가로 잘 알려진 레이먼드 브릭스는 <산타 할아버지> <곰> 등의 작품으로 아이들은 물론 엄마들에게도 친숙한 작가다. 레이먼드 브릭스가 자신의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작화했던 <에델과 어니스트>가 영화화돼 관객을 찾아왔다. 마치 옛벗을 만나듯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를 만나러 갔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c'est la vie"(이것이 인생이다)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나와 가까운 사람, 특히 나를 존재하게 만든 부모에 대해서 우리는 제대로 바라보기 쉽지 않다. 물론 나라는 존재의 감정적 찌꺼기를 거르고 부모 세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언제나 숙제다. 그런 면에서 <에델과 어니스트>는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극적이기 보다는 그림책을 한장씩 넘기며 한 세대의 삶을 조감하는 심정으로, 그래서 결국에는 나 역시도 이 분들처럼 한 세대로서 인생을 살아가겠구나 하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한다.

그런데 <에델과 어니스트>에 돌입하기 전에, 레이먼드 브릭스라는 작가에 대한 '배경 지식'을 쌓을 필요가 있을 듯하다. 즉, 그가 자신의 부모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다. 흔히 소년과 눈사람의 겨울 한 철에만 존재하는 조금은 쓸쓸한 우정에 대한, 그래서 아름다운 동화책의 작가로만 우리는 기억하지만, 그의 작가적 세계는 생각보다 비판적이다.

1920년대 런던의 우유 배달부와 가정부 사이에서 태어난 레이먼드 브릭스는 전쟁과 자본주의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 와중에도 그의 부모들이 마련한 집과 직업 덕에 나름 평생을 순탄하게 보냈다. 그러나 정작 레이먼드 브릭스는 자신에 대해 다르게 설명한다.

"세상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해야 했던 가정 환경과 성장 과정을 통해 대체로 난 우울하고 비관적이고 뾰루퉁해 있다. 언제나 세상 살기 괴롭다고 느껴왔고 나이 들수록 더 그렇게 느껴진다. 언제나 뚱해왔고 지금은 더 불만투성이다. 난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

그렇게 불만이 많고 뚱한 그가 보는 세상은 그의 작품에도 드러난다. 전래 동요 모음집인 <마더 구스>는 동요를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대신, 현대적인 배경에 노동 계층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해학적인 해석을 가미했다.

어린이와 작은 사람의 짧은 3일 간의 만남을 그려낸 <작은 사람>은 독자의 연령과 상황에 따라 아이의 성장기처럼 보일 수도 있고, 인간과 인간의 만남으로 읽힐 수도 있다. <바람이 불 때에>는 핵전쟁이 벌어진 세상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성실한 노부부를 통해 불가항력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역설적으로 '핵'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비판적'인 견해를 표출한다. 이러한 시선은 자신의 부모 세대를 그려낸 <에델과 어니스트>에서도 고스란히 관찰된다.

전쟁 속에 무너진 일상, 그래도 계속되는 삶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1920년대 런던의 우유 배달부였던 어니스트는 날마다 길에서 가정부였던 에델과 마주친다. 자신을 보며 씩씩하게 인사하는 청년 어니스트에게 에델은 호감이 있지만 집주인이 닥달하는 바람에 눈조자 마주치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니스트가 용감하게 그녀가 일하던 집의 문을 두드리면서 그들의 만남은 이어질 수 있었다.

한창 젊은 두 연인의 만남, 하지만 우유 배달부와 가정부였던 그들의 존재는 만남과 결혼마저도 규정한다. 당시 런던의 밤거리와 파티 문화는 그들에게는 '사치'였으며, 결혼한 그들을 맞이한 건 침대 하나 없는 20년 장기 융자까지 끼어 있는 텅 빈 집이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형제를 잃은 그들은 살아남아 짝을 만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가정을 꾸릴 수 있어 행복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성실함'만으로는 세상을 감당할 수 없었다. 에델은 어니스트의 소망과 달리 레이먼드 단 한 명만을 낳고 단산했다. 2차대전 발발과 히틀러의 런던 공습으로 인해 부부는 소중한 아들을 시골로 내려보내야 했다. 그들이 열심히 가꾸었던 집은 전쟁 중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이어져 갔다. 하늘이 맺어준 그들의 인연이 다하는 날까지.

이렇게 영화는 평범한 한 부부의 일생과 그에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사건, 자본주의 문명의 발전을 통해 변화해 가는 부부의 삶을 관조적으로 그려낸다. 세계를 뒤흔든 전쟁은 그들의 일상을 변화시키지만, 그럼에도 우유배달 조합의 성실한 직원이었던 어니스트와 알뜰한 에델은 전후 영국의 복지와 자본주의 발전의 혜택의 '수혜자'가 되어 '안정된' 삶을 구가할 수 있었다.

보수당 지지자 에델과 노동당 지지자 어니스트 부부의 삶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영화는 격동의 세월 속 객체로만 부부를 그리지는 않는다. 에델은 요양 병원에 누워있으면서도 병문안 온 장발의 아들에게 빗을 건넬 만큼 깔끔했던 인물이다. 처칠을 비롯해 보수당을 지지하는 그는 우유 배달부인 남편에게 "왜 당신이 노동계급이냐"고 반문한다. 그녀에게 어니스트와의 결혼 생활은 '노동 계급'으로부터의 계층 상승을 보장해 준 삶이었다.

그에 반해 늘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에 귀를 기울이던 남편 어니스트는 최저임금 결정안에 두팔 벌려 환호할 정도로 노동 계급의 정체성에 충실했다. 때론 그가 지지했던 정책이 자신의 신념을 당혹스럽게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도 그는 자전거에서, 카트 그리고 자동차를 타고 '은퇴'할 때까지 해직 위험 없이 가정을 지킬 수 있었다.

에델은 아들이 상류층 계급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한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아들을 통해 그녀가 소망했던 계층상승의 꿈을 이루는가 싶었지만 막상 아들은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미술학교를 갔다. 또 손자를 안겨주는 대신 조현병의 아내와 아이 없이 살았다. 부부는 하나뿐인 아들을 갸륵하게 여겼지만, 그 아들은 금세 커서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 건너가 부모를 낯설게 했다. 부모는 결국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채 병으로 이별을 맞이한다. 젊은 부부의 열의로 가득했던 집은 아들 레이먼드가 얻어온 배의 씨앗이 아름드리 나무가 되도록 스위트 홈 역할을 했지만 '부부의 인생'은 그 시간을 버텨내지 못한다. 그렇게 한 세대의 삶이 마무리되어간다.

영화는 레이먼드 브릭스의 부모를 통해 1,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복지국가 시대까지 지나온 세대의 삶을 조망한다. 그들은 부부였지만 각자 삶에 대한 주관이 달랐고, 또 그러면서도 국가 정책과 문명의 발전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다. 이들의 '순응적'인 태도 그 어디에서도 레이먼드 브릭스가 느꼈던 우울하고 비관적이었던 정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건 부모 세대와 그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자식 세대'의 간극일 터다.

영화를 보면서, 전쟁을 겪었고 서로 다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온 부모 세대의 삶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우리네 부모들은 에델과 어니스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다른 '정치적 입장'이 그들의 생사를 갈랐으며 '안정된 삶'을 얻기 위해 처절한 자기 희생과 노력을 해야 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지만 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지난 시기에 대한 투영이 <에델과 어니스트>에 대한 감상을 씁쓸하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에델과어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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