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의 앵커 김현정 PD

<김현정의 뉴스쇼>의 앵커 김현정 PDⓒ 김현정 제공


미국 메이저 리그 올 시즌 최대 화제의 선수 중 하나는 LA 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 선수일 것이다. 오타니 쇼헤이는 12일 기준 타율이 3할4푼8리다. 얼핏 보면 훌륭한 타자 같지만 오타니 쇼헤이는 전업 타자가 아닌 투타 겸업하는 선수라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CBS 라디오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김현정의 뉴스쇼>의 앵커인 김현정 PD다. 진행만 하는 다른 시사 프로그램 앵커와 달리 김PD는 프로그램 인터뷰 섭외 등 제작에도 참여하면서 진행 능력도 탁월해 청취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김현정의 뉴스쇼>가 지난 12일로 10주년을 맞이했다. 2008년 5월 10일 첫 방송을 내보낸 <김현정의 뉴스쇼>는 그간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보지 못한 포맷을 선보여 왔다. 10주년에 대한 소감이 궁금해 지난 11일 서울 목동 CBS 사옥에서 김현정 PD를 만나 10주년을 맞이하는 소회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김현정의 뉴스쇼>의 앵커 김현정 PD

<김현정의 뉴스쇼>의 앵커 김현정 PDⓒ 김현정 제공


"10년 된 <뉴스쇼>, 내 자식 같아"

- 12일이 <김현정의 뉴스쇼> 10주년 되는 날입니다. 한 프로그램을 10년 진행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10주년을 맞이하는 소회는?
"벌써 10년이죠. '<뉴스쇼> 너는 많이 컸고 나는 많이 늙었구나(웃음)!'죠.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이제 뉴스쇼는 저에게 '자식' 같아요. 조그마한 핏덩이였던 아이가 열 살이 되어 뛰어다니고 학교 다니는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느낌이에요. 이 아이를 키우느라고 지난 세월 하루 15시간씩 매달려왔던 거죠. 저는 방송이 1초라도 허투루 나가면 죄짓는 느낌, 엄청 귀중한 걸 날리는 느낌이에요. 어떻게 그러냐고 물어보시는데 가능해요. 프로그램은 제 자식이니까요."

- 10년 전 <뉴스쇼>를 시작할 때 새로운 시도가 많았던 것 같은데요?
"정말 새로웠죠. 그 당시에도 시사 프로그램이 많이 있었지만, PD와 기자가 같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전무했어요. 사실 방송국 시스템 상 편성국과 보도국이 함께 방송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뉴스쇼는 편성국 피디들과 보도국 기자들이 함께 만드는 '1+100' 개념을 도입했는데 다들 그게 얼마나 갈 수 있겠냐고 우려했죠. 하지만 놀랍게도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어요.

그 외에도 '포털 뉴스'라고 실시간 인터넷 뉴스를 소개하는 코너도 있었어요. 그 당시엔 저희가 처음 시도하는 거였는데 지금은 많은 시사프로에서 하고 있죠. '오늘의 노래'라는 코너 역시, 그날 시사 뉴스와 맞아 떨어지는 노래를 내보내는 것으로 당시엔 새로운 시도였는데 지금은 라디오는 물론 TV 뉴스에서도 하고 있죠. 이런 걸 보며 자부심도 느끼고 동시에 또 어떤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하나 고민도 되고요."

- <뉴스쇼>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죠. 앞서 설명한 새로운 코너들 외에도 인터뷰의 패턴 역시 상당히 새로웠던 게 사실이에요. <뉴스쇼> 런칭 당시 대부분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들은 전문가나 정치인들의 논평식 인터뷰로 채워졌어요. 그런데 저희는 당사자 찾기에 주력했죠. 어떤 사건의 진실을 찾는 데 있어 당사자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으로 밤을 새워가며 당사자를 찾아서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렸어요.

