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비밀의 소녀> 영화 포스터

▲ <실종: 비밀의 소녀> 영화 포스터 ⓒ 브릿지웍스엔터테인먼트(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남편 마커스(켄 베세가르트 분)와 저녁 식사를 즐기던 캐서린(시노브 맥코디 런드 분)은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듣는다. 아버지가 남긴 집을 처분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캐서린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 데이지(에바 스틴스트럽 소헤임 분)가 자꾸 나타난다. 죽은 엄마의 친구라면서 나타난 여자는 오래 전 캐서린의 이모인 마리에가 의문의 실종사고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겸 철학자인 뤼시앙 레비브륄은 환상을 경이에 대한 욕구와 비교하면서 '합리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건은 단순한 만족을 넘어서는 기쁨을 야기한다'고 말한 바 있다. 슈퍼맨이나 투명인간은 우리 내면에 잠재한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환상 속의 존재인 셈이다.

환상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 이를테면 괴물, 어둠, 죽음, 유령, 다른 세계의 존재를 현실 세계로 불러내기도 한다. <환상 문학 대전집>의 저자인 자크 구아마르와 롤랑 스트라글리아티는 환상문학을 "문명화된 현대인을 그 자신의 상상력, 그 자신의 무의식과 조화시키는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실종: 비밀의 소녀> 영화의 한 장면

▲ <실종: 비밀의 소녀> 영화의 한 장면 ⓒ 브릿지웍스엔터테인먼트(주)


노르웨이 영화 <실종: 비밀의 소녀>는 피와 고어가 아닌, 정서와 환상 문법으로 무의식을 표현하는 '하우스 호러' 계보에 속한다. 연출을 맡은 칼 크리스티안 라베 감독은 <식스 센스><디 아더스><오퍼나지-비밀의 계단>처럼 살인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관객을 두려움에 몰아넣을 수 있는 영화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데이지의 정체는 무엇인가? 소문대로 마리에를 엄마가 죽인 걸까? 캐서린이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 하는 이유는? 캐서린이 가족의 비밀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설수록 의문은 깊어간다. 덩달아 관객의 호기심도 커진다.

장 루이 뢰트라는 <영화의 환상성>에서 "문은 경계선이면 이행의 장소이다"라고 적었다. <실종: 비밀의 소녀>의 문 역시 캐서린, 데이지, 마리에의 관계의 비밀을 푸는 도구로 기능한다. 잠긴 지하실은 캐서린이 공포의 근원과 마주하는 공간이다. 지하실 안, 바꾸어 말하면 망각의 저 너머엔 진실이 기다린다.

<실종: 비밀의 소녀>가 다룬 실종, 광기, 엄마와 아이의 관계엔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와 로만 폴란스키의 <로즈메리의 아기>의 잔상이 짙다(실제로 칼 크리스티안 라베 감독은 좋아하는 감독으로 알프레드 히치콕과 로만 폴란스키를 꼽았다). <샤이닝><오멘>, 최근 영화로는 <바바둑>의 영향도 느껴진다.

<실종: 비밀의 소녀> 영화의 한 장면

▲ <실종: 비밀의 소녀> 영화의 한 장면 ⓒ 브릿지웍스엔터테인먼트(주)


칼 크리스티안 라베 감독은 "집을 흥미롭게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실종: 비밀의 소녀>는 오래된 저택, 저절로 열리는 문, 사라지는 그림자, 삐걱거리는 소리, 비밀로 가득한 지하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악몽, 어머니가 남긴 조각상과 그림 등 환상의 장치와 설정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캐서린을 광기와 혼란에 빠뜨리는 장치와 설정은 전형적이란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이미 다른 영화에서 보았던 것 투성이다. 이야기를 뒤트는 후반부도 마찬가지다. 박평식 영화평론가는 씨네21의 20자평에서 "클리세는 공포영화에서 더 날뛰지"라며 진부함을 꼬집었을 정도다.

촬영과 음향은 만족스럽다. 국제영화제 등에서 여러 차례 촬영상을 받은 노르웨이의 촬영감독 필립 오가르드는 시골 외딴집의 어두운 방과 주위를 둘러싼 백색의 설원으로 시각적인 대비를 표현한다. 도시에서의 장면은 차분하게 표현하고, 시골에서의 장면은 핸드헬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심리를 포착한다. 집 안 곳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보는 이가 실제 집에 머무는 느낌을 준다.

<실종: 비밀의 소녀> 영화의 한 장면

▲ <실종: 비밀의 소녀> 영화의 한 장면 ⓒ 브릿지웍스엔터테인먼트(주)


캐스팅은 영화가 지닌 신비함과 불안함에 힘을 불어넣었다. 캐서린 주위를 맴도는 소녀 데이지 역을 맡은 에바 스틴스트럽 소헤임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에바는 점점 미쳐가는 캐서린에게 맞추어 표정과 분위기를 바꾼다. 에바가 오디션 장소에서 한 장면을 연기하자마자 오디션이 바로 종료되었다는 후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캐서린 역으로 분한 신노브 맥코디 런드는 <반항>의 까뜨린느 드뇌브가 발산한 광기와 <디 아더스>의 니콜 키드먼이 지닌 고전적인 느낌을 동시에 보여준다. "얼음처럼 차가운 환경에서 얇은 옷을 입고 복잡한 장면을 촬영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고된 작업이다"라고 소감을 전한 신노브 맥코디 런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양한 심리를 오가는 캐서린을 집중력을 발휘하여 멋지게 소화했다.

제임스 완의 손길에서 태어난 <인시디어스>와 <컨저링>은 영화팬들이 다시금 '하우스 호러'에 주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런 열기를 바탕 삼아 나온 유령의 집(노르웨이 원제는 <유령>이고 영어 제목은 <유령이 나오는>이다) 영화 <실종: 비밀의 소녀>는 걸작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익숙할지언정 이야기는 매끈하다. 만듦새도 준수하다. 적당한 공포도 전달한다. 이 정도면 장르 영화로 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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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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