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판소리 완창을 듣는다. 내가 완창을 들으러 간다고 하면 주위에서 의아해하며 비슷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대체 몇 시간이나 해요?", "세상에, 지루하지 않아요?"

박애리 명창은 이름만 알고 있다가 2010년대 초 MBC 판소리 명창 경연대회인 '판소리 명창 서바이벌 광대전(아래 광대전)'을 통하여 소리를 접할 수 있었다. 광대전은 전국 규모의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판소리 명창들 가운데 누가 최고의 명창인지를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내가 프로그램을 보고 든 느낌은 그가 관객과의 교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판소리 완창, 1968년 '흥보가' 5시간 30분 공연한 것이 최초

박애리 명창이 지난 4월 21일 국립극장에서 판소리 '춘향가' 완창을 했다. 장장 6시간 30분이 걸리는 시간이었다(쉬는 시간 포함). 춘향가 완창을 올해 두번째로 본다. 지난 3월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수어지교' 프로그램에서 젊은 판소리꾼의 춘향가 완창을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봤다. 그때 판소리꾼에게 완창은(특히 춘향가) 쉽지 않지만 도전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은 판소리 완창이 예전부터 소리꾼에게 필수적이고, 거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과거에 민초들 대상으로 소리를 할 때나 양반집에서 공연할 때 완창은 시간상으로 힘들기 때문에, 눈대목(판소리의 중요한 대목) 중심으로 불렀을 것이다. 청자들에게는 눈대목만 듣더라도 감흥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판소리는 스토리를 새롭게 알게 되는 것보다 알고 있는 내용을 얼마나 더 리얼하게, 애절하게 부르는지가 듣는 사람에게 중요하다. 기록된 완창의 역사는 박동진 명창이 1968년 '흥보가'를 5시간 30분동안 공연한 것이 최초라고 한다. 내가 판소리를 배워보니 눈대목 하는 것만도 벅찬데, 전체를 완창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 짐작된다. 계면조와 자진모리, 휘몰이 장단을 왔다 갔다 하거나, 상성에서 하성까지 음의 높낮이를 왔다 갔다 하며, 대부분을 서서 해야 한다. 마치 마라톤과 같지 않을까. 어느 시점까지는 소리꾼이 창을 부르지만, 한계를 넘어가면 창자가 소리가 되고, 소리가 창자가 될 것이다.

고대 그리스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리듬이 있는 시로 우리의 판소리와 비슷하다. 리듬이 있고 서사가 있으며, 창자가 키타라를 치면서 귀족들을 대상으로 노래를 부른다. 길이도 12000행이다. 천병희 선생 번역 책으로 600페이지이다. 이 길이를 창자가 다 외워서 부른다. <일리아스>가 고대 서양문학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으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반면에, 우리의 판소리는 국내외에서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알아주는 것과는 별개로 많이 활성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21일 공연에서 박애리 명창을 소개한 김성녀 국립극장 예술 감독은 "국립극장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기반에는 단원들의 판소리 실력이 뒷받침 되었다"고 말하였다. 공감하는 바이다. 지난해 11월 '트로이의 여성들'이라는 그리스 비극 기반 창극을 나는 두 번이나 보면서 창극과 잘 어울리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애절한 트로이 여인의 절규는 판소리와 잘 맞닿아 있었다. 지기학 예술 감독이 서울돈화문 국악당의 '신통방통' 프로그램에서 '빨간 피터의 고백'을 공연한 것도 판소리의 대중화를 위해서였다.

 박애리 명창의 모습

박애리 명창의 모습 ⓒ 국립극장 페이스북 페이지


가능성 보여준 박애리 명창, '전통 판소리도 일반인과 교감할 수 있다'

박애리 명창의 이번 공연은 전통 판소리도 일반인들과 교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공연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박애리 명창이 6시간 30분간 보여준 소리와 관객과의 소통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박수였다. 다른 명창이 똑같이 장시간 완창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가창력만 좋아서도 안되고, 관객과 교감만 있어서도 안 된다. 두 가지가 모두 귀명창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어제야말로 박애리 명창이 진정한 명창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명창이라고 부를까? 보통 판소리 대회에서 수상한 사랑을 명창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공연기간 내내 관객을 울리고 웃기며 소통하는 판소리꾼을 명창이라고 부르고 싶다.

판소리는 발전하면서 시조나 민요 등을 흡수하였다. 춘향가의 농부가도 좋은 사례이다. 공연에서 박애리 명창은 자신이 가진 관객과의 소통의 장기를 바탕으로 관객들을 농부로 변신시켰다. 자신이 소리를 넣어주고, 관객에게는 농부가의 후렴을 요청하자, 한 목소리로 따라 하였다. 얼마나 많은 창자들이 박애리 명창과 같은 시도를 하고, 관객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나는 많지 않다고 본다. 소리꾼으로서의 길을 가는 내내 관객과의 교감을 중시 여기고, 방법을 생각하며 실천한 것이 공연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박애리 명창이 후렴을 따라 하라고 하면 따라 하는 마법에 걸린다. 왠지 따라 해야 할 것 같다. 다른 곳에서는 나만 하는 게 아닌가 눈치를 봐야 하지만, 박애리 명창이 시키면 '나만 빠지면 안되지'라고 느끼게 한다. 대단한 능력이다.

 박애리 명창의 모습

박애리 명창의 모습 ⓒ 국립극장 페이스북 페이지


박애리 명창은 발림에 강하다. 발림은 소리꾼이 고객과 소통하는 몸짓이다. 무대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 박애리 명창은 관객과의 소통에 주저함이 없다. 방자를 부를 때 앞에 있는 청자를 부채로 가리킨다. 청자가 방자도 되고 향단이도 된다. '어사상봉' 대목은 창극을 연상시킨다. 몰락한 양반으로 변장한 이몽룡이 춘향집에 와서 사람을 부르는 대목은 창극에서 많이 공연되는 장면이다. 향단이가 이몽룡과 월매의 중간에서 심부름하는 대목은 사람들을 웃긴다. 박애리 명창은 향단, 이몽룡, 월매 3사람의 역할을 하였다. 목소리도 3사람의 역할을 할 때마다 다르다. 이몽룡일 때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향단은 십대 소녀로, 월매는 슬픔을 간직한 춘향의 어미 목소리로 낸다. 무대도 가만히 서서 하는 게 아니라, 무대의 좌편 끝에서 우편 끝까지 모두 활용한다.

기립박수를 치면서 나는 박애리 명창의 공연이 앞으로 판소리가 나아갈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판소리의 본질은 음악성에만 있지 않고, 깔아 놓은 판에서 얼마나 관객에게 잘 전달하느냐일 것이다. 우리는 판소리에서 추임새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판소리가 창자, 고수, 귀명창 3자가 같이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1일 공연에서는 관객들의 끊임없는 추임새가 있었고, 주요 대목이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마치 판소리에서 관객과의 호응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박애리 명창은 인사말을 하며 다음에는 '심청가'로 관객들을 찾아 온다고 하였고, 관객들은 환호하였다. 벌써 다음 공연이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제 개인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박애리 명창 춘항가 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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