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에 수록된 한채윤의 글 '소수자는 피해자인가: 커밍아웃, 아웃팅, 커버링'을 읽던 중 놀란 부분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7~8년 전쯤 글쓴이의 사무실에 자녀의 커밍아웃을 듣고 조언을 얻기 위해 한 중년 부부가 방문한다. 그리고 이들은 상담 끝에 겨우 마음을 돌려먹고 대신 이런 요청을 한다. 아들에게 사회적 지위도 높고 돈도 잘 버는, 롤모델로 삼을 만한 동성애자를 소개해줄 수 있냐는 것. 이에 저자는 의문을 표한다. 왜 이 사람들은 '행복한 동성애자'는 만나보고 싶지 않아하는 걸까. 동성애자가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왜 행복일 수는 없을까. 왜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되려면 더 돈이 많거나, 이성애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힘을 지녀야만 하는 것일까.

이 부분에서 다소 뜨끔했던 것은 동성애자이고 그러므로 당사자인 나조차도 인생의 목표를 '행복'이라고 말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인생의 소망은 있지만 목표는 없다. 평등한 세상과 혐오가 사라진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 하고 다니지만 솔직히 내가 살아있는 동안 가능하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이건 막연한 희망에 가깝다.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과 같이 보다 구체적인 단계로 내려와도 마찬가지다. 이게 이루어지면 나는 행복할까. 아니면 거꾸로 이 목표가 완수되지 않은 지금 그래서 나는 불행한 걸까.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요는 나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그래서 뭘 얻고 싶은지를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성소수자도 사람이다'라고 외치면서도 한 명의 개별적인 인간으로 스스로를 대우해본 적이 나 조차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CJ Entertainment


혐오와 배제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왜 그랬을까. 나는 가끔 이런 상황의 원인이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가 너무나 명징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혐오 집단의 주된 전략은 성적 소수자들에게 낙인을 찍고 사람들이 이들을 피하게 만들며 결국은 사회에서 존재 자체를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단지 그들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만을 이유로 방송이나 법과 제도, 교육 등의 영역에서 사라지길 반복한다. 사실 '동성애자'는 내가 지닌 여러 정체성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상이 그런 나의 존재를 지우려 할 때, 그 일부는 때로 전부보다 중요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성적소수자라는 집단적 정체성만으로 나를 파악하고 설명하고 소개할 때가 많다. 이때 억압과 배제는 나의 사회적 위치를 인식하는 유일한 키워드가 된다. 그리고 이게 계속되면 나도 나를 잘 모르게 된다. 내가 뭘 원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좋은지와 같은 것들.

이는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든 부정적으로 인식하든 그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든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늘 떠오르는 영화가 바로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2003년 개봉한 이안 감독의 이 영화는 두 카우보이 남성의 사랑을 다룬다. 작품의 배경인 1960년대 미국 남부는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던 곳이다. 때문에 이들의 로맨스는 비밀스럽게 펼쳐진다. 특히나 주인공 중 한 명인 애니스(히스 레저 분)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의해 동성애 혐오 범죄로 사망한 남자의 시체를 보게 되고 때문에 자신의 성적 지향이 드러나는 것에 공포를 가지게 된다. 애니스는 함께 목장에서 살기를 권유하는 잭(제이크 질렌할 분)에게 그 일을 고백하며 너무 눈에 띄게 살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경고한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CJ Entertainment


그가 행복을 포기한 이유

하지만 애니스가 관계를 진전시키고자 하는 잭을 밀어내면 낼수록 더욱 명징해지는 것은 그에겐 잭이 너무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헤어진 이후 몇 년 만에 잭을 다시 만났을 때, 애니스가 영화 중 그 어느 순간보다 격정적인 키스를 퍼부었던 것은 평화롭게만 보이던 그의 결혼 생활이 실은 매우 공허했음을 뜻했을 것이다. 부부 관계가 파탄에 이르고 이혼을 한 이후에 그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만 깊이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파경에 이르길 반복한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애니스는 오직 잭 앞에서만 속내를 털어놓고 가장 많은 말을 한다. 그런데 그게 고작 1년에 며칠이라니, 관객들의 입장에서 애가 탈 수밖에 없다.

정체성에 대한 강한 긍정(혹은 인정)만큼 강한 부정도 선을 넘으면 집착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는 사람의 생각에 장벽을 친다. 언급한 것처럼 애니스에겐 잭이 필요했고 그와 함께하는 것이 유일하게 행복해지는 길이었지만, 애니스는 자신의 성적 지향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을 충만하게 만든 모든 관계들이 허물어져가는 와중에도 가만히 소극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남겨진 유일한 답이 '퀴어'라고 손가락질 당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잭의 인생 목표가 행복한 삶이었다면 아마도 애니스는 정반대였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는 안전을 위해, '정상적이고 평범한 남자'가 되기 위해, 혹은 그렇게 보이기 위해 행복을 향한 모든 가능성을 놓았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삶의 중요한 대목마다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동성애자로 보이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CJ Entertainment


꿈도 희망도 평등하게 가질 수 있기를

사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애니스를 가로막는 혐오는 그렇게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솔직히 그의 아버지가 보여준 시체조차도 정말 동성애자 혐오 범죄로 희생된 사람의 것인지 불분명하다. 다만 이안 감독은 두 주인공을 바라보는 목장 주인의 경멸적인 시선을 통해, 바에서 다른 남자에게 접근하는 잭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카우보이들의 눈빛을 통해, 잭의 집을 방문한 애니스를 보는 그의 아버지의 태도를 통해 일상 속에서 은밀하게 흐르는 혐오의 정서를 그려낸다. 그 시선과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감이 오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위험하지만 위협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막연함은 두려움을 부채질한다. 아마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을 지내본 성소수자라면 잘 알 것이다. 솔직히 그 때는 누구 입에서 '동성애'라는 단어만 나와도 심장이 떨린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을 치는 일이 끝나고 처음 애니스가 잭과 헤어지는 순간에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애니스는 어두운 골목 틈새로 들어가 토해내듯 감정을 터트린다. 그가 암흑 속에 몸을 숨기고 있기에 스크린에는 흐느끼는 그의 실루엣만 등장하지만, 야속하게도 건물 틈새로 보이는 하늘은 푸르고 맑기만 하다. 세상은 가혹하리만치 무심하다. 이윽고 한 남자가 그런 애니스를 바라보자 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남자를 위협을 한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폭력성 보다는 두려움이다. 들켜서는 안 될 감정이 드러났다는 공포. 혐오와 낙인이 판치는 세상이 항상 시끌벅적한 탄압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그런 사회는 누군가를 어둔 골목 밖으로 나서지 못하게 막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리고 이런 공간에선 커밍아웃을 하건 하지 않건(혹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건) 모두 문제가 된다. 전자는 끝없는 싸움을 의미하고 후자는 계속되는 회피와 부인, 은폐를 뜻하기 때문이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CJ Entertainment


<브로크백 마운틴>을 볼 때면 늘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과 한국의 성소수자들의 삶 사이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두려움 때문이든 분노 때문이든, 숨기 위해서든 싸우기 위해서든 행복한 미래를 꿈꿔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잭의 주변을 서성이던 애니스의 모습을 본다.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차별과 낙인찍기가 그렇게 심하냐고,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나는 이성애자에겐 당연한 일이 성적소수자에겐 그렇지 않은 게 되고, 만족스러운 삶을 향한 가능성을 닫아두는 게 한 집단의 보편적인 정서가 되는 것은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하곤 한다.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꿈도 희망도 평등하게 가질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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