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 말

참, 심심할 틈이 없는 세상이다. 매체에서는 연일 다양한 정보, 신 나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안내하고 도시의 풍경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생기와 활력으로 가득한 것 같은 세상. 그런데 어쩐지 마음엔 공허감이 더 커져만 간다.

빈틈없이 채워진 환경 속에서 점점 더 외로워지고, 정보는 쏟아지지만 선택할 수 없어 헤매는 우리들. 지난해 말 발표된 DEAN의 'instagram(작사 Deanfluenza 작곡 Deanfluenza, highhopes)'은 정보화시대에 보편적으로 겪는 심리적 어려움을 잘 표현한 곡이다.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이유

 DEAN 노래 instagram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DEAN 노래 instagram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유니버설뮤직


'내일이 올 걸 아는데 난 핸드폰을 놓지 못해'

DEAN은 이렇게 노래를 시작한다. 이제 자야지 하면서도 계속 인스타그램에 빠져들고, 빠져들수록 '잠은 올 생각이' 없어진다. 그리고 '다시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피곤한 아침을 맞는다. 왜 우리는 SNS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외'를 견디지 못해서이다. 실존주의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겪는 소외를 개인내적 소외, 대인 관계적 소외, 실존적 소외 세 가지로 구분한다. 개인내적 소외는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아 자신의 내면과 연결되어 있지 않는 것이며, 대인 관계적 소외란 타인과의 연결감을 느끼지 못하는 외로운 상태를 말한다. 실존적 소외는 연결을 원하지만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에서 발생하는 근원적인 소외를 말한다.

현대 사회는 위의 세 가지 소외를 모두 조장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느라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인식하고 성찰할 시간을 갖지 못하며(개인적 소외), 바쁜 생활 속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다져갈 여유도 없다(대인 관계적 소외).

이 두 가지 소외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인간의 근본적인 조건인 실존적 소외를 겪어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때문에 현대인들은 심심할 틈 없는 세상 속에서 더 외롭고, 더 소외되었다고 느낀다. 이런 소외감에서 벗어나 세상 및 다른 사람들과 연결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SNS를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달래는 것이다.

'나만 이런 것 같은' 심리

그런데 연결감을 찾아 인스타그램을 하던 DEAN은 다음 소절에서 갑작스레 이렇게 푸념한다.

'잘 난 사람 많고 많지'

SNS에 접속하면 일단은 안도감이 든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 지인들의 사진을 보며 댓글을 남기고, 내 사진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잠시 연결감을 느낀다. 그런데 계속 사진을 들여다보니 자꾸만 내가 작아진다. '누군 어디를 놀러갔다'는데 나만 놀러 다니지도 못하는 것 같다. DEAN이 '좋아요는 안 눌렀어 나만 이런 것 같아서'라고 노래하듯, 남과 비교가 되면서 내 자신이 자꾸 초라해진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이는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의 속성 자체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표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이를 통해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인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경쟁을 유도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욕구가 잘 충족되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들은 SNS를 통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어 한다. SNS에 나의 제일 좋은 모습,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좋아요'를 받으면서 인정욕구를 충족해 가는 것이다. 남들의 잘 나가는 사진들만 보고 있자니, 나 자신이 초라해지고 괜한 열등감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아는 게 더 괴로운' 정보화 시대

 '내일이 올 걸 아는데 난 핸드폰을 놓지 못해'

'내일이 올 걸 아는데 난 핸드폰을 놓지 못해'ⓒ 픽사베이


밤 잠 설치며 SNS 세상을 탐험하다보면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모두들 비슷한 사랑노래를 부르며 유행을 따르는데 왠지 나만 뒤쳐진 것 같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따라하려 하면 어느새 또 변해 있다. '똑같은 사랑노래가 와 닿지 못'하면서 동시에 '틈만 나면 바뀌는 것'들이 복잡하기만 하다. 그래서 DEAN은 '문제야 문제' '관둘래 이놈의 정보화시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불만을 토로한다.

