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의 선택은 23인이 아니라 28인이었다. '기세'와 '경험'의 충돌이다. 역사는 경험 있는 선수보다는 기세가 좋은 선수를 선택하라 말하지만 신태용 감독의 선택은 아직 알 수 없다.

지난 14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참가할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 28인이 공개됐다. 최종적으로 러시아 땅을 밟을 수 있는 선수는 23인이다. 5명은 러시아를 목전에 두고 신태용호에서 하차할 예정이다.

깊은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신태용 감독의 선택이다. 신태용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 오랜 기간이 되지 않은 만큼 빠르게 최정예의 23인을 꾸리길 원했지만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주전 중앙 수비수로 분류되던 김민재와 왼쪽 날개 자원으로 차출이 확실시 되었던 염기훈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믿을 만한 중앙 수비수와 측면 공격수의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던 신태용 감독에게 닥친 크나큰 악재다.

실려 나오는 염기훈 수원 삼성 염기훈이 지난 9일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울산 현대와 원정경기에서 들것에 실려 나가고 있다.

▲ 실려 나오는 염기훈 수원 삼성 염기훈이 지난 9일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울산 현대와 원정경기에서 들것에 실려 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선택의 기로에서 신태용 감독은 두 가지 카드를 모두 점검하고자 한다. 먼저 '경험'이다. 경험을 주무기로 뽑힌 이번 명단에 뽑힌 대표적인 선수는 이청용과 김영권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이청용은 이번 시즌 소속팀에서 9경기에 출장하는 동안 286분을 경기장에서 소화하는 데 그쳤지만 기회를 부여받았다. 김영권에 경우 소속팀에서는 꾸준히 출장했음에도 최근 대표팀에서 극도로 부진하면서 월드컵과 멀어졌던 인물이다.

신태용 감독이 체크하고자 하는 다른 카드는 바로 '기세'다. 국가대표팀 경험은 전무하지만 상승세에 올라 있는 선수를 3명이나 차출했다. 제주 유나이티드 수비의 대들보 오반석과 올 시즌 6골을 터뜨리며 K리그1 한국인 선수 최다 득점자인 인천 유나이티드의 문선민이 가능성을 점검받을 예정이다. 이탈리아 세리아A의 헬라스 베로나에서 데뷔골을 신고한 이승우도 깜짝 발탁됐다.

'기세'를 선택했던 2002년과 2010년의 대성공

월드컵 본선에서 '기세'가 좋은 선수가 활약할지 '경험'이 풍부한 선수가 능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최근 한국 축구의 월드컵 도전기를 되돌아 보면 답은 어느 정도 나와 있다. 역사는 '경험'보다는 '기세'에 손을 들고 있다.

한국 축구 최대의 업적인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에는 겁 없는 무명들의 반란이 있었다. 월드컵 성공을 위해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치열한 경쟁 체재를 통해 경험은 부족하지만 젊고 빠른 선수들을 대거 발탁했다. 신예들을 단순히 발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주전급 선수로 적극 활용했다. 2002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전에 선발로 나선 11명의 선수 중 월드컵 경험이 없는 선수는 절반이 넘는 6명(설기현, 박지성, 이을용, 김남일, 송종국, 최진철)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폴란드전을 통해 월드컵에 데뷔한 6명이 태극전사들은 3·4위전까지 맹활약했다. 이들 이외에도 이천수, 차두리, 이영표 등이 기대 이상의 플레이로 대표팀의 기적을 함께 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기세' 좋은 신예들의 활약은 빛났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허정무 감독은 조별리그 1차전 그리스와 경기에서 월드컵 경험이 없는 선수를 무려 7명(정성룡, 이정수, 조용형, 기성용, 김정우, 이청용, 염기훈)이나 내보냈다.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이란 큰 무대를 돌파하는 데 경험보다는 지역 예선과 평가전을 통해 빠르게 성장한 선수들의 실력 그 자체를 믿었다.

