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뀐 뒤에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9년 동안 있었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노력하고 있다. 그중 많은 이들이 가장 중요한 '적폐'로 꼽는 것이 언론 아닐까. 특히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신뢰도 하락은 우리 사회에 큰 병폐가 되었다. 과거 공영방송은 정권의 눈치만 보기에 바쁘고 본질과 무관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보도만 일삼는 등 언론윤리를 망각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특히 세월호 참사 당시의 '전원구조' 오보는 역대 최악의 '흑역사'로 남을 정도다.

이런 공영방송의 '끝 모를 추락'은 언제까지일까. 정권이 바뀐 뒤에 사장이 바뀐 KBS와 MBC는 환골탈태할 수 있을까? 시청자들의 불신과 함께 9년 동안 쌓여있던 언론노동자들 본인들의 열패감 역시 뛰어넘어야 할 산이다.

특명 공영방송을 '까라', 시청자의 눈으로

 KBS <끝까지 깐다> 방송 중 일부.

KBS <끝까지 깐다> 방송 중 일부. ⓒ KBS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일 방영된 KBS의 새로운 프로젝트 <끝까지 깐다>는 공영방송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이 될 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 내용은 인터넷 카페와 커뮤니티를 통해 모집한 일반인 시청자들로 구성된 패널들이 KBS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방송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만남에서는 KBS에 대한 총체적인 의견에 비중을 두었다면, 두 번째는 조금 더 심층적으로 KBS의 어떤 부분이 불만이었고 왜 불만인지, 대안은 있는지에 대해 분석적으로 비판하는 데 비중을 두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만남에서 시청자들은 '왜 나는 KBS를 보지 않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각자 다른 시점이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 오보와 국정농단 사태 당시의 보도방식에 대해서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국범근씨는 당시 보도에 관해 '계산된 침묵', '계산된 무색무취'라고 평가하는데, 이는 세월호 조사관을 했었던 이탁연씨가 '정부가 내놓는 자료를 바탕으로 그 행간을 파악하고 분석하지 않은 채 텍스트 그 자체로만 방송한다'라고 말한 것과 맞닿아있는 셈이다. 아무런 시각도 관점도 없지만 그렇다고 중립적인 것도 아닌, 의도된 침묵이라는 뜻이다.

첫 번째 만남에서 시청자들에게는 KBS 관련 자료(KBS 뉴스, 프로그램, 제작 관행)들이 주어진다. 이것을 토대로 두 번째 만남은 스튜디오에서 녹화됐다. 옆의 보도국에서는 기자들이 해당 녹화를 지켜보게 된다. 이 부분은 굉장히 참신하다. 언론인들이 시청자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창구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만남의 심층적인 대화는 KBS가 보도했던 뉴스들의 면면을 직접적으로 비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여러 주장들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문제들인 만큼 이런 보도 방식이 왜 문제였는지 들어보려고 한 것부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백남기 농민과 관련한 보도가 첫 순서로 선택되었다.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는 문제지만, '공정한 언론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지 않을까 한다. 단순히 서울대병원과 정부의 입장만을 보도하는 것은 공정한 것인가?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KBS가 중립적인 것처럼 보도를 하는 와중에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러길래 왜 시위에 나왔냐'인 것임을 패널들이 지적한다. 정말 필요한 비판이었지만 여지껏 있던 지적이었다. 그걸 귀를 틀어막고 듣지 않던 KBS가 이제야 시청자들로부터 듣는 셈이다.

 KBS <끝까지 깐다> 방송 중 일부.

KBS <끝까지 깐다> 방송 중 일부. ⓒ KBS


다른 많은 이슈에서도 KBS가 취했던 입장이 무엇이 문제인지 패널들은 신랄하게 비판한다. KBS가 문제가 많다는 데 동감하는 입장에서 이런 지적들은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처럼 받아들여졌다.

"자기들이 관점을 정해서 전달한다기보다는 계속해서 대등한 두 주장끼리 맞서고 있는 것처럼(보도하고 있어요). 모든 것을 공방의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거예요." (국범근)

"KBS가 (정부의 입장을) 받아쓰기를 정말 열심히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최지은)

"뉴스에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콘텐츠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것처럼 느껴져요. 인터뷰를 통해 당위성은 얘기하고는 있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요." (박상수)

앞으로도 '자아성찰'의 계기가 많이 있길

 KBS <끝까지 깐다> 방송 중 일부.

KBS <끝까지 깐다> 방송 중 일부. ⓒ KBS


비록 이번 방송은 일회성 편성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 구성원들이 이제는 정말로 위기의식을 갖고, 변화의 의지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고무적인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런 신랄한 비판을 KBS 기자들과 구성원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한 지점이 그렇다. 중간 중간에 기자들의 짤막한 인터뷰를 집어넣은 것도 괜찮은 구성이다.

'언론의 역할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객관적인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만큼, 바람직한 시각을 전달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것이 공영방송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9년 간 공영방송 KBS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쳐왔다. 이번 '자아비판'이 여러 가지 형태로 지속되길 바란다.

끝까지깐다 KBS 공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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