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커플의 결혼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비와 바다>(2011) 포스터.

장애인 커플의 결혼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비와 바다>(2011) 포스터. ⓒ 오지필름


"성경에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순종하라. 그러니까 '순종'은 이해가 될 때 순종하니까 좀 쉽지요. 그 다음에 또 성경에서 명명하기를 '복종하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특별히. '복종하라'는 것은 이해가 잘 안돼요. 그러나 무조건하고 거기에 따라가야 하는 것이 '복종'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경외하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곤경하고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요즘 드라마에 보면은 아내가 남편에서 베개를 집어 던지고 또 어떤 경우엔 남편의 뺨을 치고, 이거는 아주 삶적으로 교훈적으로 좋지 못한 것입니다. 남편을 즉, 주인이라 하면 주인으로써 곤경하고 존경하고 두려워해야 되는데, 그런 소행은 교회적으로 전혀 옳지가 않습니다." (영화 <나비와 바다> 중에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당시 광화문에 위치하고 있던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 <나비와 바다>(2011)를 보다가 졸았던 나는 엔딩과 함께 번쩍 눈이 떴다. 영화 시작부터 여자친구 재년씨에게 결혼 하자고 조르던 강우영씨는 바람대로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아내의 본분을 강조하는 우영씨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고 다시 보게 된 <나비와 바다>의 엔딩은 여전히 놀라웠다. 재년씨와 우영씨의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에 찬물을 끼얹는 기분이었다. 우영씨와 재년씨 모두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다. 띠동갑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사랑을 키워간 지 어언 8년째다. 오랫동안 만남을 이어온 만큼, 우영씨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재년씨와 살림을 합치고 싶지만 우영씨 아버지의 폐암 말기 선고 때문에 결혼을 미루기로 결정한다.

중증 장애인 커플의 결혼, 두 사람 사이의 온도 차

 장애인 커플의 결혼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비와 바다>(2011) 한 장면.

장애인 커플의 결혼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비와 바다>(2011) 한 장면. ⓒ 오지필름


결혼이 급한 우영씨와 달리 재년씨는 계속 결혼을 망설이는 것 같다.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재년씨 역시 우영씨가 처음으로 결혼이야기를 했을 때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랑은 꿈만 같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우영씨는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는 데 몇 시간이 소요되는 중증 장애를 갖고 있다. 혼자 힘으로 몸을 씻는 것도 쉽지 않고 밥을 챙겨 먹는 것도 어렵다. 우영씨에 비하면 재년씨는 스스로 음식을 해먹을 수도 있고 휠체어 없이도 걸어다닐 수 있다. 우영씨의 부모 입장에서는 재년씨 역시 자신들이 보살펴야 할 것 같은 뭔가 마뜩잖은 며느리감이다.

남자인 우영씨는 재년씨와의 결혼으로 그가 갖고 있던 외로움,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두려움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재년씨는 결혼을 하게 되면, 이전에는 안 해도 됐던 가사노동, 출산, 양육 등 여러가지 짐을 떠앉게 된다. 재년씨가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장애인 커플의 결혼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비와 바다>(2011) 한 장면.

장애인 커플의 결혼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비와 바다>(2011) 한 장면. ⓒ 오지필름


주위에서는 우영씨가 재년씨를 많이 좋아하고 있고, 오래 인연을 맺어온 만큼 반드시 결혼을 해야한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몰고 간다. 여기에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을 주저하는 재년씨의 생각은 가벼운 고민거리로 간주된다. 결혼 이후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우영씨가 재년씨를 많이 아껴주기 때문에 사랑으로 극복하면 된단다. 그런데 과연 사랑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영화 <나비와 바다> 이전에도 장애인 커플의 사랑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나비와 바다>는 장애인 커플의 사랑을 감동적이고 위대한 러브스토리로 포장하려 하는 대신, 결혼을 앞둔 두 남녀의 고민과 갈등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자 한다. 앞서 말했지만 결혼은 현실이며 연애만 하던 시절과는 다르게 여러가지 제약이 뒤따른다. 하지만 우영씨와 재년씨의 사례에서도 보다시피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많은 제약과 의무가 따른다. 장애인에게 있어서 결혼은 경제적인 상황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중에도 재년씨에게 더 많은 희생과 의무가 요구된다.

<나비와 바다>가 얘기하는 현실... 그저 축하만 하기엔

 장애인 커플의 결혼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비와 바다>(2011) 한 장면

장애인 커플의 결혼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비와 바다>(2011) 한 장면 ⓒ 오지필름


2011년 열린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처음으로 상영 됐을 때 <나비와 바다>는 장애인들의 애틋하고 살뜰한 사랑을 다루면서도, 결혼에 관한 한국 사회의 오래된 풍토와 '가부장제'를 똑바로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해 영화제에서 상영한 최우수 다큐멘터리에게 주어지는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비와 바다>는 어렵게 결혼을 결심한 우영씨와 재년씨의 사랑을 응원하지만 이들이 결혼 후 맞닥뜨리게 될 가부장제의 모순을 직시하고자 한다. 연애할 때는 한없이 다정다감한 남자였던 우영씨도 결혼을 통해 남편이 되는 순간,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과 복종을 당연하게 여기는 가부장으로 탈바꿈한다.

이는 비단 우영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이 사회에 강하게 뿌리박힌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가족문화가 빚은 폐해다. 지난 12일 방영한 MBC  교양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등장한 박세미씨의 사연에 많은 시청자들이 분노하고 공감을 표했다. 이는 박세미씨가 겪고 있는 부당한 시댁 문화는 개인만의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 커플로 부부의 연을 맺은 강우영씨와 노재년씨 역시 결혼과 함께 가부장제의 모순과 직면했고, 이는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결혼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결혼이 과연 이 사회가 말하는 것처럼 사랑의 아름다운 결실이며 행복을 향한 종착지로 바라볼 수 있을까.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공유하고, 결혼으로 변화될 삶에 대한 두려움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가부장적인 결혼 문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나비와 바다>를 추천하는 바다.

나비와 바다 장애인 결혼 박배일 감독 영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