팀의 안정성의 핵심인 골키퍼(정성룡)와 중앙 수비수 라인(이정수-조용형), 중앙 미드필더(기성용-김정우)를 모두 월드컵 경험이 없는 선수를 활용했지만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한국은 그리스를 박살냈다. 허정무호는 월드컵 원정 최초의 16강 진출도 이뤄냈다.

'경험'을 선택했던 2006년의 아쉬움

'기세'를 택했던 대회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던 한국은 '경험'을 선택했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아쉬움을 삼켰다. 신태용 감독과 마찬가지로 월드컵 준비까지 극도로 짧은 시간이 주어졌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2002년의 성공 신화를 적극 고려해 멤버를 구성했다.

은퇴 수순에 놓인 노장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2002년에 주축을 이뤘던 선수들이 무리 없이 발탁됐다. 그 결과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첫 번째 경기였던 토고전에서 월드컵 데뷔를 한 선수는 4명(김진규, 김영철, 이호, 조재진)에 불과했다. 경험이 풍부한 팀답게 경기력은 안정적이었지만 속도와 에너지는 다소 부족했다.

2010년의 성공과 비교해보면 경기력의 차이는 더욱 극적이다. 2010년의 경우 소수의 베테랑이 중심을 잡고 나머지 젋은 자원들이 경기장 곳곳에서 에너지를 뿜어냈다. 덕분에 한국은 다이나믹하고 예측 불허한 플레이로 상대를 당혹케 만들었다. 안정성의 부족으로 강호 아르헨티나에게 1-4로 대패하기는 했지만, 실질적 16강 경쟁국이었던 그리스와 나이지리아에게는 원하는 승점을 쟁취했다.

반면 경험을 선택했던 2006년은 실수는 적었지만 상대적으로 상대의 속도와 에너지에 무릎을 꿇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월드컵 첫 출전에 전력도 불안했던 토고의 스피드와 저돌성에 승부를 내줄 뻔 했고, 힘과 높이를 겸비한 스위스에게는 0-2로 완패를 당했다. 조별리그 당시 빈약한 공격력을 보여주던 프랑스에게도 시종일관 끌려다녔다. 경험은 풍부했지만 결과를 가져올 진짜 힘을 부족했다.

신태용의 선택은?

역사는 '경험'이 풍부한 선수보다는 최근 '기세'가 좋은 선수를 뽑으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태용 감독이 '기세'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전망이다. 앞서 언급한 2002년과 2010년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 선발 데뷔한 선수 총 13명 중 A매치 출장수가 20경기 미만인 선수는 최진철(18경기)과 정성룡(16경기)에 불과했다. 다른 선수들은 20경기 이상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소화했던 선수들이었다. 대부분 최소한의 경험은 갖춘 선수들이었다.

 23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 전반전 한국 이승우가 선제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23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 전반전 한국 이승우가 선제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면 현재 대표팀에 '기세'로 선택된 이승우, 문선민, 오반석은 모두 A매치 경험이 없다. 근래의 활약상이 발탁의 바탕이 된 홍철, 윤영선, 주세종 등도 A매치 20경기 미만 출장자이다. 월드컵이란 거대한 무대에 곧장 뛰어들기에는 불안 요소가 크다.

결국 결과는 온두라스와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로 이어지는 2연전이 가를 것이다. 최근 '기세'로 선발된 선수들은 그 기세를 실전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능력만 보여준다면 오히려 '경험' 있는 선수보다 러시아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릴 가능성이 높다.

신태용 감독은 문선민과 이승우의 활용 방안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했다. 문선민은 스웨덴에서 선수 생활을 오래했다는 사실을, 이승우는 작고 민첩해 스웨덴전에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란 이유를 발탁 배경으로 밝혔다. 이청용과 김영권으로 대표되는 '경험'이 무기인 선수보다 구체적인 활용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기대만큼의 실력만 평가전에서 선보인다면 러시아로 데려가 기용하겠다는 의중이다.

여러 방면에서 고민할 거리가 많은 28인 멤버 구성이다. 신태용 감독이 '기세'의 손을 들어줄지 '경험'의 손을 들어줄지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한국 대표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절대적으로 짧다는 사실이다. 신태용 감독이 종국에 어떤 선택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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