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항쟁을 다룬 작품을 준비 중이다. 댄스 필름 형식이다." (관련 기사: 광주 출신 미술학도, 세월호와 강정을 들고 칸을 찾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세월호 참사와 제주 강정마을 투쟁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들고 칸 영화제를 찾았던 오재형 감독. 그는 약속대로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실험영화를 들고 돌아왔다. 오 감독이 만든 5.18 영화의 이름은 <봄날>. 15분짜리 단편 영화다.

 5.18 기념재단이 제작하고 오재형 감독이 연출한 5.18 댄스필름 영화 <봄날> 포스터

5.18 기념재단이 제작하고 오재형 감독이 연출한 5.18 댄스필름 영화 <봄날> 포스터ⓒ 5.18 기념재단


현대무용가 4명과 수화통역사 1명이 몸짓과 손짓을 이용해 5.18 민주화운동을 표현한다. 5.18 광주를 다룬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영화 <봄날>의 모티프가 됐다. 책 <소년이 온다>는 1980년 당시 중학생이던 소년 동호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친구가 죽어가던 모습을 보고 광주 도청에 남아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는다. 소설은 5.18 이후 여러 인물들의 모습을 비춘다. 

오재형 감독은 <봄날>의 출연진 다섯 명에게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작품에 들어가달라고 부탁했다. 아예 출연진들과의 첫 미팅 자리에서 책 <소년이 온다>를 선물해주었다. 이외에 감독은 출연진에게 어떤 주문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들이 "책을 읽고 소설 안에 들어있는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느낀 5.18 항쟁을 무용으로 해석해주기를" 바랐다.

왜 하필 광주를 다룬 많은 작품 중 <소년이 온다>였냐고? 오재형 감독이 생각하기에 "<소년이 온다>보다 더 입체적인 감성으로 광주를 다룬 작품은 없었기 때문"이란다.

 오재형 감독이 그린 영화 <봄날> 제작일지

오재형 감독이 그린 영화 <봄날> 제작일지ⓒ 오재형 감독 블로그


"<소년이 온다>에는 광주를 겪은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그 사람들의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5.18에 대해 한 사람의 시점이 아니라 입체적인 시점으로 전달해주는 포맷 자체가 좋았다. <봄날>의 출연자들은 모두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라고 여겼다. 예를 들어 수화통역사를 동호의 어머니라고 해석하고 다른 출연자를 소설 속 군인이나 생존자로 표현하는 식이었다."

수화통역사 장진석씨는 영화 뒷부분에서 소설 <소년이 온다>의 결말을 수화로 표현한다. 오재형 감독은 <소년이 온다> 중 동호 어머니의 독백 장면을 장진석씨에게 수화로 표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무용수로는 김수진, 이선태, 하이경, 천현아씨를 섭외했다. 김수진씨는 프랑스와 벨라루스에서 클래식 발레단 활동을 이어가다 5년 전부터 현대무용과 영화 안무 제작 등을 하고 있는 무용가. 이선태씨는 엠넷 <댄싱나인>에 출연했던 유명한 안무가이기도 하다.

출연자들의 몸짓과 손짓은 감독의 "즉흥적인 감각"에 따라 편집이 돼 고스란히 영화 속에 담겼다. 오재형 감독은 "무용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었기 때문에" 출연자들에게 의지했지만 거리에서 무용수들의 몸짓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만큼은 "편집을 강하게 했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그 이유에 대해 "몸짓을 거꾸로 돌리는 첫 장면에서 동시대를 살지만 여전히 과거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비극을 겪어낸 생존자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감독, 광주를 영화로 담기까지

16일 오후 오재형 감독과 유선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1985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5.18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5.18 유공자이고 그의 아버지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녹음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5.18 민주화운동은 오재형 감독에게 "전혀 거리두기가 되지 않는 일"이었고 "적극적으로 알기 위해 노력했던 적도 없던 일"이었다.

