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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버이날이 지났다. 결혼한 지 1년이 갓 넘은 친구는 어버이날에 시부모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저녁 즈음 전화를 드렸는데, 대뜸 시어머니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 며느리가 왜 이렇게 연락을 자주 안 하느냐는 이유에서였다. 또 다른 친구도 어버이날에도 출근을 하여 시댁에 찾아뵐 수 없었는데, 또 그 때문에 시댁에서 야단을 맞았다고 했다.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오은수(이지아 분)의 시어머니 최여사(김용림)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오은수(이지아 분)의 시어머니 최여사(김용림)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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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은 성인이 부모님에게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하는 것이 '혼날 일'이 되는지는 둘째 치고, 혼내는 주체가 왜 내 부모님이 아니라 남편의 부모님일까. 그 남편들은 과연 아내보다 부모님께 연락을 자주 드렸기 때문에 혼나지 않은 것일까? 무엇보다 남편들은 이 상황에 대해 과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며느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참 '이상할' 때가 많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통해 우리나라의 결혼한 여성들이 일명 '시월드'에서 겪게 되는 이상한 상황들을 조명할 수 있었던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또 변화의 씨앗이 되기보다는 기묘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방송에서 비춰지는 현실이 극단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일부 며느리들이 분노하는 한편 또 일부 남편들은 안심했던 것이다.

"우리 집은 저 정도는 아니잖아."

지난 명절이 지난 뒤 실제로 남편이 나에게 한 말이다. 나는 황당했다. 시부모님이 며느리인 나에게 부엌일을 강요하지 않고, 친정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며느리가 제사상 차리는 법을 배워야지', '우리 아들은 귀하게 키웠다' 농담으로라도 언급하실 때마다 내가 느끼는 불평등과 불편함이 분명히 있었다. 내가 불편하다는데, 누가 나에게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잖아'라고 괜찮아야 하는 수위를 정해준단 말인가.

가족끼리 '이 정도도 못 참느냐'는 말은 일종의 폭력이다. 그런데 너무나 흔히 습관적으로 일어나던 일이라 그것이 '그럴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누드모델 몰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던 일이 있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범죄는 가해자의 성별과 상관없이 그냥 범죄이므로. 그런데 이슈조차 되지 못한 수많은 몰카 범죄는 왜 수사조차 되지 않고 묻혀버리는 걸까.

나는 사회가 그동안 몰카 범죄에 대하여 아예 망각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내 몰카가 어떤 웹사이트에 올려져 있어도 해결할 방법이 없기에, 내가 화장실을 갈 때 스스로 주변을 둘러보고 구멍을 경계해야 하는 줄로 알았다.

이슈화되지 않아서, 모두가 흔히 겪고 있어서, 그래서 누군가를 가해자로 주목하지 않고 묻혀버려도 괜찮은 범죄는 없다. 그리고 범죄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예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여성으로서, 며느리로서 겪는 불평등의 많은 부분이 '참아야 하는 일'이 아니라 '일어나면 안 되는 일'에 가깝다.

페미니스트가 되면 안 되나요?

남성과 여성이 살아온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결혼 후에 부쩍 느끼고 있다. 내가 살면서 느낀 일상적인 불편과 공포, 며느리로서 겪는 부조리, 미래의 엄마로서 갖춰야 한다고 여겨지는 강제성 높은 의무에 대하여 남편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나는 오히려 놀랐다.

그는 내가 밤늦게 택시를 타고 싶지 않은 진짜 이유를, 시댁에 가서 편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는 진짜 이유를 몰랐다. 우리는 각자 당연하다 여겨온 세상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첫 걸음을 떼야 했다.

내가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느끼는 부조리함에 대한 글을 쓰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메갈'이니 '꼴페미'니 하는 댓글이 달린다. 내가 특정 여초 커뮤니티에서 활동한다는 데에 자신의 손모가지를 걸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왜 그렇게 소중한 것을 함부로 거는지 모르겠지만 믿거나 말거나, 나는 아무 커뮤니티에도 접속하지 않는다.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지만 고양이 커뮤니티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단체 활동에는 흥미가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성 인권에 대한 언급만 되어도 많은 이들이 금방 분노할 뿐 그 논리를 차근차근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페미나치'니 뭐니, 빈정거리는 편이 훨씬 간단하기 때문일까.

한국에서 펜스룰의 의미가 변질된 것처럼 페미니즘이 여성 우월주의로 의미가 변질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은 탓이기도 할 것이다. 이전에는 한 여성 아이돌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언급한 것만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일이 있었다. 최근에도 만화 업계에서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 표명을 요구받은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다.

요즘의 분위기를 보면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것이 마치 위험한 사상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여성혐오, 남성혐오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위험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불편한 요소를 공론화하고, 불평등과 심지어 성폭행 등의 범죄에 대하여 함께 분노하는 것에 사상 검증까지 필요한 것일까.

나는 내가 힘들었던 것을 너도 똑같이 겪어봐야 한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괴물을 만나봤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괴물이 되어 고통을 돌려주고 싶지는 않다. 그저 우리가 상식적이고 안전한 세상, 서로의 불편함을 이해해주는 세상에 대하여 함께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을 뿐.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으나, 학문적이거나 역사적인 의미의 페미니즘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그저 성별로 역할을 규정하지 않고, 성별에 의한 부조리함을 따르지 않고, 성별이 아니라 각자의 인격으로서 상식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을 모색하는 길을 페미니즘이라고 지칭한다면, 그렇다. 나는 누가 뭐래도 페미니스트가 되겠다.


태그:#페미니즘, #며느리,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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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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