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지도자' 아르센 벵거가 22년간 함께한 아스널을 떠난다.

아스널은 20일(한국시각)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벵거 감독과의 작별을 발표했다. 벵거 감독은 "구단과 면밀한 검토와 논의 끝에 나는 이번 시즌이 끝난 후 내려오는 것이 적절한 시기라고 느꼈다. 많은 시간 동안 좋은 구단에서 헌시할 특권을 준 아스널 구단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밝혔다.

벵거는 이어 "나는 헌신과 성실성을 갖고 구단을 지휘했다. 아스널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스태프, 선수, 단장, 팬들에게 감사하다. 나는 팬들에게 팀 뒤에서 끝까지 응원해 주길 바란다. 내 사랑과 지지는 영원할 것"이라며 작별 인사를 남겼다. 벵거 감독은 이번 시즌까지 팀을 이끈 후 아스널을 떠난다.

벵거가 아스널이고, 아스널이 벵거다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 ⓒ 연합뉴스


벵거 감독의 선수 시절은 화려하지 않았다. 조용했다. 그러나 1981년 자신의 소속팀이던 프랑스 리그앙 RC 스트라스부르 유소년 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벵거는 프랑스 명문 AS 모나코와 나고야 그램퍼스(일본) 등을 거치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고, 1996년 10월 1일 아스널과 손을 잡았다. 아스널 역사상 최초 '외국인 감독'이었다.

벵거의 아스널은 화려했다. 1997·1998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2001·2002 시즌 재차 우승했다.

백미는 2003·2004 시즌이었다. 리그 38경기 26승 12무를 기록하면서 역사적인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 데니스 베르캄프와 티에리 앙리, 파트리크 비에이라, 프레데릭 융베리 등 선수들의 이름값도 대단했지만, 벵거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이 없었다면 아스널의 무패 신화는 불가능했다.

올시즌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며 EPL 우승을 확정 지은 맨체스터 시티만 보더라도 '무패 우승'은 정말 위대한 업적이다.

벵거는 선수 육성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스타급 선수를 영입하기보다는 유망주 발굴에 힘썼고, 체계적인 훈련 기법을 도입해 세계적인 선수를 숱하게 키워냈다. '전설' 티에리 앙리와 로빈 판 페르시가 대표적이다. 특히, 16세의 어린 나이에 1군에 데뷔해 세계적인 미드필더로 이름을 떨친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벵거가 키워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오일 머니가 유럽 축구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벵거의 아스널은 흔들렸다. 빼어난 잠재력을 갖춘 유소년 육성만으로는 세계적인 선수를 마구잡이로 영입하는 거대 구단과 맞서는 데 한계가 뚜렷했다. 벵거가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 놓으면 거대 구단이 빼앗아가는 악순환도 반복됐다.

결국 '무패 우승'이 마지막이었다. 아스널은 2003·2004 시즌 이후 단 한 차례도 EPL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꿈의 무대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스널은 2005·2006시즌 돌풍의 팀 비야레알을 꺾고 사상 첫 UCL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마지막 상대는 바르셀로나였다. 경기 초반 옌스 레만이 퇴장당하며 위기를 맞았지만, 선제골을 뽑아내며 유럽 챔피언 등극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후반 30분과 35분 연거푸 실점을 내주면서 고개를 숙였다.

벵거의 아스널은 UCL 조별리그 통과는 확실했지만 그 이상은 힘겨웠다. '리그는 4위, UCL은 16강'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들었다. 2016·2017시즌에는 벵거가 아스널 지휘봉을 잡은 1996년 이후 처음으로 UCL 출전 티켓도 따내지 못했다. 올 시즌에도 UEFA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않는 이상 차기 시즌 UCL 복귀는 힘겨워 보인다.

그러나 벵거는 22년간 아스널을 지휘하며 EPL 3회 우승, FA컵 7회 우승 등을 일궈낸 '전설'이다. '벵거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던 2013·2014시즌에는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무려 8년 만의 우승이었다. 비록 말년은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벵거는 아스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대적인 인물이다.

'위대한 지도자' 아르센 벵거, 한국과 깊었던 인연

벵거는 한국 축구와도 인연이 깊었다. 지난 2011년 모나코에서 성공적인 프로 생활을 이어가던 박주영을 영입해 화제가 됐다.

극적이었다. 당시 박주영은 2부로 강등된 소속팀(모나코) 잔류보다는 이적을 고민했다. 프랑스 리그앙 정상급 클럽이던 릴 OSC 이적이 기정사실로 됐다. 릴은 UCL 티켓을 확보한 상태였고, 박주영 영입을 강하게 원했다. 박주영도 거부할 이유가 없었고, 계약서 서명 차 릴로 향했다.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스널 벵거 감독이었다. 릴 메디컬 테스트를 마치고 호텔에 머무르던 박주영은 벵거 감독의 전화에 마음을 바꿨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박지성의 뒤를 이어 빅클럽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박주영은 곧장 런던으로 향했고, 아스널 입단에 성공했다. 싼 값도 아니었다. 벵거의 아스널은 박주영 영입을 위해 이적료 500만 파운드(한화 약 71억 원)를 지출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박주영의 아스널 시절은 실망스러웠다. 기대를 모았던 첫 시즌 6경기(EPL 1경기) 1골에 그치면서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렸다. 

이후 박주영은 셀타 비고(스페인)와 왓포드(당시 잉글랜드 챔피언십) 등으로 임대돼 아스널 신분은 유지했지만, 오래가지 못해 방출의 아픔을 맛봤다. 박주영을 응원하는 한국 축구팬들의 입장에서는 벵거 감독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기회가 너무나도 적었고, 한국 축구 천재의 전성기가 허무하게 지나갔기 때문이다.

벵거는 한국 축구의 '전설' 박지성과 인연도 남다르다. 한솥밥을 먹은 사이는 아니지만, 박지성은 벵거의 속을 꽤 쓰리게 했다. 그는 맨유에서 뛴 7시즌 간 27골을 넣었는데 아스널전에서만 5골을 터뜨렸다. 리그는 물론 UCL 준결승에서도 아스널의 골망을 가르면서 '거너스(아스널의 애칭) 킬러'로 이름을 날렸다.

한국팬들이 벵거에게 어떤 감정을 갖든, 최근 아스널의 성적이 어떠했든 벵거가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지도자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세계 축구팬들은 지난 2013년 여름 알렉스 퍼거슨 경을 떠나보낸 데 이어 또 하나의 전설과 이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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