"5.18 항쟁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착각을 했나? 대학에 와 국가 폭력의 현장들을 직접 보면서 새삼스럽게 다시 5.18을 떠올렸다. 창작자로서 길을 가다 보니 언젠가 한 번은 5.18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바에야 5.18을 내 방식대로 예술적으로 풀어보자 싶었다. 그러던 중 5.18 기념재단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5.18 기념재단 측에서) 내게 전권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이를 받아들였다. 좀 더 자유롭고 재밌게 부담 없이 만들어보자 싶었다."

 영화 <봄날> 스틸사진

영화 <봄날> 스틸사진ⓒ 5.18 기념재단


 영화 <봄날> 스틸사진

영화 <봄날> 스틸사진ⓒ 5.18 기념재단


<화려한 휴가>나 <택시운전사> 등 이미 많은 영화들이 5.18 광주를 영화의 소재로 택했다. 이른바 '무용 영화'라는 <봄날>과 다른 장르이긴 하지만 소재에 대한 부담은 없었던 걸까?

"<택시운전사> 등이 가진 사회적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5.18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이를 사회적으로 널리 알리는 역할은 중요하다. 하지만 상업 영화가 갖는 한계가 있다. <봄날>은 5.18에 대해 이 영화들과는 다르게 다가가고 스토리도 없어 난해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아무런 정보 없이 보면 5.18에 대한 영화인지 아닌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만들 수 있는 5.18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영화의 제작이 마무리되고 지난 2017년 말 5.18 기념재단에서 후원자들을 모아 <봄날>을 상영했다고 한다. 오재형 감독은 "그때 오셨던 분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며 웃었다. "영화가 되게 실험적이고 예술적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난해해서 5.18을 담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봄날>은 5.18 기념재단의 정신계승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오재환 감독은 "'정신계승'이니까 20~30대들에게도 이 영화가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했다.

"광주가 아니더라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영화 <봄날> 스틸사진

영화 <봄날> 스틸사진ⓒ 5.18 기념재단


 영화 <봄날> 스틸사진

영화 <봄날> 스틸사진ⓒ 5.18 기념재단


영화 <봄날> 출연자들은 서울 청계천 등 광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퍼포먼스를 펼친다. 오재형 감독은 "꼭 광주여야 할 필요가 없었다. 5.18은 광주를 타깃으로 찍고 학살을 한 거지만 사실 어느 도시에서나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답했다. 출연자들이 나오는 장소는 장소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 보다 "인물 내면의 풍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게 오재형 감독의 설명이다.

그리고 영화는 출연자들의 몸짓·손짓 퍼포먼스에 광주의 밤거리를 겹친다. 오재형 감독은 "도시가 기억하는 5.18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답한다.

"어느 학살이나 비극의 장소를 한낮에 가면 '여기서 이런 일이 있었어?' 싶은 생경한 느낌이 든다. 제주에 가도 '이렇게 하늘 맑은 곳에 4.3이 벌어졌다고?' 싶다. 광주도 마찬가지다. 5.18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도저히 나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일은 분명히 일어났다. 도청 분수대나 건물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나무나 건물, 벽도 5.18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물들과 도시가 기억하는 5.18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지나가는 벽돌에도 5.18이 스며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재형 감독은 16살에 광주를 떠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인이 된 그가 본 광주의 모습은 어떨까?

"광주에서 했던 세월호 집회를 보면 횃불을 들고 시위를 한다. 광주 경찰들도 집회에 대해 우호적이다. 그런 기사를 보면서 '역시 광주'라는 반응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자랑스러웠다. 시민들이 현재에도 이렇게 사회적 역할을 많이 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건 5.18 광주를 겪은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건데 5.18 당시 '시민 자치 기간' 동안 단 한 건의 약탈이나 방화가 없었다고 한다. 시민들끼리 자급자족하면서 살고. 신기하더라. 영화 <봄날>의 마지막 장면에 해가 떠오르기 직전 광주의 모습을 담았다. 광주에 대한 나의 애정을 싣고 싶었다."

영화 <봄날>은 5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 동안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를 통해 무료 공개될 예정이다. (링크: https://youtu.be/K92h-O-c6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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