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 서너 개는 교행할 수 있을 만한 간격이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검사는 드라마나 영화 속 검사와 현실의 간극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디 검사 뿐일까. 판사, 변호사, 법원 검찰 공무원 등 법조계에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의 실제 모습과 생활은 '항공모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인의 인식과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다. 또 현실의 법과 드라마 속 법도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정드라마와 현실이 어떻게 다르고 어디가 비슷한지, 법을 매개로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그 첫 시도로 KBS2 수목드라마 <슈츠>를 함께 보기로 하자. - 기자 말

 KBS2 드라마 <슈츠>포스터

KBS2 드라마 <슈츠>포스터 ⓒ KBS


최근 한국에도 법정드라마가 늘었다. 시청률도 꽤 높다. 예전에 비해 완성도도 높아지고 있는데, 실감나는 현실 묘사 때문인 것 같다. 또 한 편의 드라마가 25일 첫 선을 보였다. 미국 인기 드라마를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 <슈츠>가 그것이다. 슈트(소송)를 위해 슈트(양복)를 입은 그들이 욕망의 슈츠(트럼프 카드의 무늬)를 쫓는 이야기.

최고 로펌의 전설적인 변호사 최강석(장동건 분)과 괴물 같은 기억력을 지닌 가짜 신입 변호사 고연우(박형식 분)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드라마다. 첫 회에서부터 고연우의 좌충우돌이 시작된다. 그에게 현실속의 법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함정에 빠진 마약운반, 유죄일까 무죄일까?

첫 회부터 고연우가 함정에 빠진다.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긴 재벌 2세 박준표(이이경 분) 탓이다. 박준표는 고연우가 할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급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마약 든 가방을 운반하도록 만든 것이다. 처음에 거절하던 고연우가 마지못해 수락하자 박준표는 기다렸다는 듯 경찰에 신고를 하여 곤경에 빠뜨린다. 고연우는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가 신입 변호사를 뽑는 면접장에서 최강석을 만나 체포를 모면한다.

고연우로선 상당히 억울할 만하다. 자신의 궁한 처지를 악용하여 범죄자로 전락시키려고 했으니.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처벌을 받게 하려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마약운반을 하도록 유혹했는데 꼬드김에 넘어갔다면 죄가 될까.

안타깝게도 유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함정을 파놓았더라도 범죄 행위, 그것도 마약운반이라는 중죄를 저질렀다면 중형을 피하기 어렵다. 다만 고연우의 딱한 사정과 박준표의 비겁한 행동이 양형에 참작될 수는 있겠다.

심지어 현실에선 수사기관이 함정수사로 마약사범을 검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경찰이 신분을 속이고 마약을 사고 싶다고 접근하여 현장에서 체포하는 방식이다. 법원은 이 정도는 적법한 수사방식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범죄를 유도했다면 위법한 함정수사라는 판례가 있다. 예컨대 경찰이 적극적으로 마약을 사라고 유혹하는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어쨌거나 '함정에 빠져서 죄를 저질렀다'는 주장은 현실 법정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KBS2 드라마 <슈츠>의 한 장면

KBS2 드라마 <슈츠>의 한 장면 ⓒ KBS


그렇다면 만일 가방 속에 든 물건이 마약이라는 것을 정확하게는 몰랐다면 어떨까. 이 때도 무죄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드라마를 보자. 고연우는 일단 제의를 단호히 거절한다. 단순히 가방만 전달하는 정도의 일로 거액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범죄와 연관되거나 최소한 떳떳치 못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는 뜻이다. 이때 거액을 받는 조건으로 제의에 응했다면, 자신의 행위가 범죄이거나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즉 미필적 고의는 인정되어 범죄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실례로, 무료 해외여행이나 금전제공을 대가로 가방 운반을 해주었다가 마약사범으로 몰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무혐의나 무죄를 받는 사람도 있지만 처벌을 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만일 이런 부탁을 받았다면 거절하는 게 상책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불심검문, 어디까지 허용되나

마약 가방 때문에 궁지에 처한 고연우, 불심검문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서로 가야한다는 경찰을 되레 몰아세운다. 경찰들도 움찔하게 만든 그를 최강석이 흐뭇하게 바라본다. 불심검문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불심검문이란 수상한 사람을 정지시켜 질문하는 것을 말한다. 불심검문은 강제처분이 아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은 불심검문 도중 경찰서에 동행할 것을 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당해인(검문을 당하는 사람)에게 불리하거나 교통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는 때"에만 가능하며 그마저도 "동행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만일 동의를 얻어 동행할 경우에도 6시간을 넘길 수 없다. 또한 가방이나 자동차 트렁크를 여는 것은 강제로 할 수 없다. 만일 시민이 검문이나 동행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경찰은 어떻게 해야 할까. 명백히 범죄를 저지른 현행범으로 체포할 상황이 아니라면 그냥 보내주어야 한다.

친구 대신 로스쿨시험 응시, 무슨 죄일까?

 KBS2 드라마 <슈츠> 한 장면

KBS2 드라마 <슈츠> 한 장면 ⓒ KBS


'천재'인 고연우는 한 번 보고 이해하면 모든 것을 암기한다. 따라서 한 번 본 법조항을 줄줄이 꿰고 있다. 변호사가 되지 않았을 뿐 시험 합격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현재 변호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17년을 끝으로 사법시험은 폐지되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 변호사가 되는 길은 대학을 졸업하고 3년 과정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시험을 합격하는 길이 유일하다.

첫 회에서 고연우는 친구 대신 로스쿨 시험을 치러 합격한 사실이 있다고 털어놨다. 대리시험도 현실에선 위험하다.

대리시험은 일반적으로 형법상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 만일 국가기관이 주관하는 시험이라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가 된다. 위계란 속임수를 말한다. 운전면허시험, 토익시험 등 각종 자격시험의 대리시험도 여기에 해당한다. 공정하게 합격자를 선발해야 하는 시험 주관 기관의 업무를 속임수를 써서 방해했다고 보는 것이다. 참고로 로스쿨 지원자의 자질을 측정하는 법무부 주관 법학적성시험(LEEF)에서 대리시험이 적발되면 형사처벌은 물론 향후 4년간 응시가 제한된다.

이뿐 아니다. 대리시험을 부탁한 친구의 신분증을 보여주고 시험을 치렀다면 공문서부정행사죄가 추가된다. 만일 신분증의 사진까지 위조했다면 공문서위조, 위조공문서 행사죄로 처벌된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은 형법상 공문서로 본다.

첫 회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최강석이 고연우를 변호사로 채용하면서 본격적인 스토리 전개를 예고했다. 그런데, 변호사 자격이 없는 고연우를 천재라는 이유로 변호사로 채용하고 업무를 맡게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슈트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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