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스페셜'의 한 장면.

'SBS 스페셜'의 한 장면.ⓒ SBS


결혼하자 시어머님이 말씀하셨다. 그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젊은 나는 그런 시어머니의 말씀을 콧등으로 넘기며 '아이를 낳자마자 맡기고 제 일을 찾을 거예요'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자 난 시어머니의 말씀대로 아이를 키웠다.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분(곳)이 없을 뿐더러,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그 '지상 명제'를 이겨낼 만큼 '내 일'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아이도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다 보니, 지금 여기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내가 그런 고민을 했던 시절에서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다. 그런데, 그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도록 여전히 '엄마'들의 고민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더 '가중'되었다. 그러니 '화'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지난 13일 방영된, < SBS 스페셜> '앵그리맘'의 이야기다.

'맘고리즘'에 갇힌 엄마들

알고리즘이란 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 단계, 혹은 그를 위한 프로그램을 뜻한다. 그런데, 이 알고리즘의 변형어인 '맘고리즘'은 문제 해결은커녕, 거기에 빠져들어 가면 헤어나올 길이 없다. 바로 이 땅의 '엄마'들 이야기다.

다큐멘터리의 시작은 SBS 시사 교양국의 한 여성 피디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피디는 SBS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여성? 아니다, 시사 교양국의 여성? 역시 아니다. 이 여성 피디가 독보적인 이유는, 피디인 여성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아이 낳기를 권하는 세상'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게 신기원이 되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정시 퇴근은 남의 나라 이야기, 야근과 밤샘을 밥 먹듯이 하는 등 이른바 '언론계의 명예직'이라 일컬어지는 여성 피디 아닌가. 그가 아이까지 낳은 건, 용감무쌍함을 넘어선 행동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여성 피디만이 아니다. 이 시대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 그 자체가 이른바 '무식하면 용감해지는' 것이다. 흔히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 힘들다 하면, 이미 출산을 경험한 선배들의 따끔한 조언이 있다. 그래도 배 속에 있을 때가 편한 거라고. 뒤로 자빠질 듯한 태산 같은 배, 퉁퉁 부은 다리로 변비에 메스꺼움 등등으로 밤잠을 설쳐도, 그 시절이 편했다는 건 아이를 낳는 순간 모든 엄마가 절감하기 시작한다.

직장을 가졌던 엄마들이 온전히 떠맡아서 하는 독박 육아. 제아무리 부부가 나누고 싶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 자기 일을 위해서는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돌보미 등등을 전전하는 수난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잠시 직장을 쉬고 아이를 키우면? 돌아갈 직장의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저 새 생명이 오시는 경이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아기와의 전쟁. 하지만 자기 일을 하던 엄마들은 그 버거운 전쟁에 '엎친 데 엎친 격'의 미래를 떠안게 된다.

 '맘고리즘'의 알고리즘.

'맘고리즘'의 알고리즘.ⓒ SBS


2018년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힘겨운 일생은 위의 그림 한 장으로 설명된다. 한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일 수밖에 없다. 도망갈 수도, 도망쳐서도 안 되는 '엄마'의 일생은 출산→육아→직장→부모에게 돌봄 위탁→퇴사→경력단절→자녀 결혼→손자 출산→황혼 육아…. 끝나지 않는 육아와의 전쟁이 된다. 50여 명 부모와 인터뷰에 따르면, 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하여 고비마다 '엄마'란 이유만으로 소모되고 탈진한다. 그리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일에서 '방출'되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시대 엄마들이 '화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누적된다.

126조 원의 저출산 대책 비용은 어디로?

ⓒ SBS


엄마들은 반문한다. 정부는 지난 12년 동안 저출산 대책으로 126조 원을 쏟아부었는데, 도대체 그 '돈'이 어디로 갔느냐고. 도대체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기에 '엄마'들은 여전히 '맘고리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어야 하냐고. 차라리 허경영이 말했듯이 출산 장려금으로 3000만 원씩이라도 나눠 받았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래서 SBS는 지난 12년간의 저출산 중앙 예산과 지자체 예산을 샅샅이 살펴봤다. 저출산과 관련된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저출산' 법안의 실질적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저출산 대책 홍보라는 것이 지자체 기관장들의 자기 홍보 영상이기 십상이다. 또 저출산 대책 홍보 가요제라는데, 차마 그 영상을 마저 보기 힘들 정도로 낯뜨겁다. '아이를 낳자'는 단순한 슬로건을 개사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시늉이라도 하면 다행이랄까. 현장에서 '저출산 대책 비용'은 생일맞이 직원-청장과의 간담회, 오카리나 교실, 흡연 음주 예방 사업, 템플 스테이 여가 문화 지원 사업, 말 그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갖다 붙이면 저출산 대책으로 '비용'을 잡아먹었다. 지자체 직원은 솔직히 토로한다. 중앙에서는 '저출산' 관련 예산을 집행하라 하고, 지자체에서는 당장 시행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적당하게 취지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결국, 그 126조원이 지난 12년간 이런 식으로 '공중분해'되었다.

엄마들이 나섰다, 정치하는 엄마들

그래서 엄마들이 나섰다. 더는 '엄마'를 위하는 척을 하는 정치를 믿을 수 없다며 '엄마들의 목소리'를 직접 실천에 옮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시작은 전직 국회의원 장하나이다. 국회의원 시절 아이를 출산했던 장하나 전 의원은 아이를 낳고도 그 사실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뼈아픈 경험을 일간지에 칼럼으로 실었다. 그리고 이 칼럼에 공감했던 엄마들이 모였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니 하나같이 모두 자신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엄마들은 이제 더는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이 사회에서 밀쳐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다. 그리고 그 '각오'의 실천으로 비영리 단체인 '정치하는 엄마들'을 만들었다.

엄마들이 정치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 가능성을 다큐멘터리는 뉴질랜드 국회에서 찾아보았다. 아이를 낳고 국회에서 당당하게 수유를 하고, 아이를 안고 국회 연단에 서는 국회의원. 그게 현 뉴질랜드 국회의 모습이다. 어디 그뿐인가. 최연소 여성 수상으로 당선된 재신더 아더는 기쁘게 임신 소식을 알렸고, 자신이 아이의 출산과 함께 6개월간의 출산 휴가를 가지게 될 것이라 공표했다. 뉴질랜드라고 처음부터 그랬겠는가. 하지만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심각해지자 사회가 바뀐 것이다. 국회의장이 솔선수범하여 동료 의원의 아이를 안고 의장석에 앉았고, 아이를 가진 엄마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당당하게 아이와 함께 등원했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말한다. 우리 사회 질기고 질긴 '맘고리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그리고 우리가 지난 촛불 정국에 다 같이 입을 모아 말했듯이,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여성, 그리고 '엄마'들의 문제에도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당사자'인 엄마들이 나섰다. 우리가 스스로 '정치'를 바꾸겠다고.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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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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