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포스터.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포스터.ⓒ 티캐스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3일 개봉한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의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원제는 'Ce qui Nous Lie(우리를 이어주는 것)'이다. 프랑스 영화인데 북미에서는 '다시 버건디로(Back to Burgundy)'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페미니스트 엠마 골드만은 '사랑할 권리, 와인을 마실 권리, 춤 출 권리가 없으면 혁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혁명을 자기 내적 실존의 변화와 사회 변화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해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인 사랑이 들어있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왜 엠마 골드만은 '와인을 마실 권리'와 '춤 출 권리'를 혁명의 요소로 언급했을까.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을 본 관객이라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될 것이다.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인생의 어느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이든 자기 앞의 삶을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영화다. 그림처럼 펼쳐지는 사계절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움도 놓칠 수 없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삼남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한 장면. 수확 시기를 위해 포도의 당도와 산도를 맛보고 있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한 장면. 수확 시기를 위해 포도의 당도와 산도를 맛보고 있다.ⓒ 티캐스트


대체로 영화 속에서 와인은 축제에서 사람들과 함께 즐기거나 단란한 가족의 식사 자리, 혹은 이별이나 슬픔을 혼자 삭이며 홀짝이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하지만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와인의 재료인 포도를 가꾸고 당도와 산도를 조절해 수확하고 짓이겨 숙성시키는 전 과정을 보여준다. 준비 7년, 촬영에 1년이 걸렸다고 하니 영화도 와인과 인생이 숙성하는 것처럼 만만찮은 숙성의 시간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영화는 10년을 타지에서 방랑 생활을 하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귀향하는 장남 장(피오 마리마이)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10년 만에 만난 삼남매들은 아버지의 유산인 집과 와이너리를 지켜내려 포도밭을 가꾸고 수확하고 와인을 만든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삼남매의 현재 삶을 통해 그들의 인생 여정을 보여준다.

삼남매는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 공동 상속이어서 세 사람 모두의 동의 없이는 처분할 수 없다는 사실과 거액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지분을  팔고 훌쩍 떠나고 싶어하는 장과 어찌하든 와이너리를 처분하지 않고 지켜내려는 줄리엣 등 삼남매가 서로 부딪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각자의 상처와 고통을 조금씩 알아가며 이해하게 된다.

장은 자신에게 유난히 엄격한 아버지를 떠나 세상을 떠돌다 호주에 정착해 아들 벤을 낳고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버지 집을 훌쩍 떠나지 못한다. 아버지를 도와 실질적으로 와이너리를 운영하며 와인을 생산해온 줄리엣은 와인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지만 아버지 없이 혼자 와인 생산 과정 전부를 책임져야 하는 것을 때때로 힘들어 한다.

막내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제레미는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고 어린애 취급을 하는 처가살이에 염증을 느낀다. 그는 아버지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하는 형과 달리 아버지와의 추억이나 유품을 소중하게 여긴다.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우리네 인생도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한 장면.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한 장면.ⓒ 티캐스트


삼남매가 현실의 어려움을 견디며 포도를 가꾸고 수확해 와인을 만드는 전 과정에 생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마침내 와인이 숙성되듯 아름다운 생의 이정표를 이끌어 낸다. 영화는 와인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과 삼남매의 삶을 통해 인생도 사랑도 기다림의 시간이, 때론 결정하고 떠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실질적인 와이너리의 책임자이며 와인 실력자인 줄리엣은 수확 시기부터 마지막 숙성된 와인을 용기에 담아 포장하는 일까지 스스로 결정하고 감당해야 한다. 줄리엣은 때때로 혼자 감당하는 모든 것을 힘들어 하지만 부모가 남겨준 와이너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장은 한때 자신의 뿌리로부터, 부모의 손길이 닿는 곳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꿈꾸었다. 그러나 이제 장은 할아버지가 심었던 포도나무가 수명을 다해 땔감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뿌리와 땅, 가족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이해한다.

"사랑은 와인과 같아. 시간이 필요해. 숙성이 돼야 하거든."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한 장면.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한 장면.ⓒ 티캐스트


때론 달콤하고 때론 상큼하고 때론 시큼하고 쌉쌀한 와인을 흔히 달고 쓰고 신 인생의 맛에 비유하기도 한다. 와인이 제 빛과 향, 맛을 찾게 하기 위해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인생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단 개인의 고유한 취향에 맞는 와인의 맛과 향을 위해 스스로 결정의 순간을 선택하는 것처럼, 인생의 맛과 향을 위해 기다림과 숙성의 시간을 인내하는 것 또한 개인의 몫이리라.

영화의 OST인 카멜리아 조르다나(Camélia Jordana)의 'Ce qui nous lie est là'를 들으며 와인 한 잔 앞에 두고 생의 맛과 향도 함께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자신이 고른 와인 한 병은 단순한 와인 한 병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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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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