밤에 사건이 터졌는데 다음 날 아침에 사건의 당사자가 나오니 청취자들은 물론 방송계에서도 놀라워했죠. 덕분에 <뉴스쇼>가 PD들의 기피 프로 1위가 됐지만요(웃음). 그때를 계기로 당사자 출연이라는 트렌드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김현정 PD는 앵커일 뿐 아니라 제작도 참여하죠. 오롯이 진행만 하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음악으로 따지자면 작사, 작곡에 노래까지 하는 '싱어송라이터'인 셈이죠. 그러다 보니 힘은 두 배 세 배 더 드는 게 사실이지만 프로그램 전체를 조망하면서 갈 수 있는 장점이 확실히 있습니다. 아침 기획 회의부터 밤늦게까지 함께 섭외하고 원고 준비하고 심지어 인터뷰 전문에 제목 다는 일까지 참여하니까 프로그램을 100% 이해하고 들어가는 거죠. 진행자가 프로그램을 몇 퍼센트나 이해하고, 장악하고 진행에 임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 말만 들어도 힘들 것 같은데요?
"힘들죠(한숨). 그런데 이제 숙명으로 받아들여요. 일주일이 한 덩어리예요. 왜냐, 사건 사고가 제 출근 시간에 맞춰 터지고 퇴근 시간에 맞춰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그냥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최소 5일은 한 덩어리로 돌아가요.

밤에 TV 뉴스를 체크 하고 11시 정도 잠들어서 새벽 4시에 일어나는데 중간에 계속 깨요. 그리고는 옆에 있는 휴대폰을 보며 무슨 일이 또 터지지 않았나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몸은 피곤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피곤하다가도 '온에어' 빨간 불이 들어오면 정신이 번쩍 납니다. '온에어'가 각성제 같아요. "

 <김현정의 뉴스쇼>의 앵커 김현정 PD

<김현정의 뉴스쇼>의 앵커 김현정 PDⓒ 김현정 제공


"힘들어 떠났지만... 콩나물과 손편지 때문에 돌아와"

- 2010년과 2014년 등 두 번 자리를 비웠음에도 다시 돌아와서 앵커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청취자들의 사랑 때문인 것 같은데?
"첫 번째는 출산 후 휴직이었으니 논외로 하고 두 번째가 사실상 하차였죠. 완전 번아웃이 되어서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다짐하고 꿈에 그리던 음악 프로그램으로 떠난 거였어요. 그런데 콩나물과 손편지 때문에 돌아왔어요(웃음).

어느 날 음악 FM에서 신나게 음악을 틀고 있는데 엄청나게 큰 콩나물 박스가 왔어요. 보낸 분이 광주에 사시는 데 뭐라고 써 있냐면 '김현정 앵커 보고 싶습니다. 이 콩나물 먹고 힘내세요.'예요. 또 어느 날은 손편지 수십 통이 배달됐어요. 알고 보니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이 <뉴스쇼> 팬이셨던 거예요. 그 반 아이들에게 <뉴스쇼>를 들려주셨답니다. 제가 그만두자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함께 편지를 쓴 거예요. 그 편지가 한 통씩 한 통씩 오는 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 10년 전과 달리 아침 시사프로가 비슷한 게 많아서 힘들지 않나요? 차별화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게 있죠. 그러나 무시 못 하는 게 오래된 프로그램들이 갖는 '내공'이에요. 오래 들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전날 하루 종일 이슈가 됐던 사안은 틀림없이 다음 날 아침 <뉴스쇼>에 당사자가 나오고, 심지어 똑같은 주제를 다뤄도 <뉴스쇼>가 훨씬 팔딱거리는 인터뷰를 해내고요. 이런 내공이 <뉴스쇼>에 쌓여있습니다.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가던 길로 걸어가야 진짜 언론이라고 봅니다."

- 라디오 프로그램 중 청취율 1위가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잖아요. 동시간 대인데 어떠세요?
"어떤 분들은 <뉴스공장>이 시작된 다음 <뉴스쇼> 청취자를 빼앗기지 않았냐고 물어보시는데 전혀 아니에요. 놀랍게도 저희 청취율은 계속 오르고 있어요. 뉴스공장의 청취자는 기존 라디오 청취자가 아닌 팟캐스트에서 김어준씨를 좋아하던 분들이 라디오로 이동한 것으로 보여요. 평소 팟캐스트 청취층이 대거 라디오로 유입되면서 오히려 전체 라디오 청취풀이 넓어진 거죠. 완전 환영합니다. 그리고 자꾸 <뉴스공장>과 <뉴스쇼>를 경쟁 구도로 만들어 보시려고 기자들이 질문하시는데 그 프로그램과 저희 프로그램은 애초에 달라요. 청취자 취향에 따라 골라 들으시면 되는 거죠."

