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범시민>의 주역들.

영화 <모범시민>의 주역들. 왼쪽부터 배우 윤세현, 김철휘 감독.ⓒ 이선필


약 11분 분량의 단편 <모범시민>엔 놀라운 반전이 담겨 있다. 말쑥하게 빼입은 정장차림의 한 사내가 경마장 화장실을 홀로 청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과연 이 남자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까. 해당 작품은 칸영화제의 사이드바(비공식 부문이지만 관련) 행사인 57회 비평가주간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10편의 경쟁작 중 <모범시민>은 유일하게 아시아 감독의 작품이다. 게다가 연출자인 김철휘 감독은 동국대 전산원 영화학과 학생으로 생애 첫 단편이 세계영화제에 초청받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김철휘 감독과 주연을 맡은 배우 윤세현을 팔레 드 페스티벌 내 영진위 부스에서 만났다. 

욕망이 교차하는 추악한 공간

 영화 <모범시민> 관련 사진.

영화 <모범시민> 관련 사진.ⓒ 인디스토리


촬영기간은 단 3일. 때와 녹이 잔뜩 껴 있고, 각종 스티커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화장실을 표현하기 위해 미술팀과 함께 공을 들였다. 영화엔 감독의 개성이 잘 담긴 화면들과 미술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화장실이었을까.

"화장실에 갔을 때 변기 뚜껑이 닫혀있으면 뭔가 불안하잖나. 그 이미지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발전시켜 갔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가 하는 행동들, 그것이 좋은 행동이든 나쁜 행동이든 모든 게 스스로의 만족감을 위해 하는 건 아닐까. 그걸 마지막 부분에 강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김철휘 감독)

"영화적으로 보면 화장실을 청소하는 그 남자가 나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생업을 이어가는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이해했다. 매우 꼼꼼하게 변기를 닦아야 했다(웃음). 어찌 보면 그런 행동이 광적이거나 집착처럼 보이는데 그럴수록 관객 분들의 궁금증을 더 유발시킬 수 있겠다고 감독님과 얘기했었다." (배우 윤세현)

정확히는 욕망에 관련돼 있었다. 경마장 내 화장실을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도 그것이다. "금전적 이익을 위해 온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중 하나"라면서 감독은 "그래서 이미지적으로 표현하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경마장을 직접 가서 봤다. 생각보다 화장실은 깨끗했는데 그곳에 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상반되더라. 신문지를 깔고 계속 뭔가를 쳐다보고 있고, 그런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에 흐르는 경마장 중계 소리는 마사회에 직접 연락해 부탁한 것이다."

제목 자체는 큰 고민 없이 처음 생각한 것을 그대로 가져간 것이었지만 촬영 과정 자체가 순탄하지 않았다. 한 상가의 화장실을 빌렸지만 너무 지저분하게 꾸민 탓에 쫓겨나 다른 상가로 넘어가야 했고, 촬영 중 화장실 벽 등이 무너져 내려 제작비로 수리해내야 했다. 학부생 입장에선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감독의 사비와 스태프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칸영화제의 경험

 영화 <모범시민>의 주역들.

김철휘 감독.ⓒ 이선필


짧은 분량이라고 이 영화를 허투루 볼 수 없다. 앞서 말한 미술 요소에 상당히 신경을 썼고, 배우들 또한 꼼꼼하게 오디션을 봤다는 사실. 김철휘 감독은 "하루에 4명 씩 약 100분 정도 오디션을 봤는데 윤세현 배우님은 가장 처음에 만난 분"이었다고 전했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된 칸영화제를 두고 두 사람은 "사실 반신반의 했다"고 공통적으로 고백했다. 김철휘 감독은 "제가 아는 그 칸영화제가 맞나 싶었다"며 "모르는 번호로 온 해외전화라 안 받았는데 문자로 연락을 주시더라"고 비하인드를 소개했다. 

"막상 와보니 제가 어필해야 하는 분위기도 있고, 엄청난 자리에 왔다는 걸 여기서 실감하고 있다. 현지 상영 후 이미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변기에 손 집어넣고 그러는 게 강하게 다가왔나 보더라." (김철휘 감독) 

"저도 처음에 초청 얘길 들었을 때 제가 아는 그 칸인가 싶었다. 이렇게 대단한 곳에 제가  와도 되는 건가 싶었다." (배우 윤세현) 

두 사람 모두 칸영화제를 계기로 어떤 발판을 마련했다. 평소 나홍진 감독의 <완벽한 도미 요리>, 윤가은 감독의 단편 등을 좋아했다던 김철휘 감독은 "처음엔 제 이야기에 확신도 없었고, 마음도 많이 불안했는데 지금은 연출을 계속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라며 "한국에 돌아간 후보다 구체적으로 이후를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영화 <모범시민> 관련 사진.

영화 <모범시민> 관련 사진.ⓒ 인디스토리


"지금 이 순간도 감독이라고 불리는 게 어색하다. 그런데 제 영화를 보신 분들이 저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그 반응에 쾌감이 있더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으로 다음 작품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지면을 빌려 <모범시민>에서 함께 고생한 12명의 스태프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김철휘 감독)

"사실 칸영화제에 왔다고 뭔가 확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꾸준하게 제가 해왔던 걸 해나가겠다. 올해 <플라시보 장례식>, 그리고 전에 <시정마> 라는 장편으로 몇 번 국제단편영화제를 경험했었다. 앞으로도 단편 위주로 작업하게 될 것 같지만 당연히 저 역시 더 좋고 큰 규모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연기자 활동 초기엔 매니지먼트 회사를 찾아야 하나 그런 고민도 했었는데 제 대학교 은사님이 간단명료하게 해답을 주셨다. 잘하면 알아서 찾는다고. 지금은 제 발로 뛰어서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고 있다. 규모가 큰 작품을 하기 전 제가 잘 준비돼 있도록 다듬어 나갈 것이다." (배우 윤세현) 
 영화 <모범시민>의 주역들.

영화 <모범시민>의 주역들.ⓒ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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