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홍보 과정에서 예고편이 차지하는 비중은 예전보다 훨씬 높아진 편입니다. 예전에는 영화 예고편을 극장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점차 TV와 인터넷을 통해서도 볼 수 있게 되면서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포스터나 광고 배너 같은 인쇄 매체보다 동영상으로 만들어진 예고편은 훨씬 생생하게 영화에 느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도 좋습니다.

<램페이지>의 경우도 포스터보다는 예고편이 구미를 당기게 하는 쪽이었습니다. 동물학자로 보이는 주인공 드웨인 존슨이 흰 고릴라와 친하게 지내는데, 이 고릴라가 갑자기 몸집이 커지면서 포악해집니다. 곧 이것이 모종의 유전자 조작과 관련된 일이며, 괴수가 된 다른 동물이 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급기야는 이 괴수들이 한꺼번에 대도시를 공격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지요.

예고편이 만든 '헛된 기대감'

 영화 <램페이지>의 한 장면. 유인원 전문가 데이비스(드웨인 존슨)는 흰 고릴라 조지와 친밀한 사이다.

영화 <램페이지>의 한 장면. 유인원 전문가 데이비스(드웨인 존슨)는 흰 고릴라 조지와 친밀한 사이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예고편으로만 보면 이야기 구조가 잘 갖춰지고 볼거리가 풍성한 괴수 액션물일 거라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이 영화의 배급사 워너브러더스는 작년에 <콩: 스컬 아일랜드>를 내놓으며 킹콩과 고질라가 맞붙는 '몬스터버스' 세계관을 공식화한 적도 있습니다. 여러모로 또 하나의 괜찮은 괴수물을 기대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예고편이 만들어낸 완벽한 허상이었습니다. 초반 설정은 나쁘지 않습니다. 유전자 조작 실험을 하던 우주 정거장에서 의문의 가스가 든 통이 떨어지는 과정, 주인공이 흰 고릴라와 친하게 지내는 장면까지는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고릴라가 비정상적으로 커진 다음입니다. 괴수물 답게 몸집이 커진 동물들의 이야기가 좀 더 나오면 좋으련만, 그들을 둘러싼 인간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주인공인 드웨인 존슨만 나오지만, 사태 수습 과정에서 계속 인물들이 추가됩니다. 괴수가 된 동물들의 이야기는 언제 나오나 내내 기대했지만, 그들의 분량이라고는 예고편에서 보여준 액션 시퀀스보다 조금 더 길 뿐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영화에서 인간들이 하는 일은 뻔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합니다. 어떻게 꼬아 놔도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내 사태 수습을 한다'라는 기본 이야기 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죠. 그렇다면 괴수들의 파괴적인 모습을 더 보여주면서 위기감을 고조시키든지, <콩: 스컬 아일랜드> 같은 영화가 그랬듯이 괴수들끼리 붙는 색다른 액션 시퀀스를 넣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예고편에서는 흰 고릴라와 드웨인 존슨의 콜라보 액션 같이 색다른 게 나올 것처럼 분위기를 잡지만, 본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주연을 맡은 드웨인 존슨은 고릴라와 대화 장면이나 몇몇 위트가 빛나는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혼자서 극 전체를 끌고 나가는 원톱 주인공으로서 연기력이나 매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강타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나 올해 초의 흥행작 <쥬만지: 새로운 세계> 같은 출연작 때문에 주가를 높이긴 했지만, 이는 다른 출연진들과 함께 만들어낸 결과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게임 닮아가는 할리우드 영화

 영화 <램페이지>의 한 장면. 흰 고릴라 조지는 의문의 가스를 흡입한 후 몸집이 커지고 포악해지는 변화를 겪게 된다.

영화 <램페이지>의 한 장면. 흰 고릴라 조지는 의문의 가스를 흡입한 후 몸집이 커지고 포악해지는 변화를 겪게 된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최근 할리우드에는 게임이 원작이거나, 어드벤처 게임 내러티브 형식을 그대로 차용한 영화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쥬만지: 새로운 세계>,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큰 규모의 흥행작들 외에도 <툼 레이더> 같이 북미 흥행은 별로였지만 해외 반응이 좋아 최종 성적은 나쁘지 않았던 작품도 있지요.

예전에는 게임 기반 영화라고 하면, 인기 게임 캐릭터를 가져와 그들을 기존 장르 영화 공식에 끼워 맞추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주인공이 무언가를 탐색하고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식의 게임처럼 이야기를 짭니다. 마치 관객이 다른 사람의 게임 플레이를 보는 것처럼요. 국적과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게임이기 때문에, 전 세계 시장을 겨냥한 영화라면 시나리오에 게임 내러티브를 도입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램페이지>도 설정은 원래 80년대에 유명했던 아케이드 게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게임 기반 영화라는 요즘 흐름을 따라가기는 했지만, 괴수물이 아닌 재난 영화 공식에 끼워 맞추는 식이 되면서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최근 나온 고만고만한 할리우드 액션물과 비교해서도 재미가 확연히 덜합니다.

일단 초반 흥행은 괜찮았습니다. 지난 주말부터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개봉 전까지 며칠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치고 빠지면 전 세계 흥행 수입 기준으로 손익분기점은 넘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절묘한 배급 타이밍 외에 기억할 만한 장점은 없었던 영화라는 오명까지 벗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영화 <램페이지>의 포스터.

영화 <램페이지>의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cinekwon.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램페이지 드웨인 존슨 나오미 해리스 브래드 페이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