-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인한 촛불집회부터 지난달 열렸던 3차 남북 정상회담까지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 많은 일이 있었잖아요.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다 보니 매순간 이슈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하나는 세월호 참사죠. 그날 방송을 마치고 내려와서 후반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바로 옆 TV에서 배가 기울어진 장면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저는 그날을 더 잊을 수 없는 게, 우리가 배의 침몰 과정을 저렇게 또렷이 지켜보고 있는데 왜 구해낼 수가 없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미 그날 프로그램은 끝난 상태였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현장 연결을 시도하면서 생존자들의 육성 인터뷰를 남겨두었습니다. 지금도 각종 다큐나 보도에서 그날의 육성 인터뷰가 인용됩니다. 특히 구조되어 체육관에 온 학생이 친구가 배아래에서 살려달라는 걸 보며 구조정을 탔기 때문에 물 한 모금도 넘길 수가 없다는 얘기를 했던 게 너무 가슴 아팠어요."

- 하루에 최소한 3명씩 10년간 인터뷰를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무엇인가요?
"이희호 여사 인터뷰 생각납니다. 이 인터뷰는 하루 이틀 만에 성사된 게 아니라 저희가 몇 년을 졸랐어요. 건강이 안 좋으셔서 방송 인터뷰에 대한 부담이 있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찾아뵈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기력이 쇠하신 상태여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질문 준비를 많이 해갔는데 막상 뵈니까 준비한 게 하나도 소용이 없더군요. 그래서 제 할머니께 이야기할 때처럼 바싹 붙어서 귀에 대고 큰소리로 말씀 드렸어요. 그렇게 한 10여 분 힘겨운 인터뷰를 마친 뒤 꼭 껴안아 드렸습니다. 야윈 손으로 등을 토닥토닥 해주시는데 눈물이 울컥했습니다. 오래 건강하시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박창신 신부 인터뷰예요. 미사에서 박 대통령을 불법 선거로 만들어진 대통령이란 발언을 했다가 난리가 난 거예요. MBC, KBS 매인 뉴스 헤드라인에 오르고 모든 언론이 헤드라인으로 다루는 상황이었어요. 그 신부님의 정확한 워딩과 의도가 뭔지 알기 위해서 모든 언론이 달려들었는데 신부님은 한마디도 안 하는 상황. 저희는 주말 동안 수백 통 전화를 하고 월요일 아침 새벽, 마지막으로 전화 드렸더니 신부님께서 '<김현정의 뉴스쇼>처럼 지독하게 전화하는 데 처음 봤다'면서 하시겠다는 겁니다. 방송 첫 인터뷰이자 마지막 인터뷰를 저희와 하신 뒤 모든 언론이 그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죠.

그런데 이걸 가지고 방심위에서 무거운 징계를 줬죠. 특종상을 줘야 할 인터뷰에 벌을 주니 이해할 수 없었어요. 결국, 소송을 걸었고 대법원까지 가서 징계 무효를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방심위에서는 징계를 줬지만 PD 협회에서는 대상을 줬습니다. 그해 PD 대상에서 17년 만에 TV가 아닌 라디오가 전체 대상을 받는 쾌거도 이뤘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네요(웃음)."

- 유가족 인터뷰도 많이 하셨잖아요. 다른 진행자는 무미건조하게 인터뷰하는데 김 PD님은 눈물을 흘리는 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공감 능력이 있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 데 일부러 공감하려고 억지로 노력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천성이 감정이입이 잘 돼요. 사실 안 울려고 팔뚝도 엄청 꼬집곤 했어요. 인터뷰하고 나면 팔뚝을 너무 꼬집어서 파랗게 멍이 들 정도였죠. 그럼에도 눈물이 흐를 땐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슬픈 일 당한 사람을 보면 같이 눈물이 나고 화나는 일을 들으면 화가 나는데 진행자가 로봇이 아닌 이상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나 싶어요. 그래서 지금은 전보다 좀 더 자유롭게 제 감정을 놓아주려고 해요.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만 아니라면 말이죠."

