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일 전 장슬기가 만든 평양의 기적이 요르단 암만까지 이어지며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결과로 빛났다. 어느 경기보다 골이 필요했던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장슬기의 침착한 감아차기가 대승의 발판을 만드는 귀중한 결승골이 된 것이다.

윤덕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17일 오전 2시 요르단의 암만에 있는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AFC(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아시안컵 5위 결정전에서 필리핀을 상대로 5-0으로 완승을 거두고 2019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 본선에 올라가게 되었다.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이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5-6위전에서 필리핀을 5-0으로 대파했다. 이로써 이번 대회 상위 5개국에 주어지는 2019 프랑스 여자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확보했다. 사진은 아시아축구연맹(AFC)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이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5-6위전에서 필리핀을 5-0으로 대파했다. 이로써 이번 대회 상위 5개국에 주어지는 2019 프랑스 여자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확보했다. 사진은 아시아축구연맹(AFC) 홈페이지 갈무리. ⓒ AFC


장슬기의 아름다운 감아차기, 평양의 기적을 떠올리다

경기 시작 후 6분 만에 골잡이 정설빈이 손목을 다쳐 실려나갔다. 한국 벤치는 부랴부랴 최유리를 대신 들여보내야 했다. 월드컵 본선에 나가기 위해서는 더이상 물러설 곳 없었기 때문에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다시 가다듬어 골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중국과 태국에 밀려나 A조 3위로 나온 필리핀이 전반전을 실점 없이 끝내야 후반전에 결정적인 한방을 노릴 수 있다는 계산으로 밀집수비를 펼쳤기 때문에 한국의 공격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전가을에게 좋은 득점 기회가 찾아왔지만 몸싸움을 거칠게 하는 필리핀 수비수들에게 밀려 넘어지는 장면이 많았다.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골을 넣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우리 선수들에게 밀려올 34분에 왼쪽 풀백 장슬기가 반짝반짝 빛났다.

필리핀 수비수가 헤더로 걷어낸 공을 기다린 장슬기는 부드러운 퍼스트 터치 실력을 자랑하며 방향을 바꿔놓자마자 오른발 감아차기로 골문 오른쪽 톱 코너를 뚫어버린 것이다. 프랑스 월드컵 티켓이 그녀들 눈앞에 펼쳐진 순간이었다.

귀중한 선취골이자 이 경기 결승골을 넣은 장슬기는 크게 기뻐하지 않고 눈가의 땀을 닦아내렸다. 그녀의 표정 속 375일 전 평양의 기적이 떠오르는 듯했다. 사실 이번 여자 아시안컵 예선부터 대진운으로 봤을 때 본선에 올라온 것만으로도 험난한 여정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17년 4월 7일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아시안컵 예선 B조 일정을 치르기 위해 평양에 있는 김일성 스타디움으로 들어가 예선 개최국 북한을 만나야 했다. 북한이 세계 여자축구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강팀이기 때문에 예선 조 1위에게만 주는 아시안컵 본선 티켓이 멀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76분에 천금의 동점골을 터뜨리며 1-1로 경기를 끝냈다. 바로 그 동점골의 주인공이 장슬기였던 것이다.

2승 2무, 무실점으로 프랑스 간다

이렇게 1년 하고도 열흘 전에 만들어진 평양의 기적이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이번 아시안컵 본선 조추첨 결과가 나왔을 때 윤덕여호는 또 한 번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예선에서 북한과 겨룬 것도 모자라 본선 B조에서는 여자축구 세계 정상권에 있는 일본과 호주 틈바구니에 낀 것이다.

두 팀 중 하나를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윤덕여 감독은 어느 때보다 까다롭게 보이는 월드컵 본선행 시나리오를 단단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호주와의 대회 첫 경기를 득점 없이 비기며 절반의 성공을 거둔 뒤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 준우승 팀 일본과의 두 번째 경기도 0-0으로 비겼다. 후반전 추가 시간에 일본의 베테랑 공격수 이와부치의 결정적인 왼발 슛을 윤영글 골키퍼가 슈퍼 세이브로 지켜낸 순간이 압권이었다.

비록 세 번째 경기에서 베트남을 4-0으로 이기는 바람에 일본 호주와의 다득점 계산에 밀려 3위가 되는 아쉬움을 겪었지만 5장의 월드컵 본선 아시아 티켓을 위한 마지막 기회를 이렇게 잡은 셈이다.

우리 선수들은 전반전 추가 시간에도 침착한 패스 실력을 자랑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자축하는 골을 더 넣었다. 지소연이 부드럽게 올려준 공을 받은 이민아가 침착하게 오른발 인사이드 슛을 성공시킨 것이다.

이어진 후반전에는 세트 피스 기회를 꼼꼼하게 살려내며 기분 좋은 대승을 완성시켰다. 56분에 전가을이 왼쪽에서 올린 프리킥을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임선주가 재치있게 오른발로 방향을 바꿔 성공시켰고 65분에는 전가을의 왼쪽 코너킥을 미드필더 조소현이 감각적인 헤더로 마무리했다. 주장 조소현은 최유리의 과감한 드리블로 얻어낸 페널티킥 기회까지 완벽한 오른발 슛(84분)으로 차 넣어 5-0 점수판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로써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2019년 6월 7일부터 7월 7일까지 프랑스에서 열리는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 본선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 한국 여자축구 역사상 처음 있는 2회 연속 월드컵 진출 새 역사를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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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8 AFC 여자 아시안컵 5위 결정전 결과(17일 오전 2시, 암만 국립경기장-요르단)

★ 한국 5-0 필리핀 [득점 : 장슬기(34분), 이민아(45+3분,도움-지소연), 임선주(56분,도움-전가을), 조소현(65분,도움-전가을), 조소현(84분,PK)]

◎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FW : 정설빈(9분↔최유리)
MF : 전가을(82분↔손화연), 이민아, 조소현, 지소연(72분↔장창), 이금민
DF : 장슬기, 김도연, 임선주, 김혜리
GK : 윤영글

◇ 여자월드컵 아시아 지역 본선 진출 확정 팀
- 한국, 일본, 호주, 중국, 태국
축구 여자축구 월드컵 윤덕여 장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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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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