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태오.

배우 유태오가 칸영화제 현지에서 <레토>로 주목받고 있다.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독일 국적을 가진 그는 미국과 영국으로 건너가 연기의 바다에 빠진다. 뉴욕 체류 시절 한 영화제에서 이재용 감독 눈에 띄어 <여배우들>(2009)로 한국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할리우드 영화 <이퀄스>, 태국과 베트남 영화를 경험하다가 자신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제71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레토>로 전 세계 관객과 만나고 있는 배우 유태오(37)다.

약 9개월 만이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전설의 록스타 빅토르 최 이야기를 그린 영화 <레토> 촬영이 한창일 때 연출을 맡은 세레브네리코프 감독이 석연찮은 이유로 가택 구금을 당했다는 소식에 그를 접촉했다. 칸 영화제 진출 전이었다. 데뷔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 생소한 배우였던 그가 2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빅토르 최를 맡았다는 사실은 그만큼 주목받을 가치가 있었다.

편견을 깨다

그때만 해도 지금의 주목도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71회 칸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공식 상영 이후 세계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귀국 일정을 늦추면서까지 그는 일일이 취재에 응하고 있었다. 13일 팔레 드 페스티벌 내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1980년대 러시아 록을 대표한 빅토르 최와의 첫 만남부터 물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라며 그가 오디션 과정을 전했다.

"스타니슬랍스키라는 내추럴 연기의 창시자가 있는 러시아다. 마치 한국에 온 외국인이 판소리로 인정받는 것처럼 어려운 도전이라 생각했다. 캐스팅 된 후 감독님이 대사를 영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외워야 한다고 알려주시더라. 사실 두려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연기자는 단순 일꾼이자, 악기라고 생각한다. 아티스트(감독)가 표현하고 싶은 감성을 표현해 주는 악기 말이다. 정보를 뒤늦게 전달받았다고 짜증낼 수 없는 일이지.

제가 존경하는 배우 중 아사노 타다노부가 있다. 부산영화제에서 만난 이후 제가 선배라고 부른다. 혼란에 빠질 때 도움을 구하곤 하는데 그가 러시아어 연기 경험이 있어서 이것저것 물었다. 특히 1990년대는 지금처럼 통신환경이 좋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정보를 얻었고, 공부했는지 참 궁금했다. 약간 선문답 같지만 '모든 영화는 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야'라고 하더라. 맞는 말이었다. 연기만 놓고 보면 문화 차이는 없어 보인다. 오직 시네마 문화만이 있을 뿐이다. 제가 맡은 역할을 준비하면서 그 현장을 이해하고 정으로 감싸면서 임하면 된다. 어렵고 열악하다고 짜증낼 필요는 없지."

구소련, 위축된 표현의 자유의 시절에 음악으로 저항한 음유시인을 두고 유태오는 세밀하게 준비했다. 독일 국적이었던 그가 여러 유럽 문화를 경험하고 한국 국적자로 살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내면에 자리 잡은 어떤 감성이 있다. 이를 두고 그는 '정체성 혼란으로 생긴 멜랑콜리(우울감)'라고 표현했다.

"어린 시절의 빅토르 최와 어린 시절의 제가 맞아떨어진 것이지. 백인 문화권에서 태어나 예술 활동을 하는 한국인으로서 말이다. 그래서 운이 좋았다고 말한 것이다. 저는 일종의 회색지대에 있다. 한류가 한창일 때 한국 톱스타는 쓰기에 비싸고, 전 그 정도의 지명도는 없지만 영어를 하고,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은 있으니 다양한 나라에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교포 출신 배우라는 낙인이 찍히곤 했는데 잘 생각해보면 외국에선 제가 한국을 대표한다. 한국에선 교포 출신으로 불린다면 해외 작업에선 또 제가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일단 그 편견을 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영화 '레토' 포스터

영화 '레토' 포스터 ⓒ HYPE FILM


노력의 반복

그런 이유로 러시아 스태프들과 작업에서 그는 언어 장벽이 있었지만 대사를 문장과 단어 단위로 나눠 하나하나 소리를 외워갔다. 감독은 영화에서 빅토르 최의 노래 1곡만 불러도 좋다고 했지만 유태오 스스로 자처해 9곡을 소화해냈다. '괴물 같은 집중력'이라는 말에 그는 "제가 스스로를 잘 안다. 집중력이 없어서 책도 잘 못 읽는다"며 "그만큼 시간을 더 내서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10분 연습하고 좀 쉬다가 또 10분 정도 하는 식이었다. 1시간을 투자한다면 30분 연습하는 것이고, 그게 쌓이면 일주일, 한 달 이렇게 되지 않나.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영어를 못했다. 그냥 부딪히면서 한 것이다. 이번 작품에선 함께 호흡을 맞춘 이리나(나타샤 역)는 영어를 할 줄 알았고 로만(빅토르 최에게 영향을 준 록스타 마이크 역)은 통역을 붙여서 소통했다. 

로만은 이번 영화로 첫 연기자 데뷔였는데 사실 러시아에선 유명한 록스타다. 음악만으로 부자가 된...(웃음) 제가 연기자로선 선배지만, 음악적으로는 로만이 선배다. <레토> 속 빅토르 최와 마이크의 관계와 비슷하더라. 실제 우리 관계에서 느낀 감정을 연기로 끌고 오기도 했다. 감독님도 그걸 강조했다. 