 <김현정의 뉴스쇼>의 앵커 김현정 PD

<김현정의 뉴스쇼>의 앵커 김현정 PDⓒ 김현정 제공


"이희호 여사와 박창신 신부 인터뷰 잊을 수 없어"

- <뉴스쇼>에 코너가 있잖아요. 매 코너에 나오는 게스트와 케미가 잘 맞는 것 같은데 비결이 있을까요?
"케미가 안 맞으면 저와 못하시죠(웃음). 케미가 맞는 분들과 하니 잘 맞는 거고요. 무엇보다 전 저희 게스트들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매일 출연하는 김성완 평론가, 월요일에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 화요일에는 박용진-전여옥 콤비, 수요일에는 노영희-백성문 변호사, 목요일 탐정으로 빙의한 손수호 변호사, 금요일에는 정두언, 유인태 전 의원이 번갈아 나오시는데 모두 방송을 최고로 잘 하는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만 모아 놨기 때문에 믿고 마음껏 진행해 갈 수가 있습니다.

특히 정두언 전 의원이 한번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김현정씨와 얘기하다 보면 사석에서 차 한 잔 놓고 얘기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술술 다 털어놓게 된다. 끝나고 나오면서 내가 왜 그랬지?' 하실 때가 많다고요. 그렇게 해서 나온 게 '경천동지'이기도 하고요."

- 그만큼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신 거겠죠. 인터뷰어로부터 어떤 걸 끌어내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지잖아요?
"그럼요, 진행자는 자기 말이 중요한 게 아니고 고수 역할을 잘 해야 해요. 판소리 할 때 판소리 하는 사람이 신나게 자기 판을 벌일 수 있도록 '얼쑤' 해주는 사람이죠. 흥이 올라갈 때 흥을 더 돋우어 주고 다운돼 있을 때는 복돋아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진행자가 그 역할을 잘 해내면 100을 준비한 인터뷰이가 120을 털어놓고 가는 거죠."

-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
"모 의원과 인터뷰를 하는데 전화가 끊겼어요. 보통은 전화가 끊기면 1~2분 안에 다시 연결되는데 이날은 끝까지 연결이 안 되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 사무실에 불이 났던 일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네요."

- 김 PD님은 클로징 멘트보다 오프닝 멘트에 공들이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나요?
"아침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오프닝 멘트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께 '여러분, 밤사이 이런 일이 있었고 이걸 보셔야 해요'라고 콕 집어주는 족집게 과외 선생님 같은 역할이 필요하거든요. 물론 클로징까지도 멋있게 준비하고 싶은데 인터뷰 하다 보면 늘 시간에 쫓겨서 끝인사를 멋지게 할 시간이 없죠."

- 언론 상황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어떻게 느끼세요?
"훨씬 자유로워졌죠. 하지만 저는 과거 10년 동안도 할 말은 다 했어요. 다만 그 뒤에 징계가 따르느냐 괜찮냐 그 차이인 거죠. 얼마 전 방통위에서 주최하는 방송대상에서 상을 탔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여러 가지 상을 수도 없이 많이 탔는데 방통위에서 상 받은 건 처음이에요. 눈물이 날 뻔했어요. 진짜 달라진 거죠(웃음)."

-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려요.
"10년 동안 <뉴스쇼>를 키우는 데에는 저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많은 CBS PD와 기자 그리고 작가들이 함께했습니다. 사명감 하나로 일주일을 하루같이, 한 달을 일주일같이 보냈던 <뉴스쇼> 식구들, 그들을 기억해주시고요.

무엇보다 뉴스쇼가 열 살이 되도록 함께 목욕도 시켜 주시고, 밥도 먹여 주시고, 공부도 시켜 주시고, 옷도 입혀 주신 우리 청취자들께 감사드립니다. <뉴스쇼>는 유독 오래된 청취자가 많습니다. 그분들도 <뉴스쇼>의 열 살을 대견해하고 기뻐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계속하겠습니다'라고 자만은 못 하지만 힘이 닿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만큼은 분명히 드리지요. 내일 아침도 <김현정의 뉴스쇼>는 #1212 문자 열어놓고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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