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가 3년 만에 리카르도 라틀리프(라건아)를 다시 품에 안았다. 26일 KBL 센터에서 개최된 귀화선수 라틀리프 특별 드래프트에서 추첨을 통해 울산이 전주 KCC, 서울 SK를 제치고 라틀리프를 영입하게 됐다. 라틀리프는 2018-2019 시즌부터 2020-2021 시즌까지 3년간 울산과 다시 함께하게 됐다.

라틀리프에게 울산은 한국 농구에서의 경력을 시작한 친정팀이다. 라틀리프는 2012-2013 시즌부터 2014-2015 시즌까지 3년간 울산에서 활약하며 KBL 사상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3연패를 이끈 주역이었다. 데뷔 초기에는 로드 벤슨(현 원주)의 백업으로 기용되기도 했고 본인도 프로무대가 처음이라 다소 헤매는 모습을 보였지만 차츰 경력이 쌓이면서 눈부시게 성장했다.

유재학 감독이 선호하는 기동력과 수비력을 겸비하고 이타적인 성향의 빅맨이었던 라틀리프는 울산의 조직적인 시스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외국인 선수였다. 울산 1기의 마지막 해였던 2014-2015 시즌에는 벤슨이 구단과의 갈등으로 퇴출된 이후 1옵션으로 자리잡으며 정규시즌 54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20.1점 10리바운드의 맹활약으로 외국인 선수 MVP를 수상하는 등 명실상부 KBL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정통 '빅맨' 라틀리프, 친정팀으로 금의환황

라틀리프, 현대모비스 복귀 26일 서울 KBL센터에서 열린 라틀리프 드래프트에서 라틀리프 소속팀으로 결정된 현대모비스의 이도현 사무국장(오른쪽)과 라틀리프 에이전트 김학수 씨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있다. 2018.4.26

▲ 라틀리프, 현대모비스 복귀 26일 서울 KBL센터에서 열린 라틀리프 드래프트에서 라틀리프 소속팀으로 결정된 현대모비스의 이도현 사무국장(오른쪽)과 라틀리프 에이전트 김학수 씨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있다. 2018.4.26 ⓒ 연합뉴스


라틀리프는 2015-2016 시즌 외국인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지명되어 3년간 활약했다. 서울에서도 개인의 위력은 여전했지만 울산 시절과 달리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라틀리프는 최근 특별귀화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며 이제 국내 선수가 됐고 나이와 기량적인 측면에서도 완전체에 가까운 선수로 진화하여 친정팀으로 금의환향하게 됐다.

울산 입장에서 라틀리프를 다시 영입한 것은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같다. 울산은 올해도 6강 플레이오프에 올랐으나 단기전에서 안양 KGC에 완패를 당하며 7년 만에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울산은 최근 3년간 플레이오프에서 강팀을 상대로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반복하며 리그 최다 우승팀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였는데 역시 '강력한 빅맨의 부재'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유재학 감독은 최근 몇 년간 외국인 선수 선발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뛰어난 정통 빅맨을 영입하지 못했다. 이로 인하여 울산은 가드나 포워드에 가까운 단신 외국인 선수들로 라인업을 구성하며 사실상 '센터없는 농구'라는 변칙적인 시스템으로 수년을 버텨내야 했다. 정규시즌까지는 그럭저럭 통했지만 단기전에서 골밑이 강한 팀을 만났을 때는 한계를 드러내기 일쑤였다.

신인드래프트 1순위 출신으로 유감독이 많은 기대를 모았던 국가대표 센터 이종현은 지난 시즌 중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며 다음 시즌도 중반까지는 복귀가 어려운 상황이다. 울산 왕조의 주역이었던 양동근과 함지훈은 이제 30대 중반을 넘겨 전성기가 지난 노장이 됐다.

울산의 역사를 봐도 좋은 성적을 올렸을 때도 항상 뛰어난 빅맨이 있었다. 울산의 전신이자 프로농구 원년 우승을 차지했던 부산 기아 시절에는 클리프 리드, 로버트 윌커슨이 있었고, 유재학 감독은 라틀리프를 비롯하여 로드 벤슨, 브라이언 던스톤 같은 선수들과 우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선수단 관리에 엄격하고 '튀는 선수'를 싫어하는 유감독의 성향 때문에 벤슨이나 찰스 로드 같은 좋은 빅맨들을 퇴출하기도 했다.

라건아 품은 울산이 감당해야 할 몫

슛하는 라틀리프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최근 귀화하며 대표팀에 합류한 라틀리프가 슛하고 있다.

▲ 슛하는 라틀리프 지난 2월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최근 귀화하며 대표팀에 합류한 라틀리프가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라틀리프는 사실상 울산이 키워내 정상급 스타의 반열까지 올려놓은 사례다. 이미 울산의 팀문화나 유재학 감독의 성향을 서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별다른 적응기가 필요 없다는 것도 강점이다. 라틀리프는 유감독이 실력뿐 아니라 인성과 태도 면에서도 드물게 여러 번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선수다. 라틀리프 역시 편안한 옛 동료와 팬들과 재회하여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89년생인 라틀리프는 아직도 서른이 되지 않으며 이제 본격적인 전성기에 돌입한 시점이다. 이종현이 부상에서 복귀한다면 라틀리프와의 '트윈타워'도 기대할만하다. 리빌딩과 세대교체가 필요한 울산으로서는 라틀리프를 보유한 3년간 다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게 됐다.

다만 라틀리프를 재영입하여 감수해야 할 대가도 있다. 울산은 라틀리프를 3시즌 간 보유하며 선수의 몸값은 물론 세금과 각종 수당 등을 합친 모든 금액까지 부담해야 한다. 라틀리프는 2018-2019시즌 48만 달러를 시작으로 이듬해 50만4000달러-마지막 시즌에는 2020-2021 시즌 51만6000달러까지 해마다 급여가 인상될 예정이다.

라틀리프가 귀화선수로 태극마크까지 달게 되면서 A매치와 국제대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국가대표팀 차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변수다. 오세근(안양 KGC)이나 김종규(창원 LG), 김주성(은퇴)같이 국가대표팀 차출이 잦았던 빅맨들이 항상 체력적 부담과 잔부상에 시달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걱정거리다. 대표팀 사정상 라틀리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것이 유력하기 때문에 만일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울산 입장에서는 큰 낭패가 될 수 있다. 다만 국가대표팀 수당은 대한민국농구협회(KBA)와 한국농구연맹(KBL)이 부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선수 선발도 제한이 있다. 울산은 라틀리프를 영입하면서 총액 42만 달러로 장·단신 외국선수를 모두 영입해야 한다. 한 선수만 영입할 때는 35만 달러 이내에서 단신 외국선수를 데려와야 한다. 라틀리프가 출전할 때 장신 외국선수는 출전할 수 없다는 조항도 있다.

KBL은 외국인 선수가 다름없는 라틀리프가 국내 선수로 인정될 경우 다른 구단과의 전력 불균형을 감안하여 내린 조치라고 하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큰 돈을 들여 라틀리프를 영입했음에도 정작 이런저런 제약이 따르는 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정도 금액으로 좋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어정쩡한 선수를 영입하거나 외국인 선수를 1명만 데려올 경우 오히려 라틀리프 효과가 반감될 수도 있다. 울산과 라틀리프의 두 번째 동행은 과연 이번에도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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