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드라마 <라이브>

tvN드라마 <라이브> ⓒ tvn


역시는 역시다. 노희경 작가가 극본을 쓴 것만으로 기대를 모았던 드라마 <라이브>는 '역시 노희경'이란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인물 하나하나가 살아 있고, 그들에겐 상처가 있다. 자신의 상처를 안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모두가 친구처럼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인물들이 아픔을 이겨내고 멋진 사람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특히 이 드라마가 남다른 부분은 여성 인물을 그리는 방식이다. 기존의 많은 이야기 속에서 여성은 어머니이거나 피해자이거나 술집여자였다. 인류의 절반은 여성인데 어떻게 그들의 역할이 셋밖에 없을 수가 있을까. 그만큼 지금껏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여성은 보조적이고 평면적인 역할만 맡아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라이브>는 다르다. 여기에도 어머니, 피해자, 성매매 여성이 어김없이 등장하지만 이들을 그리는 방식은 여느 것과 같이 틀에 박히지 않았다.

극 중 두 아이의 엄마이자 오양촌(배성우)의 아내인 안장미(배종옥)는 가족을 돌보는 희생적인 어머니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바쁜 남편 몫까지 혼자서 아이들을 챙기고, 부모님 장례를 치르고, 시부모님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직업인 경찰 일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이혼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정오(정유미)가 안장미(배종옥)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한정오(정유미)가 안장미(배종옥)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 tvn


경찰 한정오(정유미)는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흔히 생각하는 '피해자다움'을 갖추고 있지 않다. 피해 사건만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거나 집 안에 갇혀 있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은 왜 그 일로 상처받지 않는지를 고민한다. 그날 그 시간을 기억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웃고 떠들고 남자도 만나고 싶고 재미있는 연애도 하고 싶다며 트라우마가 없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불법 성매매 여성도 등장하는데, 드라마는 이들을 불쌍한 개인으로 그리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성매매여성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조직책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폭행, 불법 낙태, 감금 등의 온갖 범죄가 자행된다. 여기에 가담한 비리 경찰도 있어 실질적인 보스를 잡아 조직 전체를 검거하기는 어렵다. 불법성매매의 원인을 개인의 부주의나 도덕적 타락으로 귀결시키지 않고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비정상적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벡델 테스트'라는 말이 있다. 이는 미국의 만화가인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의 <다이크 투 워치 아웃 포>(Dykes to Watch Out For)에 등장한 캐릭터가 자신이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다. 그 기준은 '첫 번째, 여성 캐릭터가 적어도 2명 이상 나올 것. 두 번째, 그들이 서로 대화를 할 것. 세 번째, 그 대화가 남성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벡텔 테스트에 따르면 <라이브>는 어떨까. 첫째, 둘째, 셋째 기준에 모두 부합한다. 앨리슨 벡델이 <라이브>를 봤더라면 분명 '통과'를 외치며 이 드라마를 선택했을 것이다. 1985년에 벡델이 제시한 세 가지 기준은 너무도 소박하지만 아직도 이를 만족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찾기가 쉽지 않은 점에서 <라이브>는 참 소중하다. 

하지만 <라이브>의 특별함은 벡델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데에만 있지 않다. 많은 드라마나 영화처럼 범죄 장면을 불필요하게 상세 묘사하지도 않고, 꼭 필요한 장면이라는 핑계를 대며 선정적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성폭력 장면은 암시로, 폭력 장면은 최소화하여 표현한다. 범죄를 소재로 한 많은 이야기들이 사건과 수사과정이 중심이 되는 데에 비해 라이브는 범인을 검거한 이후, 피해 그 후까지 담아낸다.  

범인이 잡혔다고 피해자의 고통도 같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내는 남편의 폭력을 신고했지만 막상 경찰이 오자 남편을 고소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생계부양자 없이 두 딸을 데리고 혼자서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딸은 침묵하는 것이 엄마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해 가만히 있을 뿐이다. 경찰은 이 모든 것을 알지만 친고죄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은 공간에 두고 돌아설 수밖에 없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가정폭력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가정폭력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 tvn


전자발찌를 한 같은 건물 입주자에게 성폭력을 당할 뻔한 멍투성이의 피해자는 이 일을 약혼자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경찰에 부탁한다. 약혼자가 자신을 더럽다고 생각할 거란 이유에서이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자신보다는 약혼자가 이 사건을 알게 될 지를 먼저 걱정하는 이 모순된 상황에 한정오(정유미)는 씁쓸해 한다. 

"나는 그 엄마가 싫었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도움을 거절하는 것도. 남편이 폭력적인데 애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혼자서는 애들을 키울 수 없어 이혼을 안 한다는 것도. 아까 성폭행 직전에 우리가 구해낸 여자도 자기 걱정은커녕 결혼 상대가 이 상황을 어떻게 볼까 그걸 염려하더라. 피해자가 자기 걱정은 안 하고 주변의 시선, 주변의 사람을 걱정하는 게 너무 슬프지 않니?"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전자발찌를 한 같은 건물 입주자에게 성폭력을 당할 뻔한 멍투성이의 피해자는 이 일을 약혼자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경찰에 부탁한다. ⓒ tvN


안장미(배종옥)와 오양촌(배성우)의 딸은 차안에서 남자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딸이 싫다고 소리 지르고 온몸으로 저항하지만 강제로 키스하려 한 것이다. 이런 남자친구를 원래는 착한 애라고, 자신이 양다리를 걸쳐서 화나서 그런 것뿐이라고 두둔하는 딸에게 오양촌은 말한다.  

"그 놈이 착하고 안 착하고는 아무 문제가 안 돼. 이미 사리분간 못할 만큼 욱한 게 문제라고, 알아들어? 네가 양다리 걸친 거 그거 정말 나쁜 짓이지만, 그렇다고 그 놈이 네 허락 없이 네 몸에 손대는 거 정당화 될 수 없어. 이해받을 수도 없고. 그건 범죄야. 아빠가 주먹 쓴 거 그거 잘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하지만 너도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똑똑히 알아. 그 누구도 네 허락 없이 네가 싫다고 하면 절대, 절대로 네 몸에 손가락 하나도 대서는 안 된다고."

 오양촌(배성우)이 딸에게 데이트 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양촌(배성우)이 딸에게 데이트 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 tvn


범죄 이후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하며 그들을 향해 있는 사회의 손가락질과 편견을 꼬집는다. 모든 것은 범죄자가 잘못한 것이지 피해를 당한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따뜻하고 성의 있게 위로한다. 이것이 범죄 사건을 다루는 드라마인데도 <라이브>를 보면서 공포심보다는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다. 

물론 이화여대 시위 장면 논란도 한 차례 있었고 지나치게 경찰을 미화한다는 시각도 있다. 또 염상수(이광수)의 일방적이고 계속된 구애는 스토킹을 사랑으로 미화하는 측면이 있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이런 몇 가지 아쉬움은 있지만 범죄를 다루면서 <라이브>처럼 피해자를 선정적 요소로 소비하지 않고, 극 전체를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끌어 간 드라마나 영화가 있었나 싶다. 이건 아니지 않냐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싶다가도 조용히 이 드라마를 응원하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경찰 드라마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라이브>의 한계는 <라이브> 이후 이를 이어받는 다른 드라마에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라이브> 이후를 더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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