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를 비롯한 거의 모든 격투기 대회에서는 메인 이벤트에 출전하는 두 선수를 중심으로 포스터가 제작된다. 그리고 코메인이벤트에 출전하는 두 선수의 작은 사진이 한 켠에 등장해 격투 팬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가끔 절대적인 존재감을 가진 극강의 챔피언이 출전하거나 오랜 기간 공백이 있었던 슈퍼스타가 컴백할 때는 단독 포스터가 제작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오는 13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우네세 아레나에서 열리는 UFC 224대회의 공식 포스터는 조금 독특하다. 메인이벤트에서 여성 밴텀급 타이틀전을 치르는 아만다 누네즈와 라켈 페닝턴은 가장 높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코메인이벤트에 나서는 호나우도 '자카레' 소우자와 켈빈 가스텔럼은 포스터의 1/4밖에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대회가 열리는 장소가 브라질이다 보니 메인카드 첫 경기에 출전하는 브라질 국적 파이터인 '광속 펀처' 비토 벨포트와 '더 드래곤' 료토 마치다가 포스터의 한 부분을 차지한 것이다. 격투 팬들 입장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베테랑 파이터들의 대결을 보는 것이 대단히 반가운 일이지만 정작 선수들에겐 매우 긴장되는 경기가 아닐 수 없다. 경기 결과에 따라 패한 쪽은 체급 내 입지가 완전히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년7개월 동안 두 체급 타이틀에 도전했던 '광속펀처'

 벨포트는 은퇴가 임박했음에도 여전히 미들급 공식 랭킹 9위에 올라 있다.

벨포트는 은퇴가 임박했음에도 여전히 미들급 공식 랭킹 9위에 올라 있다. ⓒ UFC.com 화면 캡처


1990년대 후반부터 UFC에서 활약했던 벨포트는 탱크 애봇, 히스 해링, 랜디 커투어, 척 리델처럼 자료 화면에나 등장할 법한 추억의 파이터들과 경쟁했던 선수다. 특히 1998년 10월 UFC 브라질 대회에서는 '도끼 살인마' 반더레이 실바를 44초 만에 엄청난 펀치 연타로 KO 시키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4년 1월에는 커투어를 꺾고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다.

일본과 미국, 영국 등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가던 벨포트는 2011년 2월 미들급의 지배자였던 '스파이더' 앤더슨 실바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벨포트는 당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실바에게 앞차기에 이은 파운딩 연타를 맞고 1라운드 KO로 패했다. 이후 추성훈과 앤서니 존슨을 각각 KO와 서브미션으로 꺾은 벨포트는 2012년 9월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존 존스에게 도전장을 던졌지만 4라운드 서브미션으로 무너졌다.

두 번의 타이틀전 패배에도 벨포트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마이클 비스핑, 루크 락홀드, 댄 핸더슨을 각각 KO로 제압하며 미들급 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2015년 무패의 챔피언이었던 크리스 와이드먼을 만나 1라운드 KO로 무너졌고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슬럼프가 찾아왔다. 벨포트는 2016년5월 소우자전에서 그라운드를 경계하다가 KO로 무너졌고 10월에는 게가드 무사시에게 장기였던 타격에서 커다란 격차를 보이며 2라운드 KO로 패했다.

벨포트는 지난해 3월 1991년생의 신예 가스텔럼을 상대로 또 한 번 1라운드 KO패를 당했다. 파이터 데뷔 후 최초의 3연속 KO패 굴욕이었다. 경기 후 가스텔럼의 마리화나 복용이 적발되며 경기가 취소됐지만 가스텔럼전 취소가 벨포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진 못했다. 벨포트는 작년 6월 브라질 대회에서 네이트 마쿼트를 판정으로 꺾으며 간신히 연패에서 탈출했지만 전성기 시절의 폭발적인 타격은 볼 수 없었다.

이미 여러 차례 은퇴 의사를 밝힌 만큼 마치다전은 벨포트의 은퇴 경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1974년생 마크 헌트가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만큼 벨포트 역시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출신의 마치다를 상대로 인상적인 승리를 거둔다면 마음이 바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초반 러시에 장점이 있는 벨포트가 1라운드부터 마치다를 몰아붙인다면 충분히 좋은 경기를 펼치면서 승리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상대가 얼굴을 건드리기도 힘들었던 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이번 대결에서 패하는 선수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은퇴설에 휘말릴 것이다.

이번 대결에서 패하는 선수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은퇴설에 휘말릴 것이다. ⓒ UFC.com


마치다의 공식 닉네임은 '더 드래곤'이지만 마치다가 UFC의 무패 챔피언으로 군림하던 2000년대 후반, 국내 격투 팬들은 마치다를 '용안 파이터'로 불렀다. 레슬링, 유도, 주짓수 등 엘리트 스포츠 출신의 파이터들이 모여 싸우던 UFC에서 마치다는 홀로 '은둔의 고수' 느낌을 풍기는 무도가의 이미지가 강했다. 특히 2009년 5월 '무패 챔피언'끼리의 격돌로 화제를 모은 라샤드 에반스전 KO승은 마치다에게 절대 강자라는 이미지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마치다는 마우리시오 '쇼군' 후아와의 2차 방어전에서 1라운드 KO로 패하며 무패 기록이 깨졌고 퀸튼 잭슨, 존 존스, 필 데이비스에게 패하며 강자의 이미지가 퇴색됐다. 필 데이비스전 패배 이후 마치다는 자신의 체격적 우위를 살리기 위해 미들급으로의 감량을 단행했다. 미들급 전향 후 마크 무뇨즈와 게가드 무사시를 차례로 꺾고 타이틀 도전권을 따낼 때만 해도 금방 마치다의 시대가 다시 열릴 거 같았다.

하지만 마치다는 2014년 7월에 열린 와이드먼과의 미들급 타이틀전에서 레슬러 출신의 와이드먼을 상대로 타격에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다가 경기 후반 체력까지 떨어지면서 판정으로 패했다. 같은 해 12월 브라질 대회에서 C.B.달러웨이를 경기 시작 1분 만에 KO로 꺾고 다시 기세를 올렸지만 이는 마치다의 기나긴 슬럼프를 앞둔 '마지막 축제'였다.

마치다는 2015년 락홀드와 요엘 로메로에게 각각 서브미션과 KO로 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설상가상으로 2016년에는 금지약물사용이 적발돼 18개월 출전정지 징계를 받으며 '고독한 무도가'로서의 이미지가 완전히 실추됐다. 작년 10월 데릭 브런슨과의 재기전에서도 1라운드 KO로 무너진 마치다는 지난 2월 신예 에릭 앤더스와의 대결에서 2-1 판정으로 간신히 승리하며 3연패를 끊었다.

내심 마이클 비스핑과의 대결을 바랐던 마치다의 상대는 벨포트로 정해졌다. 두 선수의 나이는 비슷하지만 전성기를 보낸 시기도 달랐고 국적이 같아 좀처럼 맞붙을 기회가 없었다. 마치다는 은퇴를 앞둔 벨포트를 상대로 가볍게 1승을 추가하겠다는 생각이다. 벨포트와 마치다는 친분 여부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이 경기는 한국으로 치면 김동현과 추성훈이 서울대회에서 맞붙는 것과 다름없다. 두 레전드의 얼굴이 대회 공식 포스터에 들어가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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