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정상의 첫 만남

두 정상의 첫 만남 ⓒ 청와대 홈페이지


2018년 4월 27일 금요일. 온 국민이 아침부터 떨리는 마음으로 남북 정상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서로의 눈을 보며 미소 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에 압축된 지난 역사의 아픔이 허무할 만큼, 분계선을 넘어오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두 정상이 함께 손을 잡고 군사 분계선 위를 오가는 모습은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했다. 지난 11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이 날 하루는 감동과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두 정상이 깍지 낀 손을 풀고 헤어지고 나서도 벅찬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요즘 유행어로 "이거 실화냐?" 할 만큼, 두 정상의 뜨거운 만남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는지 뉴스를 되풀이해서 볼 만큼 실감이 나지 않는 하루였다. 한마디로 영화 같은 하루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분단의 역사는 벌써 반세기를 훌쩍 넘었다.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말은 구시대의 외침이 되었고, 북의 핵 도발과 이의 정치적인 이용은 북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켜왔다. 남과 북이 한민족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을 실감하기에는 지난 세월이 너무 길었고, 교류를 위한 노력은 지난 십 년 동안 처참히 무너졌다. 통일은 고사하고, 전쟁의 불안만이라도 없었으면 했던 소박한 바람은 어제 두 정상의 만남으로 평화를 넘어 통일까지 꿈꾸게 한 것이다.

손을 맞잡고, 눈을 들여다보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실질적 접촉의 힘은 대단했다. 공포와 위협의 대상이 한순간에 친근하게 다가오고, 남과 북이 같은 역사를 가지고 같은 언어를 쓰는 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 것이다.

남북 정상 만난 판문점, 그 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장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결국 우린 적이야." 

2000년 9월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수혁 병장(이병헌)이 북한 병사에게 총을 겨누며 하는 대사다. 한 핏줄인 동시에 적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하고 슬픈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판문점에서 근무하는 네 명의 남북병사들의 우정과 이들의 순수한 우정이 결국 금기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비극을 이야기했고 사람들은 여기에 공감하고 가슴 아파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한 초소에서 정우진 전사(신하균)가 총상을 입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에 대한 남북의 엇갈린 진술로 중립국의 수사관, 한국계 스위스인이자 소령인 소피(이영애)가 수사에 파견된다.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국인 병사 이수혁과 북한군 중사 오경필(송강호), 그리고 사건의 목격자 남성식 일병(김태우)을 취조하지만 이들의 상반된 진술에 수사는 미궁에 빠진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소피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속도와 남북병사의 교감의 깊이를 긴장감 있게 맞춰나간다.

판문점의 남북 병사들은 상대 군의 모습이 그려진 표적판을 향해 사격 연습을 할 만큼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고 긴장 상태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서로에게 미지의 존재이다. 야간 훈련 중 소변을 보다 낙오된 이수혁이 지뢰를 밟고 오경필이 그를 구해주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들의 첫 번째 접촉은 서로의 마음속에 있던 경계를 낮추고 서로를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을 키운다. 접촉은 날이 갈수록 과감해지고 그 시간도 늘어간다. 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는 특별한 게 없다. 보통의 청년들처럼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고,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힘겨루기 게임을 하고, 술도 마신다. 그래서 더 애처롭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는 이들의 만남이 시한부라는데 그 이유가 클 것이다.

마음이 통하는 데는 체제와 이념 같은 거창한 무엇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음악, 담배, 과자, 농담, 웃음이면 충분하다. 우리의 '적'이었던 무명의 이름을 알게 되고, 고향을 알게 되고, 함께 웃고 손을 잡으면서 '적'은 '형'이 되고, '동생'이 되고, '친구'가 된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은 현실에 의해 처참하게 부서져 버린다.

따뜻한 화해의 봄바람, 평화의 시작 

 환송공연이 끝나고

환송공연이 끝나고 ⓒ 청와대 홈페이지


완전한 비핵화, 종전, 평화, 통일이라는 단어들이 '판문점 4.27 선언문'에 언급되면서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다'라는 말의 명분은 이제 사라졌다.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을 지나 평화와 화합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 낸 오늘의 따뜻한 봄 햇살과 봄바람에 희망을 걸어본다.

찬란한 봄에 만난 두 정상은 풍성한 가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영화 말미, 바람을 타고 분계선을 넘어 북측 병사 앞으로 날아간 판문점 관광객의 모자처럼 우리도 그렇게 쉽게, 다시 금강산으로, 더 나아가 평양에서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믿음이 허무맹랑한 바람이 아니라고 또 믿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공동경비구역JSA 판문점 문재인대통령 김정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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