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아들 사랑을 주고받은 마지막 만남

아버지의 아들 사랑을 주고받은 마지막 만남 ⓒ CJ 엔터테인먼트


무작정 영화관을 찾은 날, 보고픈 상영작이 없으면 난감하다. 그냥 돌아서기 싫어서 이런저런 비교 끝에 <7년의 밤>을 선택한다. '오랜만에 장동건이라도 보자'고 맘먹어서다. 2014년 <우는 남자>의 '곤' 역이 내가 그를 본 마지막이다. 인간미를 흘리는 냉혈한 킬러로의 변신에 선뜻 박수 치지 못한 게 기억난다.

영화 < 7년의 밤>의 도입부는 나를 긴장시킨다. 영화가 모티프로 장치한 장면들이 곧 터질 뭔 일의 전조 같다. 괴괴한 어둠을 두른 '세령마을'과 안개 짙은 저수지의 번득임, 제 뜻을 따르도록 남편 최현수(류승룡 분)의 등짝을 그곳으로 떠미는 아내(문정희 분)의 극성, 밤늦은 국도에서 오영제(장동건 분)의 균열 없는 표정에 낚인 최현수의 클랙슨. 화면을 좇는 맘이 살얼음판이 된다.

악의 화신으로 거듭난 중년의 미남 배우, 장동건에게 박수를 보내며

추창민 감독은 동명의 스릴러 원작을 심리극으로 각색해 전개한다. 행패 심한 상이군인 아버지를 간접 살해한 죄책감에 휘둘리는 최현수의 광기와 사이코패스 오영제의 뒤틀린 사랑을 부각시키며 그 추이에 앵글을 맞춘다. 무의식에 결박되었다 할 두 캐릭터는 오영제의 딸 세령(이레 분)이 교통사고로 죽자 격돌하다가 옥사와 자살로 생을 마친다.

그 틈바구니에서 아들 최서원(고경표 분)은 희생양의 역경을 딛고 어둠의 대물림에서 놓여난다. '7년의 밤'을 살아내고 기어코 삶의 여명을 맞이한 최서원이 운명의 주인공이다. 각자 아버지로 인해 형극의 삶에 직면하지만, 무의식적 광기에 치인 최현수의 숙명적 삶은 솟구치는 울분을 통제하여 악의 구렁텅이로 떨어지지 않은 최서원의 운명적 삶과 다르다. 운명은 불가항력적 숙명을 능동적으로 맞받아쳐 얻은 가변성이다.

그것을 드라마로 선보인 추 감독의 연출이 다소 엉성해서 참 아쉽다. 사랑한다는 아내나 딸의 울부짖음마저 듣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유감없이 열연한 장동건마저 결과적으로 동반 추락시킨 흥행 성적이 그 반증이다. 그래도 < 7년의 밤>은 이래저래 분노 조절을 못 해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들이 갈수록 증대하는 동시에 큰 참사로 이어짐을 떠올리게 한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들끓다가 사회적 대비 없이 잦아들던 관심의 향방을 이참에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고백하자면, 숲에서 도망치다 차도로 튀어나온 격의 세령(이레 분)을 최현수가 차로 들이받았을 때, 그의 사정이 하도 딱해서 '도망치라' 외치는 내 맘을 보았다. 어서 병원으로 데려가라는 당위성을 의식하면서도 뺑소니를 편드는 그 마음은 감당하기 벅찬 일을 당한 보통사람들이 내기 쉬운 반사적 심리지 싶다. 그런데 최현수는 부지불식간에 숨이 붙은 세령을 압사시켜 주검마저 유기한다. 정황이야 어떻든 두둔 못 할 고의적 범행이다.

그러니 동병상련에 젖어 동기를 따지는 법적 잣대 마련은 객관적으로 쉽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남에게 가해진 나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하니까 더 그렇다. 그건 추 감독이 응시한 성악설과 상관없다. 그런저런 생각과 갈등으로 속이 시끄러워 객석에 앉은 내내 지루한 줄 몰랐다. 홍보만큼 영화 자체는 스릴러가 아니었지만, 내 마음이 스릴러가 돼버려 절로 몰두한 탓이다.

그나마 M자 탈모 헤어스타일의 악인 이미지가 잔상으로 남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아우라 넘치는 미남 관련 가십이 여전한 걸 보면 배우 장동건은 인간으로서 잘 사는구나 싶다. 나이 들며 탐욕의 무늬가 더해지면, 돋보이는 외모는 평범한 얼굴보다 더 추하게 보일 수 있다. 악의 화신으로 거듭난 중년의 미남 배우에게 박수를 보낸다.

 M자 헤어스타일까지 만들어 열연한 장동건

M자 헤어스타일까지 만들어 열연한 장동건 ⓒ CJ 엔터테인먼트



7년의 밤 장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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