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슬러>의 한 장면.

영화 <레슬러>의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에서 전달하고 싶은 이미지가 있었다. 아빠와 아들이 서로 살을 부비는 모습이었는데 이걸 표현하기 위해선 레슬링이라는 스포츠가 가장 적합하지 않나 생각했다." (김대웅 감독)

'스포츠에 녹아든 가족애'라는 주제는 사실 한국영화에서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그래서 영화 <레슬러>로 상업영화 무대에 데뷔할 신인 감독의 패기가 살짝 아쉬워 보였다. 최루성 강한 신파 영화가 예상되기도 했다. 오는 5월 9일 개봉을 앞두고 23일 오후 서울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언론에 선 공개된 <레슬러>는 그 예상에서 다소 벗어났다.

물론 설정 자체로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 비인기 종목과 한부모 가족,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 연대하는 이웃들의 모습은 많은 영화에서 익숙하게 다뤄왔으니 말이다. <레슬러>는 이 익숙함에 대한 편견을 하나씩 깨면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부자 관계를 뛰어 넘은 가족애

전직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였던 귀보(유해진)는 아내와 사별 후 아들 성웅(김민재)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 살갑고 섬세하게 아들을 뒷바라지 하며 레슬링 유망주로 키우지만 아들은 내심 그 기대가 부담스럽다. 귀보의 절친한 친구이자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성수(성동일)네는 이 부자의 내막을 잘 안다. 누구보다 힘들었을 상황에도 힘이 되어 준 이웃의 존재가 영화 초중반까지 따뜻하게 전개된다.

등장 인물들의 갈등은 성수의 둘째 딸 가영(이성경)이 귀보에게 아저씨 이상의 감정을 느끼면서 부각되기 시작한다. "크면 아저씨랑 결혼할래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가영은 그 마음을 진심처럼 품었고, 가영을 내심 좋아해 온 성웅은 그 모습에 혼란스러워 한다. 영화는 이렇게 얽힌 관계를 코믹하게 풀어내며 후반부 드러날 큰 갈등에 대한 에너지를 쌓아간다.

 영화 <레슬러>의 한 장면.

영화 <레슬러>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 갈등은 결국 서로를 너무 생각한 나머지 엇나가 버린 가족 관계로 표현된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려 했던 성웅과 아들을 사랑한 나머지 훌륭한 선수로 만들고 싶었던 귀보의 대립, 동시에 그런 귀보를 품어왔던 어머니(나문희)와 귀보 간 대립이 그것이다. 나아가 아픈 이웃의 가족사를 자신의 삶 일부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대했던 가영도 주요 갈등 범위에 포함된다.

처한 상황과 입장은 다르지만 이런 가족의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보통의 가족을 대변할 만하다. 코미디 장르 특성상 일부 과장된 설정도 있지만, 영화는 유머 코드와 신파를 적절하게 엮으면서 보편성을 담보한다.

캐릭터의 묘미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미덕을 찾는다면 가영을 비롯한 주변 캐릭터의 설정이다. 보통은 이웃집 아저씨를 좋아하고 따라다닌 철없는 소녀 정도로 묘사되고 말거나 이야기를 위해 기능적으로 소모될 법한 인물이 이 영화에선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진지하게 타이르는 귀보의 속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직진하던 가영은 어느새 귀보와 성웅의 상황, 자신의 꿈을 인지하면서 스스로 또 다른 길을 택한다. 귀보를 친형처럼 따른 승혁(김태훈)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불안해하면서도, 귀보에겐 "너무 아들을 소유하려 들지 말라"며 직언을 서슴지 않는 캐릭터다. 중심 사건이 해결되면서 이웃들도 각자 자신의 삶에서 성장하는 지점을 영화는 나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영화 <레슬러>의 한 장면.

영화 <레슬러>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물론 여러 웰메이드 유럽영화나 미국 중저예산 독립영화에 비하면 여전히 그 입체감이 아쉽지만 가족주의를 내세운 한국 상업 영화에서 이 정도로 주변부 캐릭터가 살아남았다는 건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 지점에 대해 김대웅 감독은 "그동안 제가 좋아했던 영화들의 특징이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서 주인공을 변화시켜가는 설정이 있었다"며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런 면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레슬러>의 캐릭터들은 감독이 충분히 노린 설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언론 시사회 현장에선 나이 많은 남성과 어린 여성 간 이성애 코드가 자칫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감독은 "핵심은 부모와 자식 간 관계를 보여주려는 것이고, 가영이가 이웃 아저씨를 좋아한다는 설정은 하나의 촉매제로만 이해해 달라"라고 설명했다. 멜로를 내세운 드라마가 아닌 만큼 아저씨-어린 여성의 조합이 크게 불편하지 다가오진 않는다.

한 줄 평 : 평범함 속에 숨겨진 감독의 패기가 미덕
평점 : ★★★☆(3.5/5)

영화 <레슬러> 관련 정보
연출 : 김대웅
출연 : 유해진, 김민재, 이성경, 나문희, 성동일, 진경, 황우슬혜, 김태훈, 이한서, 박규영 등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디씨지 플러스
배급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 안나푸르나 필름
크랭크인 : 2017년 7월 19일
크랭크업 : 2017년 10월 17일
러닝타임 : 110분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8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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