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우뚝 바로 섰다. 이 광경을 목포신항에서 두 눈 뜨고 지켜보던 유가족들도, 생중계 화면을 통해 목도했던 국민들도 가슴 졸이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참사 후 네 번의 봄을 더 맞고서야 직립이 가능했다. 4년하고 24일째다. 만감이 교차할 따름이다. 그렇게, 10일 오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세월호가 4시간여 끝에 완전에 가까운 직립에 성공했다.

이날, 만감이 교차했을 사람은 또 있었다. 최승호 MBC 사장이다. 하루 전인 9일, MBC 예능인 <전지적 참견 시점>(아래 <전참시>)가 지난 5일 방송분에 세월호 참사 당일 뉴스 특보 장면을 사용해 논란이 커진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며 사태 수습에 나섰던 신임 최승호 사장. 그는 10일까지 연이틀 동안 사과와 재발 방지책을 공식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저희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일어난 사안을 제대로 조사해 밝히기 위해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꾸릴 예정입니다. 내부 구성원만으로 조사를 해서는 세월호 희생자 유족과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형태의 조사위는 MBC 역사상 처음입니다. 그만큼 이 사안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안으로 충격과 상처를 받은 출연자들, 특히 이영자님에게도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영자님은 누구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안타까워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분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당했으니 그 충격과 아픔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이런 형태의 조사위는 MBC 역사상 처음입니다"

 17일 오후 출입기자들과 간담회 자리를 가진 최승호 MBC 신임 사장.

지난 1월 17일 오후 출입기자들과 간담회 자리를 가진 최승호 MBC 신임 사장. ⓒ MBC


이미 여러 지적과 비판이 있었다. MBC의 과거 세월호 오보를 질타(관련기사 : 이영자 어묵 먹방에 세월호 침몰 합성... "개념없는 MBC")하고, 제작진이 내놓은 사과와 해명의 진정성을 따지고 고의성을 제기하는 의견도 나왔으며(관련기사 : MBC '전참시' 세월호 참사 합성 논란, 왜 '고의'로 보일까), 논란 이후 녹화 중단을 선언한 이영자의 충격을 헤아리고 보듬는 글(관련기사 : 용서 못할 '전참시', 그러나 이영자는 아무 잘못이 없다)까지 모두 수긍할 만 해 보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바로 달라진 MBC의 대응이다. 최승호 사장은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MBC 역사상 처음"이라고도 했다. 최 사장은 "MBC정상화가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더 확실히 개혁해서 국민의 마음 속에 들어가라는 명령으로 알고 힘을 내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신뢰성 면에서 MBC <뉴스데스크>의 회복세는 뚜렷해 보인다. 주진우 기자와 손잡은 <스트레이트>는 이제는 구속된 MB 저격에 이어 꾸준하게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을 겨냥 중이다. 시의성 있는 아이템으로 신뢰를 회복 중인 < PD수첩 >에 이어 < MBC 스페셜 >도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

예능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무한도전>은 떠났지만 <나혼자 산다>가 승승장구 중인 이때, 이영자와 송은이 등의 활약으로 또 하나의 킬러 콘텐츠로 급부상 중이었던 <전참시>의 어처구니없는 합성 논란은 MBC로서는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망가졌던 MBC가 명백한 오보를 내보냈던 세월호 참사 당일 보도 화면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최승호 사장도, MBC 구성원들도, 시청자도 공분하고 공감할 수 없는 반윤리적 방송 참사로 남을 만한 사안이다. 불과 얼마 전 <스트레이트>를 통해 박근혜 정권 당시 일베의 '폭식 투쟁'의 배후가 삼성과 전경련, 국정원이었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던 그 MBC라면 말이다. "MBC 역사상 처음"이라는 조사위원회의 활약을 세월호의 직립만큼이나 두 눈 부릅뜨고 지켜야 할 이유는 비단 MBC 만의 사태 수습으로 국한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참시> 사태는 예견된 참사?

 '전지적 참견시점'에 사용된 CG 처리 화면과 원래 뉴스 화면 비교 (방송화면 캡쳐)

'전지적 참견시점'에 사용된 CG 처리 화면과 원래 뉴스 화면 비교 (방송화면 캡쳐) ⓒ MBC


10일 <연합뉴스>는 <'전참시' 사태로 본 방송화면 사고 이력과 원인>이라는 기사를 통해 '일베 로고'등 이번 사고와 엇비슷한 기존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기사의 부제로 '"촬영-편집 동시진행하며 방대한 자료 검색" 예견된 사고'라는 내용을 언급했다.

이 기사는 "그러나 시청자 입장에서도 '실수'로 보일만 한 사례들의 경우 빠듯한 제작 일정과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방대한 자료들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며 "늘 사고 위험을 감수하고 제작한다는 뜻"이라며 열악한 방송 제작 환경을 거론했다.

언뜻 그래 보일 수 있다. 과거 SBS와 MBC의 사례에서 보듯, 일간베스트(아래 일베) 사이트에 돌아다니는 변형된 로고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코알라 이미지 등 작거나 부분적인 이미지들의 사용은 빠듯한 제작 환경에서 벌어진 '실수'라고 인정하고 싶을 이들이 있을 것이다. 방송사나 해당 제작사 입장에서는 말이다.

일련의 방송사고 때마다 그러한 관행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일베 로고 사용이나 노무현 대통령 조롱과 같은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전파를 탔고, 그때마다 논란과 원성이 일었다. 제작진은 사과했고, 방송 시스템 탓을 했다. 방송사 안의 '일베'를 탓하는 목소리도 거셌지만, '슈퍼갑'인 방송사들은 당면한 논란을 회피하는데 급급했다. 역시나 "빠듯한 제작 일정과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방대한 자료들"을 원인으로 돌리는 회피가 이어졌고, 그에 대한 지적 역시 다반사였다.

반복된 사고와 회피가 박근혜 정권 들어 극에 달했다. 지상파 3사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는커녕 사안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일베 방송'이라는 비아냥이 소셜미디어 상에서 횡행했을까. 그러던 차에 변화를 약속했던 MBC의 <전참시>가 '고의성'을 의심받는 대형사고를 터트린 것이다.

MBC 최승호 사장의 공언을 주목하는 이유

이제는 이러한 논란과 반복을 끝낼 때가 됐다. 비단 정권이 교체돼서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는 문제다. '일베'를 키운 정권, 그 정권이 장악하고 그 정권에 부역하는 방송사 하에서 벌어진 반윤리적인 사고에 대한 재발방지책을 각 방송사가 내놓을 때다. 그리고 적극 펼쳐나가고 실천할 때다.

단기간에 시스템을 고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 이해한다. 그렇다면 해당 당사자들의 중징계를 비롯해 제 살을 깎아내는 심정으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강구책을 내놓아야 한다. 더 이상 '실수'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고의성' 짙은 논란을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방송사의 신뢰성은 차치하더라도 이번 <전참시> 논란에서 보듯 사회적 피로감과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와도 같은 조롱,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유가족과 이영자 같은 직접적인 피해자를 낳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일베 사이트에서나 횡행하는 반윤리적이고 비윤리적인 조롱이나 희화화가 지상파에서 출몰하게 용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의든 실수든, 그러한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들에 대한 엄벌이 요구되는 이유다. 더 이상 일베를 용납하고 수용함으로써 그들을 키우는 사회로 회귀할 수는 없다. 최승호 사장이 공언한 MBC의 조사위원회가 과연 어떤 조사 과정과 결과를 낼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참시 MBC 최승호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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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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