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리스; 한가인, 도드라지는 미인복점 배우 한가인이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OCN 미스터리 관능 스릴러 <미스트리스> 제작발표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미스트리스>는 비밀을 가진 네 여자와 그들에 얽힌 남자들의 뒤틀린 관계 및 심리적 불안감을 다룬 미스터리 관능 스릴러 드라마다. 28일 토요일 오후 10시 20분 첫 방송.

▲ '미스트리스; 한가인ⓒ 이정민


"OCN 미스트리스 드라마 수위 검토해주세요."

6년 만에 컴백한 한가인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OCN <미스트리스>가 파격적인 스토리 전개로 논란에 휩싸였다. 불륜, 살인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인데다 수위 높은 베드신이 등장하기 때문에 일부 시청자들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런 드라마는 은밀하게 사회 범죄 조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직 분별력이 없는 청소년들이 이런 불륜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자란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냐."

애초부터 19세 이상 관람가(1, 2회만 해당)' 등급을 달고 방영됐지만, '은밀하게 사회 범죄를 조장하는' 드라마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었다. 드라마에 대해, 그 소재나 표현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저 불만이 담긴 글이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라도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올렸어야 하는 글 아닌가?

국민청원의 취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지향·반영하고자 도입된 제도이다. 2017년 8월 17일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청와대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신설됐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우리도 백악관처럼 국민들의 청원에 답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국민들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에 힙 입어 만들어졌다. 구중궁궐에 스스로를 은폐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차별성도 띠었다.

백악관의 청원사이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의 경우 30일 이내에 10만 명 이상이 서명하면 백악관이 공식 검토하게 되는데, 청와대 국민청원은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이 추천하면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보좌관 등)가 답하도록 했다. 진입 장벽을 약간 높인 셈이다. 그럼에도 번지수가 잘못된 청원, 허무맹랑한 내용의 청원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과 관련한 청원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남북 단일팀 찬성/반대'를 비롯해 '평창유감'이라는 동영상으로 화제가 된 벌레소년에 대해 '수사해 달라', '볼빨간 사춘기 평창올림픽 개막식 공연에 반대' 등 청와대의 역할과 영역을 벗어난 사안들이 대부분이었다.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의 경우에는 61만 건 이상의 추천을 받아 김흥수 교육문화비서관이 "진상조사를 시작하겠다"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그밖에도 ''대학원 특혜 입학' 정용화 논란에 대해 수사해 달라', 김기덕-조재현 구속 수사를 청원합니다, 박지훈 번역가의 작품(번역) 참여를 반대합니다, 전 2NE1 멤버 박봄씨의 암페타민 사건 관련 재조사 청원합니다, '한예슬 의료사고, 철저히 조사해주세요' 등 사회적 관심을 끄는 사안에 대해 청와대에 직접 청원을 넣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정 분야에 유독 집중됐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렇듯 연예 문화 관련 이슈에 대한 청원이 도드라지게 많다.

촛불의 힘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국민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열망이 쏟아져 나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흐름이다. 물으면 답을 해주겠다는데, 밑져야 본전 아닌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제기되는 청원의 대부분은 청와대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하거나(국회의 소관이다) 다른 기관의 영역이다. 그런 사안이면 차라리 낫다. 떼쓰기의 경우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잘못된 번지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박지훈 번역가 퇴출' 청원 게시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박지훈 번역가 퇴출' 청원 게시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가장 힘이 센 권력자에게 곧바로 청원을 함으로써 원하는 바를 성취하고자 하는 심리의 발현이랄까. 만약 그런 식으로 모든 행정이 이뤄진다면 나라꼴이 우스워질 것이다. 지난 2008년 당선인 신분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전남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가 트레일러가 통행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하니 이틀 만에 제거시킨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대답을 내놓을 뿐이다.

청와대에 집중된 권력, 그 무소불위의 초헌법적 힘을 제어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시점에 여전히 수많은 시민들이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불만과 고민을 해결해 달라고 말이다. 물론 어디에 하소연해도 쉽사리 풀어지지 않는 답답한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드라마의 수위를 검토해 달라는 류의 요청을 하는 건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청와대도 문제가 있다.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경청하겠다는 태도는 좋지만, 그보다 제대로 된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청와대는 만능이 아니고, 만능이어서도 안 된다. 또, 모든 국민이 청와대만 바라보도록 만드는 건, 청와대 입장에서도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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