게다가 쏟아지는 정보들은 얼마나 많은가. '요즘은 아는 게 더 괴로울 것 같은데 가면 갈수록 너무 어려워'라는 DEAN의 호소처럼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결정을 방해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해야 할 정보들이 너무 많을 때 사람들은 더 안 좋은 선택을 하거나 심지어 결정을 포기하게 됨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를 '선택의 역설'이라고 명명했다. 이렇듯,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는 요즘 손쉽게 정보를 접하면서도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것은 당연한 심리다. '가면 갈수록 너무 어려워 나만 이런 건지'라는 DEAN의 고민은 우리 모두의 고민인 것이다.

'내 맘의 구멍'을 버텨내기

이렇게 밤새 SNS 속을 헤매며 연결감을 추구하지만, 결국 도달하는 건 '내 맘에는 구멍이 있어'라는 깨달음이다. '그건 뭘로도 못 채우는 것' 즉, 공허감이다. 공허감은 외로움이나 슬픔 같은 단어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난 가라앉는 중인 걸 네모난 바다 속에서'라는 DEAN의 표현처럼 텅 빈 것 같으면서도 무거운, 견디기 힘든 기분이다. 

공허감은 앞에 설명한 실존주의 심리학에서의 소외 중 실존적 소외에 가까울 것이다. 아무리 연결하려고 발버둥 쳐도 결국은 나는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정호승 시인의 싯구처럼 사람이면 거부할 수 없는 그런 소외감이다. 이런 실존적 소외는 벗어나려고 애쓰기보다는 인간의 조건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과 같은 것이다.

실존적 소외는 진짜 나의 모습과 보여 지는 나의 모습 사이에 간격이 클 때 더 크게 느껴진다. SNS 속에서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고 싶은 나의 모습을 표현한다. 즉, 진짜 나와는 거리감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SNS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공허감은 더 커지고, 이 느낌에서 벗어나고자 다시 SNS를 한다. '그렇게 시간 낭비를 하네'라는 가사처럼 시간 낭비인 줄 알면서도 인스타그램을 계속하게 되는 건 바로 이래서다.

'사진 뒤에 가려진 내 마음' 알아주기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연결감이 포장된 나의 모습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형식적인 인정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DEAN이 노래하듯,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부질없이 올려놓은 사진 뒤에 가려진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와의 친밀감일 것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정보화시대에서 가려진 나의 진심을 알아줄 누군가를 찾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DEAN은 '아는 이 없네'라고 한탄한다.

그런데 노래 속 '아는 이'가 내가 되어보면 어떨까. 나 스스로 '잘 보이고 싶은 나'와 '진짜 나' 사이의 간극을 줄여가는 것이다. 내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 모두를 내가 나를 알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잘 보이고 싶은 욕구를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내가 되고 싶은 욕구'로 바꾸어 생각해보자. 이렇게 생각하면, 한계 속에서도 보다 나은 모습을 위해 노력하는 지금 여기서의 나를 내가 인정해줄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인정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써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보다 진솔한 마음이 담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럴 때 SNS는 열등감을 자극하기보다 연결감을 선사하는 도구가 될 것이며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들 역시 많아질 것이다. 나아가 '이 놈의 정보화 시대'에 실존적 소외를 버텨나갈 힘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인스타그램
내일이 올 걸 아는데
난 핸드폰을 놓지 못해
잠은 올 생각이 없대 yeah
다시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하네
잘 난 사람 많고 많지
누군 어디를 놀러 갔다지
좋아요는 안 눌렀어
나만 이런 것 같아서
저기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속엔
문제야 문제
온 세상 속에
똑같은 사랑노래가
와 닿지 못해
나의 밤 속엔
생각이 너무 많네
복잡해
틈만 나면 바뀌는 게
관둘래
이 놈의 정보화 시대
단단히 잘못 됐어
요즘은 아는게 더
괴로운 것 같은데
(중략)
그렇게 시간 낭비를 하네
인스타그램 속에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신문기자로 세상을 관찰하며 살다, 지금은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체가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며, '생명감수성'과 '마음의 성장'을 일상과 문화콘텐츠를 통해 공유하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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