사실 현재 시대가 되게 시니컬(냉소적) 한 시대잖나. 뭔가에 대해 빨리 평가하려 하고, 이해 역시 빨리 하려 한다. 구소련 시절 청춘이 지금과 달랐던 건 소통을 관대하게 했다는 점이다. 쉽게 비난하거나 이상한 낙인을 찍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영화에서 빅토르와 나타샤 사이 묘한 기류가 흐르지만 누구도 그걸 섣불리 판단하지 않듯 말이다." 

책임감 

음악 얘길 안 할 수 없었다. 영화에선 AC/DC, 비틀즈, 데이비드 보위 등 영미권을 호령한 록스타들 이야기도 나온다. 이제 막 구소련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록 스피릿과 빅토르 최를 유태오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실존인물이니 일단 최대한 잘 표현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마이크를 연기한 로만이 '촬영이 끝나면 넌 러시아를 떠나지만 난 남아 있어야 하기에 더 무섭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두 인물이 러시아에서 절대적인 위치라는 뜻이다. 수억의 러시아 인구만큼 사람들은 저마다의 빅토르 최를 마음에 품고 있을 텐데 그를 표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마어마했지. 다행히도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한 이후 러시아 기자 분들이 제게 너무 잘 표현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 제가 더 오히려 고맙다고 했었다. (웃음)

빅토르 최의 등장은 외부 요인과 내부 요인이 있다고 본다. 제 개인적인 해석임을 미리 말씀드린다. 우선 그가 한국인이다 보니 가정교육이 러시아와는 달랐을 것 같다. 가사에 담긴 감수성과 상징성은 아마 그런 데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그리고 외부 요인으론 팝 컬쳐의 발전 단계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앤디 워홀 이후 영국 등에선 1960년대에 이미 팝 컬쳐가 생겼는데 러시아에 마침 그 시작 시기였고, 빅토르 최의 등장과 딱 맞아 떨어진 것이지."

평소 유태오도 음악을 좋아하며 직접 기타를 치며 작곡을 하기도 한다. "세대가 다양하고 저마다 음식 취향이 다른 만큼 음악 장르도 한 번 생기면 없어지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힙합에서 집시 음악까지 깊고 넓은 그의 음악 취향을 살짝 공개했다.

"집시 음악이 대체로 슬프다. 마이너 코드를 많이 쓰는데 그게 한국 음악으로는 뽕짝의 느낌이 살짝 난다. 제 음악 취향은 이난영이다. 공옥진도 좋아하고 성재희씨, 산울림도 좋아한다."

 배우 유태오.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특별한 욕심

그의 목표는 단순하다. "배우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한국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과 욕심이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교포 분들은 보통 생활이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겪으면 한국으로 돌아갈 옵션이 있잖나. 저는 결혼(유태오는 20대 후반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기자 주) 이후 연기 외에 다른 걸 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제가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겪었다면 뭘 하면서 컸을까.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에 온 지 10년째인데 처음엔 물론 힘들었다. 먹고 사는 문제서부터 말이다. 독일은 복지 시스템이 잘 돼 있다. 자기가 낸 세금이 다시 돌아오거든. 한국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보니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되더라. 

'이게 우리나라구나' 느끼면서 제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었다. 물론 생활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발견이 좋았다. 제 성격을 제가 안다. 만약 20대에 제가 소위 떴다면 오만한 사람이 됐을 것이다. 지금 제 나이가 되는 과정이 제 인생에선 필요했던 것 같다. 와이프도 어렸을 때의 절 많이 혼냈다(웃음)." 

여기에 더해 그는 구금된 감독과 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해 말을 이었다. "어떤 시대이건 문화이건 간에 억압이 강해도 마치 김이 새어나오듯 창작과 자유의 열정으로 살아갈 젊은이들이 존재한다"며 그는 "권력의 억압은 항상 있겠지만 관객은 어쨌든 그 새어나오는 김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 말했다.

칸에서 주목받는다고 그의 인생이 마냥 쉽게 풀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물론 상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지금은 있지만 그것보다는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 유태오.

배우 유태오.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남우주연상 이런 것 전혀 기대하지 않지만 작품은 그 자체로 집중 받았으면 좋겠다. 스태프 분들과 함께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 있으면 줗겠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출발선에 서야하는 그다. "작품 제안이 없으면 오디션을 보러 다닐 것이고, 연기 코치 분들과 함께 수업을 받을 것이다"라며 호기롭게 말했다.

"미국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은 배우들도 작품이 끝나면 코치와 함께 연기 훈련을 한다. 그게 기본이다. 올림픽에서 메달 땄다고 이듬해에 훈련을 안 하는 게 아니잖나. 내 일에 성실하고 싶다. 그동안 이뤄낸 것들이 얼마나 빨리 모조리 없어질 수 있는지를 알고 있기에 꾸준히 열심히 하려 한다. 사실 2006년에 한 장편영화에서 테러리스트로 단역 출연한 바 있다. 그로부터 십년 이상이 지났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다."

배우 유태오의 연기론의 정수였다. <레토>를 통해 그는 분명 좋은 배우로 거듭날 가능성이 크다.

유태오 레토 칸영화제 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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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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