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르 그랑 뱅>의 한 장면.

영화 <르 그랑 뱅>의 한 장면. ⓒ TRESOR FILMS


프랑스어로 '거대한 수영장'을 뜻하는 <르 그랑 뱅>(le grand bain)이라는 영화가 칸영화제 관객들을 웃고 울렸다.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이 작품은 프랑스 국민 배우이자 최근 감독으로서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질 를르슈가 연출을 맡은 영화다.

지난 13일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진행된 공식 상영 당시 경쟁 부문이 아님에도 이자벨 위페르, 마리옹 꼬띠아르, 제인 폰다, 아이쉬와라 라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상영 직후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던 질 를르슈 감독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15일(현지시간) 질 를르슈 감독을 팔레 드 페스티벌 인근 호텔에서 만났다. 국내 매체 중에선 유일한 인터뷰였다.

가라앉거나 뜨거나

 질 를르슈 감독.

질 를르슈 감독. ⓒ 이선필


<르 그랑 뱅>의 영어제목이 보다 직접적이다. 'Sink or Swim' 즉, 죽기 살기로 버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인생의 전성기를 지나고 가족과 직장 혹은 어떤 조직에서 떨어져 나갈 위기에 놓은 중년 남성들이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대회에 도전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코믹하게 풀었다. 마티유 아말릭, 브누와 포엘부르드 등이 호흡을 맞췄다.

남성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소재로 잡은 것에 질 를르슈 감독은 "5년 전 시나리오를 쓰기 직전 남자들에게 어울리면서 시적이고, 동시에 여성적인 운동 종목을 찾고 있었는데 < Parfaites >라는 다큐멘터리를 알게 됐다"며 "그 작품이 큰 영감을 주었다"고 밝혔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 결핍과 상처가 있다. 아내와 아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거나, 방황하는 딸에게 충고조차 제대로 건네지 못할 만큼 관계가 경직돼 있기도 하다. 또 다른 이는 직장에서 친구나 동료들에게 상처를 받아도 싫은 티를 내지 못할 정도로 위축되어 있다. 아랫배가 축 늘어져 있는 이들이 한 팀이 되는 과정, 그리고 그들이 아마추어 경기에서 어떤 소득을 올리면서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그 이후가 이 영화가 진짜로 보여주고 싶은 주제였다. 바로 관계 회복이다. 

탄탄한 몸을 지닌 남자배우를 쓰지 않은 것에 질 를르슈 감독은 "완벽한 몸을 화면에서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이미지 독점"이라며 "우리 영화에선 털이 많고, 살도 많고, 아랫배도 처진 있는 그대로의 중년 남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그것 나름대로 아름답지 않나. 배우들은 촬영이 시작되기 5개월 전부터 싱크로나이즈 스위밍을 연습하고 여러 훈련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맨몸으로 돌아다니는 것에 익숙해졌다. 영화 출연을 위해 다리털 제모까지 했다(웃음). 음, 조금 변태 같지만 우리 집에 배우들의 털이 담겨있는 봉지가 있다!

물론 수중촬영은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카메라로 물의 움직임을 쫓아가기가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음향 문제였다. 공간의 특성 상 울림이 아주 많고 크다. 특히 브누와 포엘부르드(질 를르슈와 오랜 기간 알고 지낸 베테랑 배우-기자 주)와 촬영할 땐 더욱 힘들다. 그 분 목소리가 워낙 크고 시끄럽기 때문이다."

 영화 <르 그랑 뱅>의 한 장면.

영화 <르 그랑 뱅>의 한 장면. ⓒ TRESOR FILMS


유머감각

"사실 그 배우와 일하는 건 아이와 일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브누와에겐 항상 무언가 해야 할 일을 만들어줘야 한다. 즉흥적인 배우라 애드리브가 많고, 그래서 롱테이크로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디테일한 연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모든 연기를 할 줄 아는 이해심이 많은 배우다."

질 를르슈 역시 배우 활동엔 일가견이 있다. 국내에선 액션영화 <포인트 블랭크>, <테레즈 데케루> 등으로 알려져 있다. 특유의 코믹 연기도 그만의 인장이다. 연기와 영화 연출을 병행하면서 생긴 변화를 묻는 질문에 그는 "연기와 연출은 너무도 다른 분야이고 직업"이라면서 "솔직히 배우만으로는 좀 심심하다. 하지만 감독을 하면 일이 많아진다"며 말을 이었다.

"연출을 하다보면 온통 정신이 영화로 쏠리더라. 연기할 때도 물론 그렇지만, 보다 다양한 면을 생각해야 하고 더 챙겨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배우와는 완전 다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연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작품을 더 많이 하고 싶다. 그리고 제가 유머감각이 좋다고? (웃음) 우리 가족이 다 유쾌하다. 그래서 유년시절이 아주 즐거웠다. 유머는 제 친구이며 무기이자 방패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영화의 음악도 참 중요한 요소였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팀이 사용한 음악이 핵심이었다. 전반적으로 제 젊은 시절을 함께한 80년대 음악을 넣고 싶었다. 음악이 캐릭터들의 삶과 그에 따른 문제들을 대변하고 있다. 존 브리옹(jon Brion)이라는 훌륭한 작곡가에게 곡을 맡겼다. 폴 토마스 앤더슨과 미셸 공드리 감독에 참여했던 분인데 프랑스 영화는 그간 작업하지 않았더라. 그 분 덕에 영화가 더욱 개성 넘치고, 유머러스하게 나온 것 같다."

한편, 국내에선 오는 5월 30일에 그의 또 다른 출연작 <세라비, 이것이 인생>가 개봉한다.
한 웨딩 플래너의 좌충우돌 결혼식 성사기를 다룬 코미디 영화다. 칸영화제와 더불어 더욱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해질 그의 모습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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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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